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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찍&포토 원문보기 글쓴이: 드림스
이 흑백사진들 속 귀엽고 발랄한 소녀가 누군지 알아 보실 분이 계실까요?
일반인 시절 모습이라 누군지 알아보기 어렵다면 바로 이 분입니다
흔히 세기의 미녀 세기의 요정 20세기 대표 패션아이콘이자 살아있는 천사로 불리우던 숱한 수식어를 지닌 오드리 헵번이 바로 그 주인공이죠 위 쪽 사진들은 그간 거의 알려진 적이 없는 헵번 데뷔 전 유년시절과 소녀시절 사진들입니다
원래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 귀족 남작 집안의 피가 흐르던 여인이자 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인물
그간 영화나 선행 등을 통해서만 친숙했던 헵번의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같은 인생스토리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헵번은 1929년 5월 4일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태어납니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네덜란드의 남작 출신으로 당연히 귀족가문이었고 여기서 헵번의 모친 `엘라 반 헤임스트러`(저 맨 위 사진들에서 아기 시절 헵번 옆에 있는 중년여성)가 태어납니다
엘라는 초혼에 실패한 후 벨기에로 건너갔다가 거기서 스코틀랜드 출신 실업가인 `죠셉 러스턴`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와 재혼해 외동딸인 오드리를 낳게 됩니다
본명은 `오드리 캐슬린 러스턴`
그러다 죠셉이 당시 복잡한 유럽정세로 인해 성과 이름을 자주 바꾸다가 먼 친척의 성씨인 헵번을 붙이고나서 딸인 오드리도 자동으로 `오드리 헵번 러스턴`으로 개명
오드리 프로필이 가는 곳마다 출생지는 벨기에고 성장한 곳은 네덜란드, 초반 활동 지역은 영국, 게다가 이름도 여러 개 이런 식으로 성장기와 초반이력이 늘 복잡하게 소개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죠
헵번의 부모는 사이가 원만하지 못 했던지 헵번이 6살이 되던 무렵 결별했고 그 결과 헵번은 어머니를 따라 외가가 있는 네덜란드로 건너가 유년시절을 보냅니다
명문귀족 집안이었던 탓에 웅장한 남작의 저택에서 풍족하게 살았지만 곧바로 터진 2차 세계대전은 헵번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습니다
사실 헵번 모친이 헵번 친부와 멀어지고 딸을 데려온 계기는 다름아닌 그가 열렬한 나치 추종자였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모친도 이에 동조하다 나중에 나치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이로 인한 갈등이 불거졌고 훗날 알려진 사실은 헵번 부친이 2차 대전 독일 패전 후 나치 신봉자였던 전력이 문제가 돼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되었고 헵번 모친은 딸의 배우 생활 내내 이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
아버지가 나치 협력자였던 전력이 딸의 배우생활에 핸디캡으로 작용해 불이익을 미칠까봐 일부러 그가 헵번에게 보내온 연락을 모두 차단 시키기도 했다고
나치를 반대했던 헵번의 외가 식구들은 일명 추축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하자 나치의 마수를 피하기 위해 도피생활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연합군을 지지하던 헵번의 외가친척 여럿이 희생 되었으며 당시 어린 소녀였던 헵번은 도피생활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지자 썩은 감자와 풀 꽃잎 등으로 힙겹게 생명을 유지했다고 한다
헵번 특유의 그 깡마른 나이 들어도 절대 살이 찌지 않는 몸매는(죽는 순간까지 헵번은 신장 171cm에 32-20.5-33의 몸매를 수십년간 유지) 바로 이 때 오랜 굶주림으로 인해 체질이 변하고 병을 얻어 그렇게 된 것이며 이 때 굶주림의 고통 경험과 함께 자신에게 극적으로 도움을 준 단체 유니세프에 감명을 받은 것이 계기가 돼 훗날 유니세프에서 일 하며 아프리카 기아돕기에 나선 것이기도 하다
