逆說 倒視 魔眼 章 주제넘게 제목은 거창하게 붙였으나 그렇게 정리될지 의문이다. ○ 앞서 잠깐 내비쳤지만 他의 감관으로 비춰 본다이다…。나비열매 그것이 그렇게 생겨있는 것은 種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써 자기 있음을 계속 내보이려는 것이다.이것은 공에 의한 것은 空감을 갖췄다는 뜻이다. 오감과 육감의 차원을 넘어섰음을 뜻한다。일단락하고… ◎ 여기 꽃이 있다。꽃이 어떻다고 사람이 보고 그런다. 즉 감상한다。이는 사람이 꽃을 감상함이 아니라 꽃 스스로가 사람의 心情을 써서 제 스스로를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쓴다는 것은 빌린다던지 통한다던지등하여 씀을 뜻한다。혹 거울처럼 비춰본다고도 할수 있다.간단히 이 뜻을 주려 말한다면「사람이 꽃을 감상함이 아니요. 꽃이 인간의 비춰볼수 있는 如他者 등등) 심정을 빌려 스스로를 감상함이나니라!」이런 말씀이다。이와같은 논리를 유추(다른 것에도 적응시킨다면) 한다면 무엇을 하는 行爲는 行爲者와 그行爲自體가 함이 아니란 뜻이요。그 어떠한 것에 유도되어 피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에 불과한 것이며 그 어떤 것에 願을 벗기고 있는 行과 形이라면 行과 形。또는 象이라면 象이라는 것이다。그 어떤 것이란? 對稱되는 모든 것과 또는 그 자신일수도 있다。行은 그의(저쪽) 行이요 그 行者는 이쪽이란 뜻이니 行者가 얻고자 하는 行爲는 도리혀 行者에겐 잃는 行이요 베풀고자 하는 行爲는 얻는 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와같은 논리는 소극적이 내용상의 말씀이요 이러한 뜻을 깨달았다면 잃는 것은 잃는 것이고 얻는 것은 얻는 行이 될 것이다。모든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가만히 있는 象 등 其他의 意味들이 스스로들이 줏데되어 있다 생각하나 이는 헛된 착각에 불과하다。그렇기 때문에 인간 및 만물의 개체 성질이나 정신들은 사단의 꼭두각시라 함인 것이다。즉 내라 하는 줏되는 사단이다。그럼 참은 있는가? 참은 없다。혹者가 여기길 이렇게 부리고 있는 것을 하나의 者로 만들어서 참이라 할지 모르나 그 또한 願 많은 사단들 틈 속의 하나의 사단에 불과한 것이다。이런 것을 어떠한 질、량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는 그 자체가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그러나 개중엔 한없이 슬기있는 체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아서 굳이 표현치 않고선 직성이 풀리질 않아 별- 잡다한 것을 주장、풀고자 하니 이 또한 원에 탈을 구함이니 굳이 탓할 수많은 없어 별- 잡다한 것이 스스로 나서게 해서 탈케 함인 것이다。사단의 능력이 무량이며 없는 걸 만들길 좋아하니 무엇인들 못하랴? 고양이 뿔도 만들어 믿게 하리로다。제삼자적인 입장 하늘이라 하는 것이 만들고 즐기고 있는가? 삼자 아니 사자라 하더라도 그 또한 돌고 도는 테속의 만류 삿된 진리들에 불과하고 일가견의 이론 정립과 관념 상념력의 능력속에 들어있어 무엇이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저 꽃은 걷고 있고 저 새는 날지 않는다。저 꽃은 만물에 다리를 가졌고 저 새는 땅에 뿌리한 날개를 가졌다。실로 그러하다。이렇게 질량과 뜻으로도 구별이 없거늘(혹、 하나이나 한울타리 나희란 뜻으로 착각하지 말자) 개중에 들은 저 새는 날고 저 꽃은 한 곳에 가만히 있다 하는 것이 보편적인 대중의 관점이라 한다。질량이 없으니 구별이 없고 拘別이 없으니 모순이 없고 모순이 없으니 그 아무런이다… 이 논리가 잠깐의 관념일 뿐이다。다 삿된 생각이나니라。 ㅇ ◎ 삿된 진리를 세워 偶像 似而非 信仰이 되기까지 무엇을 추구코자 하는 그네들도 다 뜻이 있어서 그러하거늘 시아비타 하는 좁은 마음에서 긍정적으로 봐주기에 앞서 비판이 앞선다。世人이 궁핍하게 살다보면 갖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그러다 보니 심신이 찌들리고 갖은 갈등과 번뇌의 늪에서 시달림을 당한다.또 넉넉하게 살더라도 불안한 바가 왜 없겠는가? 불확실한 세상에 몸을 얹고 있다 보니 남을 공격하는 것이 최대의 방어라 하고 또 사람의 심리가 비단 위에 꽃 수놓듯 말 타면 종 두고 싶듯 점점 더 낳은걸 기대한다。부유한 혜택에 호강에 겨우니 그위치를 잃지 않을까 근심하고 세상이 하도나 어지러우니 위태한 듯한 불안한 심정에 나름대로 갈등 허우적거리는 것이다。이럴 때 누군가가 나타나서 만사 해결해 준다면 갈등해소 차원에서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심정을 파악, 그런 마음들을 逆利用코자 하는 者들이 이상 야릇한 짓을 갖고 눈길을 끌어 유혹한다면 현혹되지 않을 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치우한 생각을 갖게 하는 자가 생기게 마련인 것이다.그러나 어느 천치 머저리가 이런 유치한 방법을 써 꼬득인다고 속아 줄 것인가? 속 들여다 보이는 곳엔 누구던지 잘 속아주지 않는 법이다。평소에 보통 평범한 것처럼 하는 그런 속에 그런 것이 스며드는 것을 누가 천리안을 갖고 꿰뚫어볼 것인가? 곧、常道에 非常한 바가 있다고 行하는 길가에 꽃처럼 눈길을 끈다면 절로 구경하듯 현혹에 들지 않을 사람이 드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알고도 속고 몰라서도 속고하게 된다.또는 그 유혹하는 방법이 애걸복걸하는 구걸하는 行을 취한다던가? 위협 공갈 등 여러 가지 行態일 수도 있을 것이다。이런 방법에 주위 여러 상황이나 뜻을 봐서 못 이기는 체 속아주기도 하고 참으로 힘에 붙쳐서 쇠뇌되어서 속기도 한다.또 속지 않 속는지는(덕이 않되고 되는지는) 겪어봐야 알 것이지 누가 알 것인가? 하곤 믿져야 본전 상투적인 수단인지 아닌지는 봐야 한다 하곤 일부러 시키는대로 하다 보면 그것도 괜찮은 것처럼 여겨져 물이 들고 물이 들다 보면 펼치고자 하고 이런 가운데서 송사리가 잉어처럼 되어 가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축적된 경험에 의해 자체적으로 능력이 생겨 그 위력을 과시하게 되는 것이다。마음먹게 하는 뜻이라는 것이 진리의 우두머리로써 사단의 최고봉인 것이다。진리를 세워 몽매한 世人을 꿰이는 것이 어지간히 머리가 회전하는 자라면 그리 어렵지 않다 할 것이니 조금이라도 먹혀들 기미가 보인다면 뼈대를 세운 것이니 그에다가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히는건 더 쉽다할 것이다. 