‘원조’ 뛰어넘는 기술력, 세계를 놀래키다
메디톡스
메디톡스(사장 정현호)의 수출 신장세는 경이적이다. 회사 측은 “2015년 수출은 442억 원으로 2014년의 239억 원에 비해 85% 늘었다”고 밝혔다. 작년 수출액은 매출액 885억 원의 절반에 이르는 것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수출 부진에 빠진 기업이 많은데 이 회사는 어떻게 잘 나갈 수 있을까?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2016년 3월말 충북 오송의 메디톡스 2공장을 찾았다. 이 공장은 스마트공장을 추구한다. 스마트공장은 제품 기획, 설계, 생산, 유통, 판매 등의 과정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최소 비용과 시간으로 고객 맞춤형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말한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제조업 강국은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스마트공장을 핵심으로 한 ‘제4차 산업혁명’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보툴리눔 톡신 주사제 국산화
메디톡스는 국내 최초로 보툴리눔 톡신 주사제를 국산화한 기업이다. 주름 개선과 치료 등에 쓰이는 이 제품은 그 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세계 최초로 비(非)동물성 ‘액상’ 보툴리눔 톡신 주사제 ‘이노톡스’도 선보였다
메디톡스의 경쟁력은 과감한 연구개발과 신제품 개발, 첨단시설 투자에서 나온다. 오송(제2공장)의 최첨단 공장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연합(EU)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에 적합한 생물학적 제제 생산 시설을 갖췄다. 보툴리눔 톡신 주사제를 제조·생산하는 데 필요한 주요 장비들은 작업자 조작에 의한 오류를 최소화한 자동화 공정에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했고, 유리병 세척 및 멸균, 무균충전, 동결건조 등 주요 생산라인은 자동으로 이뤄진다. 작업 정보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정현호 사장은 “스마트공장 구현 수준이 목표의 50% 수준인데도 전체 생산량이 제1공장(오창, 본사)에 비해 10배 이상 높다”고 설명했다.
메디톡스의 급격한 성장은 지난 2102년부터 본격화됐다. 그 해 9월 정현호 사장에게 한통의 편지가 왔다. 발신인은 ‘보톡스’로 유명한 글로벌 기업 엘러간의 데이비드 파이요트 최고경영자(CEO)였다. 매출 6조원의 글로벌 기업 수장이 연 매출 300억 원대에 불과한 한국의 바이오 벤처기업에 친필서한을 보낸 것이다. 내용은 “일본 출장길에 한 번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세계 최초의 액상 제품 개발에 주력
파이요트 CEO는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차세대 보톡스 제품 중 당신 회사 것이 가장 나은 것 같다. 우리가 기술을 산 뒤 생산해 제품을 팔고 싶다”고 제안했다. 당시 메디톡스는 가루 형태인 보톡스를 액체 형태로 바꾼 차세대 제품을 호주에서 임상시험 중이었다. 정 사장은 “대외비인 임상시험 결과까지 알고 면담을 제안한 정보력에 놀랐다”고 말했다. 1년간의 협상 끝에 2013년 9월 메디톡스는 엘러간과 3억6200만 달러(약 3600억 원) 규모의 액상형 보톡스 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의 수출로는 유례가 없는 성과다.
메디톡스는 보톡스로 알려진 보툴리눔 독소 제제를 세계에서 네 번째로 상용화한 기업이다. 보툴리눔 독소는 1g으로 100만 명을 사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맹독물이다. 1990년대 후반 주름 제거, 사각턱 교정 등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관련 시장이 3조 원대 규모로 급팽창했다. 정 사장은 “세계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데 원조 회사의 보톡스와 비슷한 제품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10년 전부터 세계 최초의 액상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바이오 기업이 완제품으로 미국, 유럽 시장을 개척하려면 수십 년이 걸리고, 미국, 유럽에서 모두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데 매출 200억~300억 원대 회사로서는 자금력에서도 무리였다”며 “제품을 잘 팔 수 있는 기업에 판권을 넘겨 ‘캐시카우’를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기존 보툴리눔 독소 제제는 가루 형태로 식염수와 희석해서 사용한다. 제품의 안정성을 위해 혈액 속 단백질인 알부민이 들어가는데 사람의 혈액에서 채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에이즈 등 감염병에 잠재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보툴리눔 독소를 배양하는 주요 물질은 돼지에서 추출한 동물성이다. 이 때문에 중동 등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다. 2004년부터 알부민과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액상형인 제품 개발에 나서 지난 2013년 세계 최초로 성공한 것이다.
정 사장이 이 분야에 주목한 계기는 1986년 KAIST에서 박사 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중 연구실 냉장고에 보관돼 있던 보툴리눔 균체를 주목한데 따른 것이다. 1962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그는 수원 유신고와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KAIST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정 사장은 “지도교수였던 양규환 교수가 1970년대 미국에서 가져온 것인데 오랜 기간 연구하는 이가 없어 방치되다시피 했다”며 “박사 과정을 마친 뒤 1993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 연수를 갔는데 세미나에서 보툴리눔 독소가 치료제로 쓰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귀국한 뒤 선문대에서 교수를 맡으면서 보툴리눔 독소 연구를 계속했다”고 설명했다.
KAIST에서 박사 논문 주제 고민 중 보툴리눔 균체 주목
외환위기가 터진 뒤 1998년 정부가 교수들에게 지원하던 연구비가 끊겼다.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은 타격이 컸다. 김대중 정부가 교수 창업을 적극 독려했는데 창업 자금의 80%를 정부에서 제공해주는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연구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사실 궁여지책으로 창업을 해야 했다. 그 즈음 국내 제약사가 엘러간 보톡스를 수입해 판매하고 있었다. 제일 잘 아는 영역이니 자체 개발해 보자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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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하고 첫 제품이 나오기까지 6년이 걸렸다. 정 사장은 “자금이 부족해 계속 투자 받다 보니 지분율이 20%이하로 떨어졌다”며 “비용을 줄이려고 값싼 장비를 쓰는 바람에 고생했다”고 웃음 지었다. 국내에서 처음 개발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관련법도 제대로 없어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들과 논의해가며 규정을 바꿔 나갔다.
그는 “이공계에 우수한 학생이 많이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오 벤처기업에도 인재들이 들어와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은 KAIST 졸업생들조차 의학전문대학원에 가는 상황이다. 좋은 인재가 대학원에 안 오니 인력의 질도 과거만 못한 실정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고령 인구가 많아지고, 없는 질병도 새롭게 생기고 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제2의 메디톡스’는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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