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이 뿌옇다.. 대나무 숲길을 지날때까지 괜찮던 안경에 서리가 서렸다. 에공.. 화엄사로 흘러가는 계곡물은 금새라도 넘칠듯이 엄청난 소리와 함께 굽이친다. 계곡이 무섭다는 걸 새삼 깨우친다. 이렇듯 많은 물이 계곡에서 흐르는 것은 처음이다. 장마기간에 왔으니 어쩜 당연한 것이겠지만..
물소리를 빼면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귀가 이상해진 것인지, 물소리가 너무 큰 것인지 하여간 새소리가 들리지 않느다. 더 올라가야 하나? 두개의 나무다리를 건너 안개속을 뚫고 오른다.. 참샘을 지났다. 샘은 무신....에공.. 그냥 내려 가는 건데..
산사 이름을 잊어버렸다. 뭐였더라.. 연xx뭐라고 했던것 같은데.. 안개속에서 희마하게 보이는 암자를 뒤로하고 쉬지않고 오른다. 물소리가 좀 잦았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앞에 희미하게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두개의 스틱을 잡고 느릿 느릿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멀리서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된다. 안개도 있구... 안경에 서리도 끼었구...
앞서가던 사람은 여자이다..유휴~~~~~~~~~~~~~~~~~~
검정상하의에(보기엔고어텍스이당.. 부럽당), 양손에 스틱... 그리고 얼핏봐도 비싸보이는 장비들..(언젠간 나도 ...ㅠㅠ...)
안녕하세요~~라는 말한마디와 함께 지나쳤다. 한참 앞서가다가 왠지 걱정이되어 돌아보았다. 여전히 느릿느릿..앞서거니 뒷서거니 천천히 걷던 나는 한참을 앞서가다 배낭을 길 옆에 벗어두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식당에서 담았던 보리차를 비우고 계곡물을 담았다. 설마 먹고 죽기야 하겠냐..ㅋㅋ... 잠깐 족탕(?)을 하고나서 다시 그녀(?)를 쫒아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앞서가던 그분은 내가 뒤에서 나타나자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긴 내가 길가에서 사라졌으니...(여러분 길이 아닌곳은 가지마세요). 다시 인사를 하고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는 인사만 남기고 쉬지않고 눈썹바위까지 올랐다.. 드디어 새소리를 들었다.. 아~~~ 좋아라.
여기서... 한만디.. 처음 지리산에 와서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 죽어라 눈썹바위까지 올랐는데(그때도 역시 이구간은 사람이 적었다.) 윗쪽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너무 반가운 나머지 냅다 올라갔는데.. 산길이 갑자기 없어지더니... 잘 정돈된 길이 나오는것이었다. 그 길을 땀에 범벅이 되서 길가에 앉아있는 내 옆으로 힐을 신고 양산을 쓰고 잘 빠진 원피스를 입은아가씨와 반바지에 샌달신은 아저씨가 지나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황당합니다.. 처음 지리산 종주를 꿈꾸시는 분들.. 여기서 허탈해 하시면 종주 하실수 없습니다.. 참고하세요.
하여간 어찌되었든 눈썹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나는 냅다 노고단 대피소까지 올라갔다. 안개로 사방은 이미 앞뒤 구분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역시나 대피소에서는 노고단 탐방은 취소되었으며, 어쩜 산행도 통제될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이미 노고단과 벽소령에 예약을 해논 상태였다. 시간은 12시 10분..
노고단 탐방을 맡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왜 안가냐고 했다.. 그냥요..
하고는 짐을 정리했다. 약간 쌀쌀해진 날씨때문에 젖은 티를 갈아입고 점퍼를 입었다. 한시간이 지났다. 왠지 그 아가씨가 걱정이된다. 장비를 봐서는 완전 전문 산악인인것 같던데.. 아직도 안오다니.. 걱정이다
할아버지에게 말했더니 걱정말란다. 이제 1시인데 하시면서..