그렇게 갖은 장식 다해서 世人에게 뿌리를 내린다면 아주 제법 그럴싸한 훌륭한 허재비 邪端 信仰의 우상이 된다 할 것이다.그것이 능력이 있는가? 능력이 있다마다 그것을 떠받드는 世人 추종자들의 힘이 있는데 능력이 없다하랴?(※ 저마다 미신 의혹에 걸려 넘어져「모다、다 이렇게 되는 것이 우상덕이야 우상님 덕이야」하듯 속으로 갖은 빎의 웅얼거림을 할 것이다. 추종자들 스스로의 功을 제 功인 것처럼 추종자들에게 여기게 한다. 즉 추종자들의 힘을 逆으로 利用한다。조그만치 심적인 의지처를 제공했다는 것이 되었다면 아주 功이 없는건 아니다. 이것 또한 추종자들 저마다 심취해서 그렇게 생겨난 것을 아주 제 공이라고 할수 없고 오히려 미혹에 들게 하여 몽롱케 한 허물을 질책하여야 마땅하다 할 것이다) 저 ㅡ앞에서 지금까지 쓴 글이 필자의 사단에 말씀이나 또한 진리는 없으나 진짜로 일가견을 피력하여 사단의 末世論의 능력있는 진리를 한 例를 들어 세운다면 이러하다…(※ 정신에 객설 이론이 많이 잡혀 본론을 정리케 못하니 우서 객설 이론부터 떨어놓고 본론에 들어 갈까 한다. 객설이 말하길 말세란 말은 세상 생길적부터 말세라 하는 것이니 세상 생김을 어디 멀리서 온 것으로 생각지 말고 현 위치 空으로 본다면 空을 이룬 어느 일부분의 공의 개념에 대한 이탈을 요구하거나 또는(이 말씀이 글 흐름상 잘 맞을지 모르나) 상황이 걸맞지 않아 부패 퇴색됨을 뜻한다 할 것이다。집을 짓데 목수가 짜 맞추다 보면 재목이 부실하던 기술이 부족해 착오를 일으켜서 마름을 잘못했던 잘 맞지 않을 적도 있다 할 것이다。그런 것을 잘 짜맞추려고 하다 보면 더욱 힘만 들고 그렇더라도 요행이도 잘 되면 다행인데 텅그러져 어긋난다면 노력한 보람이 없게 된다. 이런 것이 누적되다 보면 점점 늙어(퇴색돼) 갈 수밖에 더 있겠는가? 또、힘이 부친 부패라 할수 없지만 미연에 방지책이 있더라도 그것이 기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길 원한다면 의외의 변수는 있게 마련인法 기운의 부패 좀벌레가 갉아 먹는 부패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 主說을 써 보기로 하는데… 이제나 저제나 세상이 혼탁 어지러우니 틀림없이 말세가 도래할 것이다。들은 풍월에 저마다들 머리가 쇠뇌되어있으니 옛적에는 물로 심판했는데 이제는 불로 심판할 것이라 한다。여기까진 다른 사람들의 주장과 같다。그 아무것이가 시공을 초월해서 세상을 살펴봄에 세상 돌아가는 것이 한낫 철부지 짓거리와 같음이라 즉 흐름은 行이라 行은 짓거리라 짓거리라 하는 것은 만물의 그 잡다한 事 짓거리라 마치 린아이가 땅에다 막대를 대고 헤짓 거리는 거와 같으니 그 짓거리를 하다 보니 形象이 생긴다。그렇게 생긴 형상 여러 가지 즉 삼라만상과 갖은 오감으로 느끼는 것을 다 제쳐두더라도 한 例를 든다면 긋는 劃形이 있다。이 획形으로부터 뜻글이던 표음글이던 文字가 있게 된다。그'러한 文字中에는 우리 나랏말씀도 있다。우리 나랏말씀중에도 물 字와 불字가 있으니 물은 水를 뜻하고 불은 火를 뜻한다 하나、물의 音域에는 그런 물을 뜻함도 있겠지만 동물 식물 물 물 하는 물도 있고 불은 佛을 갖다 불이라 하기도 하고 부정하는 말씀으로 많이 쓰이는 등 그 뜻들이 다양하다。이상의 물불에 대한 뜻들중에 진리를 세우는데 유리한 뜻들만 我田引水格으로 그 뜻을 취하여 해석한다면 '옛적에는 물로 심판 했는데 다음엔 불로 심판한다.에서 불 字形을 가만히 헤집어 풀어보니 물 字에 두뿔이 난게 불 字形이라 물이 뿔이 났다는 것은「龍生頭角然後登天이라고」완성의 경지나 또는 물이 뿔따구 났으니 성깔부리는 성난 파도나 또는 뿔난 물(짐승)등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완성의 경지란? 그 완성된 것의 造化能力 威力誇示로 飛躍發展하고 성난 파도는 그냥 그 自體로 물이 넘실거리는 격랑과 태풍에 의한 바다의 성난 폭풍을 동반한 높은 파도의 울부짖음을 의미한다 할 것이고 뿔난 짐승엔 여러 동물이 있으니 소, 양, 사슴、노루 등과 상징적인동물이라 하는 龍 등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불로 심판한다는 것은 맨 전과 동일하게 성난 물로 심판한다는 것이거나 조화능력을 보일수 있는 어떤 완성의 단계를 갖고 심판한다거나를 뜻함일 것이고 모르긴 몰라도 어찌 뿔난 짐승이 세상을 심판하겠는가? 이는 그 뿔난 짐승의 명칭이 뜻하는 어떠한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을 비유해서 말한것이라 할 것이니 여기다 음양오행과 육갑설을 加味한다면 六甲地支 十二支中에 以上의 동물 몇을 대변하는 것이 있으니 소를 갔다 丑이라 하고 양을 갖다 未라 하고 龍을 갖다 辰이라 하다 正五行으로 거론해 볼적에 진술 丑未가 中宮에 들었으니 이중에 개(犬)를 갔다 戌이라 하는데 개는 성난 짖음을 잘하니 이로 뿔다귀를 대신한다 하면 즉 중앙의 폭발적인 성냄의 심판을 뜻하니 다시 말하자면 中宮의 핵심적인 핵폭발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핵폭발로 살아있는 생명체나 구조물들을 없애거나 못쓰게 한다로 짧은 문장실력에 되구 말구 진리를 세운 것이다로 한다면 그럴듯한 사람을 속일만한 삿된 진리를 세운 것이 된다 할 것이다. 여기다가 동서양의 갖은 철학 예언서의 비유사를 견강부회하여 살을 붙이고 잎을 달고 옷을 입혀 갖은 장식 다하고 사각공식 삼각공식 덧셈 뺄셈 등 갖은 산술 물리공식을 갖다 보태어 약합부절한 듯 주워 맞춘다면 그야말로 말세가 아무때 아무적에 到來한다고 아니할까 보냐? 이렇게 하여 世人을 꼬득임을 꿀벌이 꿀준다고 눈꼽파리 꼬득이듯 한다면 아니 넘어갈 중생이 드믈리라(※ 친구가 말하길 사람 짐승 등의 눈꼽을 꿀에 섞어야(혼합) 좋은 약이 된다하여 꿀벌이 눈꼽파리에게 꼬득이길 눈꼽 따오면 달콤한 꿀 준다 하므로 눈꼽파리가 꿀을 따옴에 꿀벌이 하는 행동이「에이! 이놈 너조차 꿀에 넣자」해서 벌꿀에 눈꼽파리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단의 진리를 세웠으니 사단의 능력이 至大하여 천둥 번개 지진 해일 화산폭발 등 천재지변은 물론 사시사철 춘하추동의 변천과 삼라만물 삼라만行의 움직임을 다 제가 한다 하리로다。또한 어찌 이만일까? 위엄을 떨치는데 있어 말씀이라도 좋은 뜻쪽으로 하라! 