또 이 과정에서 헵번은 신발 속에 지하운동조직의 편지를 숨겨 전해주기도 하는 등 나름 운동가들을 도왔다는 후문이 전해지기도
그렇게 숨 죽이며 살던 중 드디어 연합군이 네덜란드로 들어와 감격의 해방을 맞게 되었지만 삶은 더는 이전 같지 않았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던 저택은 전소 되었고 재산은 대부분 남의 손에 넘어가 집안이 크게 몰락한 것
그리고 전쟁 때문에 헵번이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기에 최종학력은 전쟁 직전까지 다녔던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전부
게다가 170을 넘어선 큰 키는 발레를 하기에도 어려운 여건
당장의 생활고 때문에 고민하던 차에 홀로 영국으로 날아간 헵번은 발레를 배우는 틈틈이 생계비를 벌기 위해 생활전선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초등학교 중퇴 이력의 어린 여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당연히 많지 않아 잡지모델 클럽댄서 등 각종 직업을 전전 했고 그 과정에서 단역배우 일까지 하게 된다
말그대로 단역배우로 헵번은 연기나 영화가 좋아서가 아닌 단지 생계 때문에 일을 한 것이며 그 때까지 헵번의 꿈은 여전히 발레리나였다
이 때 그녀는 무려 6편이 되는 영국영화에서 단역을 맡았는데 단역이 늘 그렇듯 지나가는 행인 1,2.3 아니면 길에서 음료나 껌 신문 파는 대사 한 마디 없고 타이틀에도 실리지 않는 역할들
하지만 이게 그만 헵번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게 되니 그녀의 단역생활 종지부를 찍게 된 `우리는 몬테카를로로에서`라는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몬테카를로 로케작으로 극 중 헵번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호텔 예식장을 탈출하는 신부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무슨 천운이 그녀에게 닿으려고 했던지 이 모습을 때마침 이 호텔에 투숙 중이던 콜레트 여사(Sidonie Gabrielle Colette 시도니 가브레일 콜레트)가 목격하게 된 것
프랑스의 여류작가인 콜레트 여사는(사진) 때마침 자신이 낸 작품 `지지`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지게 돼서 해당 작품의 여주인공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이 지지는 천방지축 말괄량이 여주인공 소녀 지지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성숙한 여인으로 차츰 성장 변신해가고 남자와의 풋풋한 애정에도 눈 떠가는 과정을 명랑터치로 묘사한 일종의 프랑스판 `명랑소녀 성장기`라 할 수 있는데 당시 콜레트 여사는 이 지지 역을 맡을 여배우를 구하던 찰나 헵번을 발견한 것이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발랄하고 풋풋한 헵번의 모습에 매료된 콜레트 여사는 곧바로 적임자라고 판단, 그녀를 설득해 미국 브로드웨이로 함께 날아간다
그동안 생활고에 시달리던 20대 초반 헵번의 암울했던 1기 인생은 대반전을 맞게 되며 오늘날의 헵번을 존재하게 만든 밑거름이 된다
윗 사진이 문제의 지지 공연 당시 헵번의 모습들, 아직은 유명해지기 직전 무명시절 헵번의 앳된 모습을 엿볼 수 있음
그리고 이 지지는 이 때로부터 몇 해 뒤인 58년 레슬리 캐런 주연으로 영화화돼 이 역시 박스오피스 순위 역대 토탈 100위 안에 들만큼 흥행면에서 대성공을 기록함
헵번의 이미지에 여주인공 지지는 너무도 잘 어울렸고 그 결과 작품은 이른바 대박을 맞는다
애초 3,4개월 공연예정이던 일정이 연일 매진행렬이 이어지면서 어느 새 8개월 연장에 돌입했고 그 과정에서 이보다 더 거대한 매머드급 행운이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생애 최고의 해`, `미니버 부인`, `폭풍의 언덕` 등으로 당대 헐리우드에서 날리던 명장 중 명장감독이자 그 유명한 벤허를 연출하기도 한 `윌리엄 와일러` 감독(윗 사진)은 당시 신작을 준비 중이었다
로마를 배경으로 유럽을 순방 중인 어느 가상국가의 공주와 취재기자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을 준비 중이었는데 이게 기획초기부터 캐스팅 때문에 말썽이 일었다