역시 1시 30분즈음.. 그 여자분이 올라왔고 난 육포한봉다리와 바꾼 커피메이트 두개중의 하나를 꺼내 그여자분에게 건냈다, 수고했다는 말과함께.. (작업이라고 생각지 마세요. 얼마나 걱정했는데.. ).. 그나저나 서두르는 바람에 커피도 안가져 왔다. 뭘또 안가져왔지.. 걱정이다..
그렇게 노고단의 하루는 저물었다. 대피소 앞에서 오후를 쪼그려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역시 사람구경이 최고다..^^***
그러다가 이번 종주의 일행이된 괴산에서 오신 부부를 만나게되었다. (이하 "형님부부") 두분은 지리산이 처음 이라고 하셨다. 산장 예약은 물론 그런것이 있는지도 모르신다.. 하. 하. 하.
그 아가씨는 천안사람이라고 한다..(이하 "천안댁")
천안댁과 형님부부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저녁을 맛나게 먹고 있었다. 물론 내 부식이 모두 나왔다.. (앞으로 산행을 걱정하면서 ㅠㅠ)
그런데 한 입이 더 늘었다. 무전여행하는 남자분이 달랑 컵라면 하나들고 취사장에 나타났다.. 헐...이럴수가.. 독종이다...
맘좋게 웃으면서(..ㅠㅠ..) 내부식은 또 나왔다. "이슬"이와 함께..
남자분은 서울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구 했다. 자신이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최종목적지는 아직이라고 했다.그렇게 술한잔이 오고가던 저녁을 마치고 우린 산장으로 들어가 예약확인을 했다. 물론 예약자는 천안댁과 나뿐이고 다른 분들은 1시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다. 좀 일찍 들여보낸다구 별로 달라질것두 없는 것 같은데.. 사람은 고작 10명을 넘지 않았다. 형님부부가 지리산의 첫인상이 별로였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짐을 풀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늘어난 일행과의 산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불안한모습으로 내일 통제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설마라는 생각을 하며.. 왠지 불안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안개속으로 한방울씩 떨어지는 비를 보았다. 이런!
속으로 '앗차!'했다. 여긴 지리산이다. 고산지대다.. 일기는 언제나 변한다..낭패다.. 어쩌지..
그렇게 서성이던 내게 녹차를 권한것은 천안댁이었고 난 다른 일행과 상의도 할겸.. 모두 같이 취사장으로 갔다.. 그리고 술파티가 시작되었다. ㅠㅠ.. 내 부식 .. 내 이슬이..
"그래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
고량주며.. 백세주며.. 이슬이도.. 건배.. 위하여..(내 이슬이.ㅠㅠ.)
안개가 조금 걷힌 대피소 앞에는 어느덧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었다. 술이 확..!..
잠이 안온다.. 11시 즈음에 두사람이 비를 쫄딱 맞구 산장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새벽에 용인대 학생들이라는 시커먼 빡빡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무섭다..ㅠㅠ..
첫댓글 잼 있네요...하긴 성삼재길을 모르는 사람들도 간혹 있더군요...그래서 그 평평하게 잘 닦인 길을 보고 허망해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긴하죠...근데 아직 끝난거 아니죠!
저는 힘들게 올라 도로와 만났을때 그 자리에서 바라보는 노고단이 제일 좋더라구요~~
저도 아주 오래전(한 10년전쯤?) 그랬어요...너무 허망해서 그자리에서 사망할 뻔했죠...ㅎㅎ
그거 모르고 갔을 대는 주저 않고 싶더만
저도 작년 화엄사 계곡을 힘들다 오르다 성섬재 도로에서 분홍 양산들고 뾰쪽이 하이힐 신은 여자들을 보고 쓰러지는줄 알았음당..ㅎㅎㅎ 아..잊혀지지도 않아..그래도 이번에도 또 화엄사길을 오르렵니다..ㅎㅎㅎ
우와 저다음날에 노고단에 오셨네요 노도단에서 비맞으며 벽소령까지 갔었는데 그담날 저희들고 내려와야했답니다...ㅋㅋ 넘 아쉬워서 다시 갈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