중앙 핵폭발이 아니라 말세에 당도해선火氣를 쓴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갖은 공해가 만연해 생명체를 살게 하는 산기(알카리성 산기 신선도)인 생기가 다 말라 비틀어짐이라 이럴 때 중앙은 王을 의미하니 이 나타나셔서 어지러운 末世 世上을 구제해서 새롭게 할 것이다 등등 그 새로운 곳에 가려면 솔깃하게 하는 이 말씀을 믿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량 사단 진리가 되리로다 하리라°이 모두가 쓰잘데 없고 부질없는 마음 약한 사람 등쳐먹고 뭔가 마음에 죄책감 같은게 있거나 그런 의식이 들게 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심적인 큰 부담이나 걸림이 있어 생전 생후에 자신없어 하는 자들을 영리 목적하에 이용해 먹고자 하는 수단과 방편의 사악한 자들의 짓인 것이다。그중에 혹 世上사람 길이 유덕하게 하는 뜻이라도 있으면 甘言利說이라도 취해볼까? 다른건 혹세무민이라 별볼일 없다 할 것이다. ◎ 救導者와 邪惡의 관계 구도자가 구도자가 아니다。무엇을 좋은 쪽으로 구제하겠다는 것은 逆說的으로 악이 온 세상에 가득차라고 축원하는 것이다。벌리고 찾고 열고 구함이 시건방지게 무엇을 펴고자 함이라°소위 저 있음을 그런 식으로 내보이겠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모두 삶을 영위코자 저(自)일을 만들어 그 業에 從事하는 사람들이요 모두가 다 벗기를 바라는 고행자 수련자이지 救導者란 명분은 껍질에 불과한 것이다。그 저와 公衆을 위하는 생산적인 일마다 救導의 行인 것이다。 또한 그렇다고 이 모두가 다 구도자요 大醒者는 아닌 것이다(※ 草案엔 모두가 다 이 보살이요 이 부처님이다로 돼 있음) 누구를 또는 무엇을 구제하겠다는 생각力이 이미 사람들을 갖은 어지러운 늪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왜냐? 그래야지만 제 목적 성취를 하는 구제거리(구실(명분)을 붙칠 事件)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배고파 보채는 아이 앞에 먹을게 던져지는거와 진배없다 할 것이다。구제란 뜻과 명분의 허울을 뒤집어 쓴 속에 꼭 같혔으니 누가 그 허울을 벗겨줄 것인가? 세상은 글 쓰는 그대의 생각과 틀려서 사악함이 자연발생적으로 가득하다。그러므로 구제의 손길을 뻗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행동이지 그대의 주장처럼 그 꺼리를 조장시키는 것은 아니다 할지 모르지만 무엇을 하겠다는 그 뜻 자체가 行의 器를 이룸이라 그에 담길 것을 어찌 바라지 않을 것인가? 이다。이렇다 하는 理想主義(여러 敎化類)들이 갖은 삼라의 象이 되어 그 허울을 벗기기를 부단히도 노력하나 이 또한 집착된 고(罟)에 메여 허울을 벗기는 자도 되지만 저마다 허울 벗기를 바라는 갖은 짓거리(行)의 形을 다 뒤집어 쓰고「나요! 나요!」하는 자들인 것이다。저- 선생님이 학생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저 선생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이만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위하여 있고 서로 때문이라는 너 때문에 내가 이렇다는 등) 무엇이든 이유를 달아 생겨나고 그런 가운데 피차가 뒤엉켜 모두가 다 그라면 그요 그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 됨인 것이다. 목적이 고(罟)요. 희망 소망 이 이 나니라! 그 원 풀겠다는 것이 또다른 고(罟)를 일으키는 것이다. ◎ 假天(삿된 진리)이 판을 친다. 하늘은 그 일을 하지 않은지(쉰지) 이미 오래이고 하늘이라 하는 자만이 어지럽게 난무하여 하늘 노릇하려고 고통 등 갖은 겪고를 다 겪고 있다。하늘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理治가 아닌가? 理治인데 진리(참 다스림) 없는데도 진리요 생명이요 내세우면서 여러 象을 지어 부르짓듯 내보이고 내보이고자 하는 類들이 하늘이라 하는 자들의 行인 것이다。진리 없다는 것은 그런 다스림 그것만이 아니란 뜻이다. 즉 어떠한 것을 지칭하여 하늘이라 하면 하늘은 너의 지칭함만이 아니란 뜻、또는 하늘 位로 올리고 하늘 너만이 아니란 뜻이다。그러함으로 하늘이라 하면 갖은 것을 다 겪지 않고선 베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마치 迷宮의 蒼空이 온갖 것을 다 포용하고 빨아들일 듯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理는(원래란 뜻과 말이 없어) 原來 없는 것이다。理는 얽어메어 있음인 것이다.그러므로 理는 얽음요 理는 흐름속의 神이요 생명이요 그밖에 모든 것이라 하는 것이다。하늘이란 진리를 세우면 잠식해 먹기를 즐겨 온갖 것을 다 물들이고 제것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고 한없는 욕망으로 흐름이라 공리 공존 등 상대성을 인정하는 체 하지만 실제에 있어선 자기발전만을 도모코자 자기를 肥大 하게 하기 위하는데 利用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반드시 그렇치만도 않다 할 것이니『위한다는 내 참마음도 몰라 준다』는 말이 있듯이 끝없는 보살行도 있을 것이다。이는 後覺論) 하늘이라 하면 그 쓰고 험난함이 이루 말할 나위 없다。그쪽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않은 것이 상영치 않은 많이 감긴 필름이나 굳은 반석이라도 이쪽에 상영할수 있는 시간은 더욱 길고 흐르는 물 되어 억천만번으로 갈라서 잠식해 먹어야 직성이 풀리리니 부드럽고 유약한 것처럼 보이는 걸로 한없는 數의 희생을 시켜서라도 굳이 먹어치우고자 하나니. 마치 바둑두기에 요지를 얻으려고 수많은 돌을、희생시키는 것처럼 말이다.그 요지(반석)와 그 바둑돌(흐르는 물)이 하늘이라 하는 자의 것이 아니렸만 그는 제껏인양 자기인양 착각하고 말이다. 또한 그 버팀(반석)이 하늘이 아니요 사탄을 키우는 거름이로다。그 버팀이 나를 이겨봐라 하는 듯이 삿됨이 지극하여 내세움이라 저 ㅡ 고(罟)를 벗기 위하여 이 로 있을 뿐인 것이다。 ○ 邪端이 醒者 허울 말씀 흐름이 억겁으로 돌아 마음과 육신이 恒時 이、내가 아니나니라。영혼이 그의 영혼이니 집 또한 그의 집으로 있었고 있을 뿐이다。쉽게 말해서 지난 일을 생각하니 비와 눈 구름 돌밭이었다 하면 그 영혼의 마음이었고 그의 집 육신이었다는 뜻이다。서운한 마음이 들때에는 그의 回流였고 기쁜 마음이 있었을때는 그의 回流였었다. 심신이 수많은 回流의 원가짐을 벗기는 이 들어주는 제공) 여러 醒醉者들의 理想과 主義 信仰들이었으며 또 실제적인 해주는) 것이었나니라 지금 이 시각도 그렇다. 