애초 제작사는 공주 역에 당시 헐리우드 최고의 미녀로 부상하던 아역배우 출신 `리즈 테일러`를 물망에 올려 두었고 상대 기자 역에는 당대 최고의 인기남자배우이던 `캐리 그란트`를 사실상 확정한 상태
하지만 이 작품은 파라마운트사가 제작하게 되었는데 영화사 전속제가 엄격하던 시절이라 MGM사 전속으로 발이 묶여있던 리즈를 데려오긴 어려웠고 이 과정에서 상대역 내정자 캐리마저 캐스팅 문제가 지지부진해지자 어느 새 기권을 선언한다
(전해지는 또다른 후문이 리즈는 당시 MGM전속도 문제였지만 때마침 `닉 힐튼`과의 첫결혼이 파경을 맞은 것도 캐스팅 불발의 원인이 되었다고
청순하고 순결한 여주인공 공주 역에 하필 그 때 이혼한 직후의 리즈는 무리라고 판단해 고사했다는 설도 있음)
그러다 이번에는 당시 청순하고 고전적인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에다가 당시 햄릿의 오필리아 역으로 역대최연소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영국 출신 여배우 `진 시몬즈`를 캐스팅 하려 했는데 하필 이 때 진 시몬즈가 당시 헐리우드 막강 실력자로 날리던 `하워드 휴즈`의 스캔들에 연루되는 바람에 이 역시 불발
잇다른 여주인공 캐스팅 난항으로 골치를 썩고 있던 와일러는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이 지지 공연을 보러 왔다가 무대 위 헵번을 보고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내가 찾던 바로 그 공주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답을 알아챈 분들이 많을텐데 이 문제의 영화가 바로 `로마의 휴일`
그야말로 헵번은 엄청난 행운을 거머쥔 그것도 무려 두 개나 연달아쥔 가히 실사판 신데렐라인 셈이다
와일러는 지지 공연이 끝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다 헵번을 데리고 로마로 날아가 영화를 찍었고 이 과정에서 상대남자배우로 그레고리 펙을 캐스팅
이 모습은 로마의 휴일 촬영 당시 그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극 중 초반 앤공주가 연회장에 들어서는 씬을 찍기 위해 분장을 하고 있는 모습
이 장면이 초반씬임을 감안할 때 아마도 초반부 촬영 당시일테고 이 때 헵번은 짐작이나 하고 있었을까?
이 영화로 인해 자신의 앞날에 얼마나 엄청난 순간이 다가오게 될지를
영화 속 손꼽히는 명장면 중 하나인 그 유명한 헵번 헤어스타일 탄생 순간, 영화 속에서는 당연히 배우가 미용사 역할을 맡았지만 실제 헵번의 머리를 컷트한 미용사는 바로 아래 사진 속 연세 지긋한 분으로 저 숏컷트는 당시 전세계적인 붐을 일으켜 당시 세계 어느 미용실을 가나 `헵번 머리처럼 잘라 주세요`라는 말이 대유행
이 로마 로케촬영 종료 직후 헵번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미국으로 곧장 날아가 지지 미국 전역 순회공연에 돌입했고 이 지역공연이 거의 끝나갈 무렵 로마의 휴일이 드디어 개봉됨
`세기의 패션아이콘`인 헵번 신화와 스타일 그리고 헵번 헤어스타일도 전세계에 전파시킨 이 영화 한 편으로 무명의 단역배우이자 발레리나 지망생 그리고 갓 브로드웨이 신고식을 치룬 헵번은 일약 세기의 연인으로 혜성처럼 급부상했고 덤(?)으로 사실상 영화데뷔작이나 마찬가지인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광까지 안게 된다
위 사진들은 수상 직전 초조한 표정으로 발표를 기다리는 모습 및 수상 직후 오스카 트로피를 안은 채 감격스러워 하고 있는 모습으로 아래 우 측은 수상 당시 입은 의상
사실 이 때 가장 유력한 후보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불꽃같은 열연을 했던 `데보라 카`였는데 예상을 뒤엎고 헵번이 영광을 차지
이 것도 희귀한 사진인데 이듬 해 헵번은 차기작으로 출연한 `사브리나`로 2년 연속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도전했고 같이 후보에 오른 `갈채`의 그레이스 켈리와 시상식장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
아래 사진에서는 동료이자 경쟁후보인 켈리와 밝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윗 사진에서는 두 여배우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게 느껴짐