돌고 도는 회류들이 그 수가 억조무량이고 한없고 궁합없어 장면 장면과 자막 자막의 움직임처럼 모두 그들이요 그들의 겹침이나 니라。空化하여 삼라 萬有로 표현하나니라。느끼지 못하여 표현치 않는다 하는 것까지도 이 표현하나니라°말씀이 먹히는 것 같으니 표현치 않는다로 표현하는 것도 있나니라。그렇다고 심신이 높은 것이다로 착각하지 말라。이 지극히 삿된 것이라。내라함으로써 갖은 시련을 겪고 있는 가련키도 하고 엄히 벌 주고도 싶은 요리조리(이리저리) 잘도 빠져나가는 자이나니라. 지난바를 조명하는 閑時의 생각…같이놀던 朋友 떠나간지 이미 오래도다。그 붕우 소개되어 雲에 노닐고 베 적삼에 방망이 수건 곰방대 꼽고 양류그늘 바위에 걸터앉아 흐르는 냇물에 발 담구고 있는 저- 草老는 두손모아 무릎얹고 모든 시름을 다 떠내 보낸 듯 편히 쉬지 이미 오래니라。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있어 일어날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베 적삼 땀 내음이 그리도 좋은지 미풍속 흔들리는 잎새에 흐르는 가락 저 매미 한곡조 읊어내린다。이것 또한 한때의 생각회류이다.※ 정리때에는 피아노 선율이 어디선가 흐르도다。아마 바보상자에게 서이겠지…丁丑年임。다시 매미소리난다、끝쳤다 또 난다. 戊寅年 七夕日 巳時 교정때다。 ◎ 흐름이 억겁으로 돌아 이 恒時 나(我)니라。왜냐하면 그 흐름이 없고 그 항시가 없어 나라는 진리 삿됨의 내세움으로 굳건히 있기 때문이다.그냥 나이다。그 흐름과 항시가 없는 것은 나를 걸쳐 탈파하였기 때문이다。삿됨을 걸쳐 탈파해서 아무러크소니에 들고 사단만이 존재하나니라.위대한 사탄이시여! 그 어떤 추앙하는 명칭을 쓰는 것보다 또는 그들을 가르키는 뜻보다 훨씬 낫나이다。굳이 얄팍한 좋다하는 명분으로 둔갑할 필요가 뭐이 있으시리요! 하리로다。사단은 위대하다。왜냐? 내가 여기까지 이르게 하였음으로서니라。 사단이 아니면 누가 나를 이끌고 올 것인가? 제 잘난체 하는 무리들이 나를 키워주겠는가? 짓밟고 올라서는 디딤돌을 삼고자 할래기지…스승은 다양하니 모두가 다 거룩하옵신 참다운 聖子들이신 것이니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그것만이 나에 스승이라곤 할수 없는 것이다。내 겪어보니 스무나무가시와 독수리 발톱 猛금수들도 모다 나의 스승이었고, 독극물과 시퍼렇게 날이 선 刀劍류들도 나에 스승이었다。하필五色구름과 꽃과 벌나비 산해진미 지초방초 꾀꼬리만 나에 스승이 아닌 것이다. 恨많은 이세상해 억겁으로 道를 닦으면 사마귀가 너를 놔 준다고 꾀인다면 정말 그리될까? 그 業에 종사하는 한 그 업에 얽메이게 하여 절대로 놔주지 않나니라。왜냐하면? 삶의 경우 事의 경우 등 경우라는 常理를 내세워 그런 法이 어디 있느냐는 식의 사람을 꽁꽁 옭아 메는 律테속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속박하기 때문이다. 그 속박은 삶의 道理인 것이고 그 도리는 내라하는 삿된 진리가 되고 그 진리는 운명을 간섭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사마귀가 놔주지 않게 되는 것으로 됨인 것이다。餘恨 가진 귀신이 왼팔이 오른팔을 헐뜯게 하고 오른팔이 왼팔을 헐뜯게 함이 끊임이 없나니。전생이 후생을 저주하고 후생이 전생을 저주케 하나니라。귀신은 덫을 놓아 제 능력 行事를 하고 풀어주는 것으로써 능력행사 조건 꺼리를 삼나니 삼라 모든 空相이 터인 것이다。세상이 너무 어지럽고 사악해서 선하게 살라 하니 선하게 살다 보니 약질이 되어 남보다 뒤지게 되고 뒤진 삶은 남보다 못한 것이 되므로 그 후생을 가르켜 너만은 악발로 살라 하고 악발로 살다보니 삶의 후회가 있게 되어 전생을 저주하고 그 후생을 또、선하게 살라하여 그 한결같은 가르침(訓謠)을 지키지 못하고 자주 변경하는 것이 이에서 비롯됐다 할 것이다. 도대체 선악의 개념을 어디에다 두는가? 마음을 유약하게 먹게 하는 일체의 모든 가르침(사양 희생 봉사 등 남의 사정을 봐주라 힘없는 곤란을 겪고 있는 남의 입장에 서보라는 것 등)이라 하는 것은 삶을 퇴패로 모는 악한 방법을 취한 것으로 도리혀 사악한 악者가 주술을 써듯 사람의 정신을 이용하는 것이고 이반면 악의 개념을 어디에 있는가? 악발로 살라하는 것은 강한 삶의 의지를 갖고 열심히 살아보라는 뜻이니 진일보적으로 삶을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 오히려 善한 편에 든다 할 것이다. 강약을 갖고 선악을 판단짓는다 한다면 강한 건 선이고 약한 건 악이란 개념이 대두된다 할 것이고 또 그 반대로도 관념을 둘 수도 있다 할 것이다。강한게 善이다 한다면 강한건 부러지기 쉽고 강한건 폭력을 쓰게 되니 그 힘과 주먹은 남을 못살게 굴기가 십중팔구이지 어느 불보살이라고 그 강한 힘을 갖고 남을 위하여 쓰겠는가? 설령 쓴다 하더라도 위선의 계제요 제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뿐인 것이다. 이러하니 어찌 선한건가 악한거지…。약한게 善이라 한다면 약한 건 휘길 잘하니 지키지 못할 약속을 굳게 맹세한 것 같아 수포로 돌아가게 하고 기회나 보고 아부나 하고 파렴치 몰염치 얌체같은 행동에 비유되고 病苦에 시달리고 하니 어찌 善할 건가? 中庸을 써서 선악의 가운데를 타면 左右를 버리지 않는 것이 된다 하지만 이는 간사의 극치로 보일 수도 있는 문제있는 것이다。이도 저도 아니다 하면 어려운 입장에 처한 자가 그 窮地를 모면해 보려고 벗어날 구멍을 찾는 것이거나 권태염증이 난 것이니 염증은 시원한 해결책을 얻지 못한데서만이 아니라 실력이 모자라 열등의식감에서 염증을 느끼는 것이다 열등의식은 은연중 피해의식으로 변하게 되고 피해의식은 斜示的인 관념을 낳게 되고 사시적인 관념은 남을 비판 질투 시기 헐뜯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염증은 시샘하고 투기하는 그런 것에 발전이라 하는 것의 명분을 주는 싸움만 있지 뭐 ㅡ선함이 있을까?인 것이다.※ 이 모든 잡다한 번뇌를 토해냄은 놔주지 않고자 하는 사마귀 농단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애처로운 모습과 같음인 것이다。이렇다할 여한가진 귀신類들이 회류에 있어 갖은 원풀이로 휘몰아치는 象이 흡사 태풍의 사나움처럼 갖은 어려운 함정을 다 파서 쳐넣고 짓이기고 비틀어 쥐어짜는것처럼 한다 할 것이다。그렇더라도 이제의 탈상(후생)들은 당당히 살아 있나니라。 또한 그렇다고 자랑할 것 없도다。두고 두고 놀이할 놀이 씨(種)라고 귀신의 비웃는 조소가 누리에 메아리쳐 귀가 쟁쟁 울린다 하리라! 곡예사처럼 이 줄을 탔다 저 줄을 탔다 비틀비틀 비비고 비벼 새끼줄을 꼬고 나니 그 이튿날 집이 엉 덮고 맬줄이된 것처럼 나에 筆力이 장단을 맞춰 춤춤이 또한 이렇게 될것인가? 너가 그 아무것이 신기한 재주를 가진 醒者라면 지옥 끝이라 하는 곳까지 끌고가 놔주지 않으리라 왜냐? 그 재주를 도깨비 방망이나 기이한 부적처럼 써먹을 테니까? 삿된 진리인 내가 무엇이 겁날게 있으리°조화 방망이가 있는데…。지옥 끝이란? 사단진리표현 무량이라°일정한 기준이 없어 관념상의 가치관점에 있을 뿐이다。이를테면 남은 불에 타기를 즐기는데 자기는 그것을 불 지옥이라 한다면 관점의差異에서 오는 것이다。혹이 界가 다른걸 次元이 다른걸 한 타령으로 논할순 없다 한다면 그러면 생애에 다양한 유희에 각양각색의 쾌락을 즐기는자 있어 즐겁다 하는데 어떤 이는 그런걸 보고 어지러운 광란에 도가니 지옥이라 한다면 들은 이는 즐겁다 하고 보는 이는 지옥이라 하니 지옥은 보는 이에게만 있고 직접행하는 자에겐 없는가? 이반면 들은 이는 아프다고 고통하고 보는 이는 흥미진진 즐겁다고도 하기도 하는데 이를 본다면은 저마다의 처한 입장에 따라 달리 하는 관점에 있을 뿐 일정한 기준이 없다 할 것인 것이다.여럿이 말들을 하길 그런 것이 옳다 하고 한 사람만이 시세에 편승치 않고 그런 것은 그르다 한다면 大衆의 뜻을 따른다 하나 그것이 반드시 옳다고만 할수 없는 것이다。그릇될 적도 있으니 여럿은 날씨가 맑아 조금 있다가도 비가 안 온다 하나 한 사람만은 후덥지근 하니 비가 온다하여 실제로 비가 왔다 하면 누구의 말이 맞았는가? 맞지 않았는가를 판별할 것 없이 그 말이 맞았다는 것은 그 事理를 정확하게 읽었다는 뜻이다。그러므로 多數가 아무리 지옥이라 해도 그것은 지옥이 아닐수가 있는 것이다。저마다 관념상 관점에 있을 뿐이다. 또한 그 事理와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 누가 알 것인가? 어긋남과 바름이라 하는게 徒是 갸웃거리는 관념의 尺覺에 있을 뿐이다。是非가 緣따라 시세따라 自然흐름이나 인위적으로도 定해서 있는 것이지 원래가 없는 것이다。원래가 한갓 돌고도는 흐름가락 테일 뿐이니 只今이 원래요 조금 있다가도 원래이니 時的인 原來 는 항상 空속에 存在하여 現在現位致인 것이다. ◎ 사탄의 얼 觀 想念하니 고(罟)가 되고 가만히 있으니 바보만도 못한 것이 되고 글을 써 표현할려니 실력이 모자른다。그렇더라도 가끔씩 떠오르는 기발한 착상에 의지하여 간신히 글이란 명맥을 이어갈 뿐이다。이 또한 뜬구름처럼 空에 흐르는 覺이 精神에 걸려 저 있음을 내보일려 하는 것이니 계속 그것이라고 주장케 되니 내라는 삿된 진리인 것이다。나(아집)를 우리라는 것을 버리니 저들의 正然하게 보이는 理論 전개로 인한 간괴한 꾀책에 넘어가는 것 같고 그렇다고 나를 찾아 세우니, 이 자기만이라는 삿됨이 절로 서게 된다. 그 러나 어떤 뜻을 설명하거나 주장을 내세울려면은 어쩔수 없이 나라는 줏대를 세워야 한다。그래서「나」「우리」라 말함인 것이다. 나는 외친다。나희에 그 무엇(얼같은 것)을 일깨우자! 고…。그 무엇이 잠든지 이미 까맣게 잊은 테(굴레)다。 마치 저 들보가 기둥 주춧돌이 떠받들고 있음을 까맣게 잊은 것처럼 말이다。어떠한 것을 지칭하는 것마다 하나의 굴레테라 한다면 무량한 굴레테이다。그중 잠든 테들도 무량이라 할 것이니 그 잠든 테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나(희)와 같이함인 것이다。그 무엇이란 조선의 갓쓴 얼테만이 아니요、신라의 화랑의 얼만이 아니요、고구려의 용맹스런 장수의 얼만이 아니요、백제의 계백이나 낙화암의 얼만이 아니다。이 모든 것이 얼이라면 얼이요、그 어떠한 정신이라면 정신이요. 영혼이 깃든 것이라면 영혼이라 할 것이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란 이런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이 있다면 그 무엇이란 것은 이와 차원을 좀 달리한다는 것이다。 그 무엇이란 것을 간단히 줄인 말씀으로 앞서 말한 ‘얼’이라 해보자。그 얼의 잠든 테(役事치안은 回流)가 이미 오래이고 관여치 않은지가 이미 오래란 뜻이니、내가 이 삿된 것을 찾아 내세우고자 함이니요 잠든 것을 일깨워 그 능력을 보고자 함인 것이다. 내가 말하는 얼은 단군이 아니요 환웅임금 또한 아니다。멀리 느끼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요 나희에게 있음인 것이다。현실을 보건데 나희는 모두가 잠들었고 제압 당해 자기 구실을 못하는 것 같고 外勢따라 由入된 如他의 정신과 영혼이 깃들어 있어 생각하는 것조차 모두가 다 남이 하고 있는 것이다.나의 육신들은 최면에 걸린 꼭두각시들이고 좋은 쪽으로 말하면、신앙자들이 말하는 제공해주는 天使나 제공해주는 보살이나 佛脫들이라 할 것이다.(후담 연가시 숙주 좀비 드라큐라 괴뢰) 보살과 佛이 이 감언이요 神이라 지칭하는 것 또한 甘言이다。저들이 그럴싸한 논리정연한 꾀책에 넘어간 어리석은 順 民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저들이 누구인가? 나희의 육신과 정신을 제걸로 하여 수족처럼 부리는 능력있다 하는 모든 무리들이 아닌가? 저들의 사악함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고 나희의 무리 가련함 또한 이루 다 말할 수 없음이라 한마디로 말해 서글플 뿐이다. 대체 능력이라 하는게 뭐길래 나희를 이렇게 까지 몰아재키는가? (그게 아니라 문명이란 음식에 맛을 달게 느끼고 그에 깊이 젖어 하염없이 먹고 있는 것이다) 그 추접한 모든 것일지니 자기들을 돋보이려하는 일체의 잡다한 행위인 것이다。外來思想이 精神을 支配케 된 元祖格인 外來理想主義라 하는 信仰처럼 崇上하는 일체 것을 마음에서 몰아내야만(流入된 배불척신 해야지만) 우리의 얼이 일깨워진다 하리라 그렇다고 우리의 얼 일깨움이 미개한 것처럼 보이는 원시사회로 돌아 가자는 것이 아니요、짐승 되자는 것 또한 아니다。다만 머리에 세뇌되어 있는 일체의 저들의 우월한 깨침이라 하여 우리를 조종하는 종처럼 부리는 사상을 몰아눌러 짓깔아 뭉게고 해방의 기쁨 未知의 알 수 없는 理想世界로의 桃戰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곧 우리 얼을 일깨움인 것이다. 일정한 律을 지키는 무위유동에 의한 무위자연운동은 自然에 法則을 낳으니 일체의 異性 作爲에 의한 空을 害하는 사악함은 소멸되고 모든 삼라체들이 자기들의 영역안에서 복됨을 누린다 할 것이다。諸種이 間隔을 維持하여 자리의 생김 환경에 따라 種數의 조정이 절로 이루어지고 습하면 번성하고 건하면 숙지는 것이 또 그 반대라도 自然法則을 順從하는 것이므로 마땅하다 할 것이요 하등의 空에 대한 害를 일으키는 것이 없다 할 것이다。