결국 이 날 켈리가 트로피를 안음으로써 헵번의 2년 연속 수상 도전은 실패로 끝났고 이 날 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여우주연상은 많은 사연을 남긴다
원래 이 때 가장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는 뮤지컬 영화 `스타탄생`에서 신기에 가까운 가창력과 연기를 선보인 주디 갈란드(불멸의 걸작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으로도 잘 알려진 아역출신 여배우, 그녀의 딸은 바로 라이자 미넬리로 73년 캬바레라는 작품을 통해 오스카 트로피를 안음)였는데 예상을 깨고 당시 하마평에도 오르지 못 했던 켈리가 수상해서 논란이 일었으며 이 날 수상을 계기로 모나코 방문 특전이 주어진 켈리는 현지에서 레이니에 공을 만나 모나코 왕비가 되는 운명의 출발점을 맞게 됨
비록 연속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사브리나 팬츠 등 전설의 패션을 탄생시킨 사브리나 출연 당시 극 중 초반 선보인 일명 지방시 원피스를 입은 모습
이 작품에서 헵번을 기용한 빌리 와일더 감독은 헵번에 대해 `뾰족한 가슴을 지닌 기존 여배우들의 틀을 바꿀 획기적인 존재`라고 평함
당시 영화계는 `나이아가라`와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등을 통해 관능적이고 글래머러스한 이미지로 어필하던 마릴린 먼로나 세기의 미녀로 부상한 리즈 테일러처럼 육감적인 몸매와 매혹적인 분위기가 여배우 세계의 전반적 대세이던 시절인데 헵번이 이 판도를 최초로 개혁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님
57년작 퍼니 페이스(한국 개봉시 제목은 `파리의 연인`) 출연 당시 파리 로케 현장에서 촬영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이건 사연이 좀 있는 모습인데 오드리 헵번이 동료배우 멜 파라와 1954년 올린 첫결혼 당시
둘은 헵번이 사브리나 차기작으로 선택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온디느에 출연할 때 호흡을 맞춘 게 계기가 돼 사랑에 빠졌고 007 작전을 방불케하는 특급비밀작전을 통해 결혼식을 치룸
기자들과 사람들의 극성맞은 관심에 이골이 난 두 사람은 일단 각각 영국과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렇게 헵번은 영국 영화 출연계약을 핑계로 기자들을 따돌리고 영국으로 날아갔고 파라는 이탈리아 여행을 핑계로 이탈리아로 일단 떠난 뒤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스위스에서 둘이 만나 현지 어느 소도시 한적하고 그림같은 교외에서 비밀리에 초대한 가까운 친지 몇 사람과 마을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명 속성결혼식을 치룬다
헐리우드나 우리나라 스타들이 나라 전체가 떠들썩할 정도로 화려하고 요란한 결혼식을 치루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헵번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극히 조촐한 예식
그만큼 둘은 조용히 치루길 원했던 것
이들은 부부의 연을 맺은 직후 영화 전쟁과 평화를 통해 온디느에 이어 두번째 호흡을 맞췄고 몇 년 뒤 장남 숀을 낳았다
그리고 10여년 뒤 결별했는데 이 첫결혼식에서 헵번은 스위스 풍광이 마음에 들었는지 말년을 이 곳 스위스에 정착해 허브 키우기 등 전원적인 생활을 하며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이탈리아의 정신과 의사인 안드레아 도티와 치룬 두번째 결혼식 당시, 둘은 아들 루카를 낳고 살다 10여년만에 종지부를 찍음
이혼 사유는 안드레아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기 때문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안드레아는 애초 헵번을 극 중 모습만 보고 반해서 팬으로 쫓아다니며 구애해 결혼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헵번이 은막의 스타로 존재하길 원했지만 헵번은 그와의 결혼 후 가정에 안착해 여자이자 주부로서의 삶을 원했고 여기서 갈등이 시작