自然이 現世에 害를 준다 하여 개벽하여 억겁으로 묻어버린 것을 異性作爲에 의해 有毒한 反應을 일으키는 물질을 슬기체 정신에 잠재의식처럼 숨어 있는 사탄에 꾀임(그렇게 해 그렇게 해 하는 유혹의 상념力)에 빠져 유용하다 하여 꺼내 씀으로부터 공해가 만연케 되는 것이다。그、공해를 제거한다는 作爲가 또다른 원성같은 공해를 일으켜서 일체삼라의 복된 터가 무너지게 됨인 것이다. 지금에 모든 利器라 하는 것은 本質性을 사멸로 끌고가는 것이니 변질된 기계사회 인위적 화학물질사회 그것마저도 부식되고 이상한 반응을 일으키는 사회로 끌고가겠다는 것이다.인간의 사악한 야망이 발전을 편리함을 추구한다는 목적하에 갖은 못된 사악한 짓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그런 속에서 괴상한 괴물생김으로 정신 形態만 아니라 몸의 形態도 변질돼 간다 할 것이다. 사악한 神이 醒者의 가면을 뒤집어 썼으니 말이 醒者이지 모두가 다 귀신의 무리인 것이다.지금 볼적에 귀신 놀아나는 것이 만류의 人類의 움직이는 모습이다. 모든지 다 제가 한다 하고 제가 했다 하고 제가 먼저라 하고 제가 윗된 주장이라고 아귀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곤 순종하라 하고 숭상하라 하는 등 동패로 끌어들이고자 각양각색의 주장을 갖고 안간힘을 씀인 것이다。그리곤 그 공간과 시간을 내게 크게 할애하라 하곤 他理를 헐뜯어 헤집고 또는 물들이고 달달 볶는 모습이「나를 모르느냐? 나를 모르느냐?」하는 식의 주장의 사상인데 이런 모습을 짓는 모습이、특이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드물고 보통사회에 평범하게 인식되어 있는 그런 가운데 좋은 면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 할 것이다。일체의 외세이론의 삿된 탈이 좋게 변질 되어 우리것인양 인식이 드게 하나 모다 그 귀신탈인 것이다。이것이 필자가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나희에게 사상의 색안경을 뒤집어 씌워 어둡게 하여 필자가 색안경을 쓴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는 것이니 그 어두운 공해를 일으키는 안경을 벗어버릴 것이다 우리 모두 나희 얼을 찾자! 그리고 저들을 편히 쉬게 하자! 徒是 제가 윗되지 못해 한없는 몸부림을 치는 것이고 또한 제가 시건방지게 윗되다고 끌고 간다고 능력행사 한다고 한없는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지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은 아니다 (고통은 무슨 고통…。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자기 목적 성취를 위하여 자기가 놓은 덫에 자기가 걸려서 몸부림 치고 있음을 누구에게 벗겨달라고 하소연 한단 말인가? 덩치큰 귀신이 돼 가지고…) 감당치도 못할 위치를 차지하고 좋은 세상을 이룩하겠다는 것이 나희의 육신들을 최면에 걸린 듯한 정신들을 착각에 들은 영혼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지옥끝은 한없는 나락 궁글름이다。저라 한 것은 하나를 지칭함이 아니요 그 수무량 저들이다. ◎ 石壁도 고(罟)요 흐르는 물 고인물 등이 모다 고(罟)다。그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 고(罟)며 그가 가르키는 특징이나 성분 성질이 고(罟)다。버티는 것이 고(罟)요 짓이기는 것이 고(罟)요 어루만지는 것이 고(罟)다。진리로써 空化하여 참여하고 관여하는 일체 모든 것이 고(罟)다 ◎ 願이 많으면 풀고자 윤회하는 흐름속에 들고 원이 없어 걸림이 없으면 모양도 부피도 없는 亭點에 든다。흐름은 空化하여 나타나므로 그 원을 풀수 있다。神은 흐름속에 들었으니 원이 많은 것이고 그저 아무렇게나 아무것이는 원이 없나니라. 원을 푼다는 것은 또다른 저 갈대로 풀려가는 願의 初點이 된다는 뜻이겠다.모두가 영혼과 神 되길 바라지 않으면 喜悲 등 갖은 願 고(罟)에 들지 않아 그 무수개념 아무것이가 될 것이다 그 願의 뜻을 들어줬으니 相과 念이 탈파이니라 시공이 탈파이니 또한 고(罟)이며 탈파를 連달아 물었을 뿐이다. ◎ 완전한 것은 고(罟)다。허물어짐 터짐에 가까울수록 그 아무러크소니에 가깝다。불완전한 것은 다。완전함에 가까울수록 아무러크소니에 가깝다。뭐든지 결정될 곳으로 가는 막단계(役事成就) 정점에 가까울 수록 아무러크소니에 가깝다。이미 결정된 것이 아무리크소니가 아니다。왜냐하면 그 결정된 정점을 터트려 아무러크소니에게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그 反하는 主長 정점에서 벗어나 멀어지는 것이 아무러크소니에 접근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불완전해지는 것이 아무러크소니에게로 가는 지름길이다。 굳이 그렇다。않으나 또한 굳이 그렇다 하나니。뭣을 設定한 것은 아무러크소니가 아니다。삿진리에 가까울 뿐이다。停空도 아무러크소니에게 접근한다。行짓거리도 아무러크소니에게 가깝다。그러나 진리일뿐 아무러크소니는 아니다。그러므로써 아무러크소니 나니라. ◎ 길이 하나가 아니라 무량이라 하는 것도 그것만이 아니나니라 하는 것도 이 他의 들은 인식과 전통역사를 思考의 혼동 모순에 의한 갈등을 일으켜 말살 파괴시키는 것이다。흐름 神的인 理想과 관념이 파괴되면 그에 의했던 空化도(物事의 파괴 心身 정신 파괴) 파괴되나니 소위 난장판과 같은 난세가 된다 할 것이다。이것이 화려한 저자거리의 상가의 정돈된 물건이 아니라 떠리하는 막장과 같은 어지러움이니 흡사 멀쩡하고 싱싱한 수박을 소시랑으로 한 대 쳐서 으깨어 흙과 섞어 그에다 무씨를 파종하는 것 같다 할 것이다。배달 민족이 이렇게 당했다。배달의 민족 뿐만 아니라 전인류와 누리와 누리의 만류가 이렇게 사악한 힘의 전횡에 당했다. 時神의 回流들은 長江의 앞 물결을 뒷 물결이 치듯 하였다.神이 무슨 능력 있는가? 고통스런 흐름의몸 해가지고 하도나 물결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애걸복걸 狀을 띄니 그 形을 내리고 象을 짓는 분이 물건을 던져주듯 形象을 짓는 것이 절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形象을 짓는 것은 다가올 未來의 일과 같음이니 저 生現을 위하여 그 과정을 도운단 말인가? 아니면 미친 神의 兩分化된 役事의 유희작난 現相인가? 그 흐르는 한결같은 문맥이 이완되는 面이 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조건을 걸고 조건에 걸린 神들이 저의 명분을 내걸미 願이라 제가 저의 능력으로 이뤘다 한다。