여기서 배워야 할 진리, 화면 속 모습과 실제 모습은 엄연히 다른 것이고(그렇다고 헵번이 이중인격자라던가 인성이 나쁘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고 극 중 모습만 보고 환상을 갖는 건 금물이라는 것) 한 인간이 아닌 어떤 외부이미지나 직업으로서 조건만 보고 맺어지면 분명 대가를 치룬다는 사실
헵번이 아들을 임신했던 시절부터 성장기 그리고 최근, 엄마 뱃 속에 있던 아들은 어느덧 저렇게 아저씨가 되어 있군요
젊은 시절 헵번의 모습인데 이 때부터 이미 아프리카 기아문제에 관심이 있었음, 아까도 말 했듯 2차 대전 당시 그녀 자신이 기아를 체험한 적이 있는데다 그 때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았었기에 그 영향을 받아서
설명이 별도로 필요없는 말년의 모습으로 그 유명한 광고카피처럼 로마의 휴일에서의 모습보다 진정 더 아름다웠던 말년의 모습
이 때 헵번은 왕년의 헐리우드 스타로서 지닌 명성을 바탕으로 가만 있어도 떵떵거리며 편하게 먹고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 경비 외에 지급되지 않고 근무현장도 당연히 척박한 유니세프 일에 뛰어들었다는 것
올 해로 헵번의 타계 20주기가 되는데 이 분 더 오래오래 사셨어야 하는 건데 말이죠
매력적인 입술을 가지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가지려면
사람들 속에서 좋은 모습을 발견하라.
날씬한 몸매를 원하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려면
하루에 한 번 아이로 하여금 그 머릿결을 어루만지게 하라.
균형잡힌 걸음걸이를 유지하려면
당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걸으라.
물건 뿐 아니라 사람도
새로워져야하고, 재발견해야 하며,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무시되어선 안 된다.
당신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할 때
당신 역시 팔 끝에 손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라.
나이를 먹으면서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음을.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나머니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익히 잘 알려진 헵번의 유언 내용, 참으로 외모만큼이나 진정 아름다운 인생과 내면 철학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을 지니고 살다 가셨던 분이죠
헵번이 영면을 취하고 있는 곳의 모습
헵번의 운명 직후 장례식장으로 달려온 오랜 동료이자 친구였던 리즈 테일러는 이렇게 말 했다고 합니다
<`하늘은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를 너무나도 빨리 거두어갔다`>
윗 사진들은 두 분이 생전 우정을 나누던 시절의 모습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몇 가지 있죠
둘다 2차 세계대전이 탄생시킨 여배우이며(만일 전쟁 때문에 헵번의 집안이 몰락해 헵번이 생계를 위해 영화계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그리고 전쟁을 피해 테일러의 가족이 영국 런던에서 미국 헐리우드로 이주하지 않았다면 둘다 배우가 될 일은 없었을테니까) 세기의 대표 미녀였고 로마의 휴일과 인연이 깊으며 어머니들의 극성으로 배우생활을 했다는 점 등
헵번의 말년 시절 모습, 특유의 매력을 여전히 간직하고 떠났던 그녀
첫댓글 와 ... 진짜 아름다워요
아 우리 헬스장 나오는 러시아 처자가 이 분 닮았군요. 계속 어디서 본것같은 느낌이더니.
태어나실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아름다웠군요.
갠적으로 전세계 여배우 중에서 단연 원탑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자 복이 없었던게 너무 안타까움 ㅜㅜ
미의 기준은 몰까요..ㅋㅋ 외국인 보고 이쁘다고 생각한적이 한번도 없는 1人,,,,
아름다우신분 정말 팬입니다
사진속의 아들은 '팀 로빈슨'을 닮았네요.
역시 클래스는 살아있다네요...ㄷㄷ 진짜 미모 도그렇고 마음 씀씀이 전부 아릅답습니다~!!
이쁨이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