빌고 빌은 덕택에 이뤘으니 그 뜻도 일리는 있다(※ 빌고 빈다는 것은 제 자신이 제 자신에게 공들여 탑을 쌓는 것과 같은 것임인지도 모르겠다) 전인류가 火器의 큰 격동기(二次大戰)로부터 벗어난지가 어언 수십해테 우리 배달민족이 구한말로부터 태극을 갖고 國旗를 삼으니 (혹은 그 以前 오래 됐다한다) 덜 떨어진 귀신이 그 깊은 뜻은 궁구치 않고(이것은 간단히 줄인 뜻으로써 우주의 섭리 영원함을 뜻 하는 것임) 양분화를 바라는 줄 알고 또는 제 능력을 상상하였다 하여서 질투하는 뜻에서 兩分化의 理念을 갖고 겨레에 파고들어 우리 겨레를 희생양으로 대리전쟁을 일으켜서 국토를 동강나게 하고 머리 정신 육신은 他의 영혼과 神 등에게 支配를받게 하고 있으니 정신 쓰고 행동하는 것이 문명의 미명아래) 모두 그들이로다。몽매하여 옥을 주워도 돌인줄 알고 버리면 그만이고 賞을 주어도 罰로 쓰면 해볼 도리 없는 것이다。즉、저들의 주장만 따르고 우리얼 주장은 내팽개친다는 것이다.그는 왜 인가? 임시 보는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저들만 못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정신이 이미 그렇게 쇠뇌되어 세태를 따르는 저ㅡ요、내가 아니니 생각조차 내가 아니라。입으로 찾는 것마다 서양 귀신 우월이요 느끼는 감각마다 서양문명 문물 향락이라 나희를 잃은지 이미 여러테와 테라。심신이 모두가 저들일 뿐인 것이다。모두다 저들에게 빌려주듯 다 빼앗기고 거리방 空에 내쫓기다 못해 도리혀 허리굽혀 구걸형을 짓는 것 같은 뜻을 취하니 나의 신령 떳떳하게 찾음은 이미 오래고 미신으로 푸대접 받은지 이미 오래라 어떻게든 그 자리를 도로 찾을려고 하는 모습이 와신상담이라 갖은 굴레를 다써보기도 하는데 그 껍질 空相에 보채는 모습이 서귀 모시는 집으로 둔갑하여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行세해보기도 하는 것이다。귀신 모시는 사당은 XX와 XX의) 명분으로 둔갑하여 없는 곳이 없어 그 능력을 웅장하고 화려함으로 현혹하고 자랑하더라。어중이 떠중이 머리에 세뇌된건 저 서귀의 象이라 모여 웅성거리면서 하는 말끝마다 무슨(XX)님이 어떻게 어떻게 하시었고 XX님이 어떻게 어떠하다 하시다 한다。이제 우리는 없다。저들 뿐이다. 풀어벗어남이 아니라 구채를 신채로 대체했거나 宋나라 소설의 狂人國 사람되었다。혹이 말하길 그대의말이 너무 비약적이고 모순 투성이다。말을 할수 없는 논리인데도 말을 하여 자기를 걸고 넘어지니 스스로 욕되도다.그대는 앞의 논리대로라면 나의 신령이 있다면 그의 노복이로다。이만 아니라 편벽되어 분열을 조장하고 붕당을 나누어 서로가 으르렁 거리며 싸우겠다는 논리이니 소견이 井底觀天이로다。또한 소외된 곳에 놔둔 미끄러운 쓰레기 통속에 쥐가 빠져 기어 나오고자 바둥거리는 거와 같아 누가 걸림 막대라도 놓아줄 것인가? 세상 생겨부터 이미 이러(앞 내용)하거늘 누가 자루를 뒤집듯이 하고 세상같이 큰반석을 뒤집어 놓을 것인가? 다 부질없는 생각에서 나왔음이라°내 이 말에 금새 생각이 궁하여 반론의 여지가 없거던 그렇게 궁상맞게 초췌하게 있지 말고 아무러크소니의 넙적다리라도 물고「아무러크소니」하고 악을 써라。그래도 아무 소식 없거덜랑 툭툭 털고 일어나 종사하는 일이나 나가거라 한다(@얼마의 시간적인 흐름이 있은 다음 다시 이어서 씀) 마음을 너그럽게 생각을 넓게 하여라°어찌 그리 세심하고 치졸한가? 우리가 저들의 문명을 종 삼고役事靈들을 종 삼아 부린지가 이미 오래다(내게 유용한 것은 저에게 물들음이 아니라 도리혀 종삼은 것이란 논리에서 제반 저들의 문명이기란 것을、그 혜택이란 것을、또 그 만들었거나 발전 발명자를 종삼음이라 하는 것이다) 저들의 장난이 좀 짓궂더라도 관대하게 봐주어라°다 우리를 위하여 힘쓰는 품행이 거칠은 표현으로 뵈임이라。너무「하자」잡질말 것이다(※ 정리때 훑어본 생각 中에서=…°종(僕)의 待接은 종된 代價性을 바라는 것이니 一言해서 精神的 支配 理想的 支配를 條件으로 내거나 이에 말려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 얼 것을 댓가성으로 지불해야 德을 베푼 것이 될 것이다) 놀다가 싫증나면 그만 두는 애들처럼 종 하기 싫음 얻을걸 얻어가지고 제 갈대로 갈 것이다(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일면 저들의 요구가 끈질긴 面도 있으니 겉포장은 저들의 원대로 하고 실속 내용은 우리 얼 것을 강하게 注入시킨 것을 대가성으로 지불한다면 설렁 그 속사정을 안다 하더라도 저들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니 모르는체 하고 그냥 넘어갈 것이다。왜냐하면 제 옷을 입었으니 더 이상 할말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우리의 얼、덕폄이 또 우리의 현실적 입장이 이런지도 또한 모른다) 처음부터 우리가 종 삼고자 않았나니 저들 스스로가 일체의 문명혜택이란걸 갖고 칭종형을 지어 종 노릇 하나니라.저들이 우월하다는 사로잡는 걸 갖고 가르켜 드린다는 미명아래 종형 노복형을 짓고 왔음이라 무엇이 탈이냐? 이제 저들 뜻대로 입으로 짓는 말끝마다 종 되길 원하는걸 물들였고 修道者 처럼 되길 원하는 걸 물들어 선비의 정신을 얻어가는데 무슨「병폐」있으랴? 이제의 우리가 저들 理想 믿는 者 外에도 들은 풍월에 물이 들어 말끝마다 칭종이요「저요!」하고 내려 깔고 허리굽혀 노복꼴 짓고 마음에서 하는 생각조 차 심복이라 이렇게 물들여 얻었다. 이러할진데 무슨 더 이상 바랄게 있을 것인가? 잔뜩(실컷) 먹었으면 입 닦고 가만히 앉아 쉬던가? 다른 소일거릴 찾을 내기지…。이것은 저들의 대가성 원함을 얻은 것이니 겸손하다는 것을 배워가지고 감이 아니고 뭔가? 가만히 경청하듯 있는 것이 이 중간은 가고 원을 들어주는 몸짓을 하는 것은 上等이 되고 헐뜯어 탈잡지 않는 것은 그 아무것이니라。이제 이렇게 식견을 넓혀 아무러크소니를 알고「아무러크소니」하면서 갈 것이니라. 설령 가거나 말거나 아무 러크소니 되나니라 따지고 보면 저들도 한낱 놀아나는 사단의 탈측에 속해 고(罟)를 벗지 못해 몸부림 치는 恨을 갖고 있는자들이니 一面 가련코 일면 탈의 몸을 지어줬으니 (理想 體係外樣을 말함) 거룩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할 것이다) 저희가 물들인다는 것이 이 도리혀 우리가 우리 덕으로 포용한 것이 되나니.가만히 들어줘 진리 하소연의 원을 풀어줄지어다。풀어주면 아무것도 없는 아무러크소니로 化하여 우리테의 품에서 고요히 쉬리로 다。어떤 時流이던간 時流가 空化하면 같은 立長、空의 結實은 같나니라。稱奴僕形을 짓는 말씀이 칭노복형이지 실제의 正觀 의 눈으로 본다면 自然스럽게 사는 것을。 간괴한 슬기체 사단의 理想을 갖고 우리를 미개와 야만的인 民族으로 몰아부쳐 이상적인 침략행위를 자행한 것이다.소위 인류를 상대體로 하여 이런식으로 몰아부쳐 理想侵略 征 服 제 주장으로 물들여 제한몸 肥大一色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들은 시방 여래의 십(十)形을 이상의 주된 표시 形으로 삼는데 이것이 필자가 여러 가지 의미를 갖은 것을 아전인수격으로 한 골수로만 몰아부치는 과오를 犯하는지는 모르지만 惡字形을 잘 관찰해보라。이것은 徒是 十形의 心(십자의 마음)이란 뜻으로 가운데서부터 사방팔방 무방으로 그 주장이나 어떠한 實相體를 퍼지게 하고 물들이겠다는 뜻에서 그 物事의 習性에서 따온 形인 것이다. 一言해서 내라 하는 삿된 진리로 대상체를 오염시키겠다는 뜻이다.이것을 좋은 명분으로 둔갑시킨다면 주장하는 이상의 가르침 미개한걸 깨우쳐줌이라 하는 것이다。空의 관점에선 악을 들어 선을 가르침으로 되는 것이니 즉 내 손에 들고 있는 十형은 내 마음에 十형을 품고 있음이니 이외에는 모두가 善한 것이니 악은 이 十形에 모여들어 저쪽으로 사라지듯 하고 이 세상은 一色으로 善하여지라는 뜻인지도 알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原因은 얻을게 있어 그러하니 우리 江山이 모두 願脫을 풀어벗겠다는 것을 들어주시는 그 아무것이 醒者形을 띈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以上의 몇 말씀이 또한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들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얼르고 뺨치듯 하여 저들의 편을 들어줬음이라 他의 理想을 높이 사는건 좋으나 우리를 그만 못한 미개한 民族으로 내려 깎은게 되니 괘씸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이는 우리란 가면을 쓴 저들 능력께나 쓰는 귀신이 은연중에 내 마음줄을 타고 내 心筆을 조종하여 바로 앞 또 그 앞 내용 글을 사단처럼 능멸히 여기고 회유책의 사벽된 논리를 전개하였음이라°가만히 바보처럼 있으면 병들어 있는 조개에서 진주구슬이라도 뜯듯 기고만장하게 나대어 人肉과 人骨까지도 뜯어내 이리 굴리고 저리굴려 희롱하겠다는 뜻이다。우리를 뭘로 알고 이렇게 야시보는가? 분연히 떨쳐 일어서 저들을 내쫓자! 저들의 좋은건 무조건 빼앗아 우리가 다하고 오물을 머리에 뒤집어 씌워 내쫓자! 마구 두들겨 패주자! 마구 짓이겨도 우리가 당한 것에 대한 보복적 차원의 직성이 풀리지 않으리! 아주 갈기갈기 찢어 잘근잘근 씹어 꿀꺽 삼켜 먹어치우자 힘을 크게 배양 분풀이화풀이 다하여 억눌렸던 가슴을 확 펴자! 이렇게 하면 그들이 우리 형제의 정신과 육신에 들어 그 탈을 종 삼았음이라°우리 형제와 형제가 서로 저주케 하고 동포와 동포가 리상괴리로 말미암아 헐뜯고 헐뜯는 겉모습으로 나타나 보이리니°이는 저들의 저주 사단놀음에 놀아난 꼴이라 이렇게 하여도 저렇게 하여도 놀아난 꼭두각시 관점되나니。그저 그 아무것이 醒者여! 할뿐이노라。 그 이리와 승냥이 같은 품행은 대원군이 쇄국정책 쓴다고 통상명분삼아 파고들길 없다고 호리꾼 몰고와 남연군의 묘소를 파헤치다 못해 똥물세례를 준 저들의 못된 행악질을 상기해서 조상을 욕되게 한 저들을 한 무리도 남김없이 형제의 머리를 돌수박 허개듯 허개치우서라도 표현이 과격하니 필자의 심을 알았다면、필자에게 피해가 돌아올줄 모르는 이 말은 편집할 때 삭제해야 마땅하다 할 것이다。) 축출해야 할 것이다。무슨 하늘 패거리 전도인가? 필자를 악마의 편에 선자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저들이 도리혀 악의 종자를 퍼트리겠다는 것이지 믿으라! 한손엔 武器를 또 한손엔 똥물같은 역사책을 갖고 말이다. 史觀을 正觀할 것 같으면 그 理想은 우리 민족에게서 자연발생적인 것이라 하나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다(이것은 저들을 추종하는 자들의 미화하는 망발의 발언이다) 남에 약점이나 이용하여 파고들길 잘하는 비루한 이상인 것이다。일설에는 소연세자가 심양에 불모 로 가 있을제 어떻게 손에 넣게 되어 갖고들어왔다 한다。그것이 퍼진 것이라기도 하고、이미 그 以前이라기도 하나 자세히는 알수 없는 노릇이다。만약상 소연세자가 갖고 들어왔다면 나라의 근본사상을 뒤흔드는 것이니 지나놓고 하는 말 같지만 조상신이 깃거워서 임금자리 앉히려 하겠는가? 또한 舊韓이 亡한 것도 倭者와 野西(耶蘇)鬼의 合作品이라 할 것이다.또한 시야를 넓혀서 이보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대한다면 이미 淸 침입 그 以前부터 그 理相이란게 침입해 들어올려고 亂世事들 지었다 가? 즉、그 모든 것이 이상침략의 胎動이었단 말인가?( 후담 :신라 때서부터 이미 유태 귀신이 파고 들었다 하기도 한다 원래 때린자 보다 맞은자가 허물 많다는 것 이리 늑대 승냥이 먹이감 보고 달겨드는 침략자를 나무라기 앞서 수비태세 내것을 지켜내지 못한 나 우리 자신을 힐책하고 허물해야한다 할것인데 일본군 난징 대학살 중국인의 허물이 더큰거나 마찬가지인 거다) 사람이 물에 빠짐 지프라도 잡고 싶은 심정 질곡속에 헤메일제 나는 길이요 생명이다 한다면 얼마나 눈이 번쩍 뜨일 것인가? 그 不毛생활에서 여러 文物을 접할 기회는 얻어 식견은 넓혔다 하더라도 수모를 겪음은 말로 다 표현치 못하리라 할 것이다.그 시대에 上人이라 하는 사람들도 이러할진데 民草들의 고달픔이야 이루 헤아릴수 있겠는가? 民草가 空속의 苦回流脫을 담당하여 뒤집어 쓴 幻相이라 세멸토록 民草들의 씀은 다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을 역사의 後尾로 돌려서 醒者의 입장에 서서 말해 보기로 하는데 대원군에게 가르켜 말하길 내가 세태핍박에 願많은 그대의 願을 들어주기로 하는데 그대의 절간 태운 원성이 나라가 망하는 꼴로 나타나리라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돌고 도는 속의 윤희 흐름의 일과가 그렇다는 것을 醒者는 가르키고 있음일 것이다. 필자가 은연중 釋氏무리의 主長을 代辯하고 있는 것 같은 감이 든다。동양에 西學이 위세를 떨치게 된 것은 마테오리치 즉 이 마두로부터라 한다.※ 파묘원인발단、잠심목적、외침 리념、신앙사상、국법질서 및 전통이념 양식문란、국가 기강확립차원 그 수괴 주문모처벌, 황사영 신유백서 사건터짐 보복적 차원 파묘 행각벌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