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석 변호사
지상에 건물있는 토지만을 경매로 낙찰받을 때, 해당 건물에 대한 철거 및 지료판결을 받은 후, 실제로는 철거집행 대신 지료판결을 채무명의로 하여 지상건물을 경매 신청하여 건물을 헐값에 낙찰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건물상태가 나쁘지 않아 철거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값어치가 있을 때, 권리관계상 토지주에 대해 철거될 건물이라는 점 때문에 다른 사람은 건물낙찰을 주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토지낙찰 할 때부터 토지낙찰 그 자체보다는 향후 지상 건물의 헐값 취득을 목적으로 전체적인 수익성을 계산하는 등 나름 경매투자 성공모델로까지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간과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건물세입자의 대항력이다. 지상건물에 세입자가 없으면 문제없지만, 지상건물에 건물소유자 아닌 별도의 세입자가 있고 특히 이 세입자가 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이 있을 경우에는 건물낙찰로 인해 세입자 보증금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 건물을 저렴하게 낙찰받고자 하는 큰 그림에 장애가 발생하는 셈이다.
물론, 철거될 건물의 세입자가 비록 대항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건물퇴거의무에는 차이가 없고 퇴거판결 받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그 때문에, 토지등기가 별도로 있을 경우에는 안전한 건물임대차계약을 위해 건물에 대한 권리관계 뿐 아니라, 건물의 부지인 토지의 권리관계를 함께 살펴 건물의 철거가능성까지 검토해야한다).
★ 대법원 2010. 8. 19. 선고 2010다43801 판결 [건물퇴거]
건물이 그 존립을 위한 토지사용권을 갖추지 못하여 토지의 소유자가 건물의 소유자에 대하여 당해 건물의 철거 및 그 대지의 인도를 청구할 수 있는 경우에라도 건물소유자가 아닌 사람이 건물을 점유하고 있다면 토지소유자는 그 건물 점유를 제거하지 아니하는 한 위의 건물 철거 등을 실행할 수 없다. 따라서 그때 토지소유권은 위와 같은 점유에 의하여 그 원만한 실현을 방해당하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토지소유자는 자신의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로서 건물점유자에 대하여 건물로부터의 퇴출을 청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건물점유자가 건물소유자로부터의 임차인으로서 그 건물임차권이 이른바 대항력을 가진다고 해서 달라지지 아니한다. 건물임차권의 대항력은 기본적으로 건물에 관한 것이고 토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로써 토지소유권을 제약할 수 없고, 토지에 있는 건물에 대하여 대항력 있는 임차권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이를 토지소유자에 대하여 대항할 수 있는 토지사용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바꾸어 말하면, 건물에 관한 임차권이 대항력을 갖춘 후에 그 대지의 소유권을 취득한 사람은 민법 제622조 제1항이나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 등에서 그 임차권의 대항을 받는 것으로 정하여진 ‘제3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이런 판결만을 믿고서, 건물철거 및 퇴거, 그리고 지료판결을 받은 후 건물철거집행은 보류하면서 세입자에 대한 퇴거집행만 신청하여 세입자를 내보낸 다음, 헐값에 건물을 낙찰받게 된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오산일 수 있다. 건물세입자의 대항력이 비록 퇴거판결에는 지장이 없더라도, 건물 낙찰에는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로, “임차권등기명령” 때문이다. 퇴거집행 이전에 세입자가 건물에 대한 임차권등기명령을 한다면, (퇴거집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해당 건물을 낙찰받은 사람으로서는 해당 세입자의 임대차보증금을 승계(부담)해야 할 의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건물을 철거할 목적이라면 세입자 대항력이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겠지만, 건물철거가 아니라 지료판결에 기해 건물을 경매 넣어 취득할 목적인 경우에는 큰 장애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세입자들을 대리하여 필자가 수행하고 있는 건물철거 및 퇴거사건의 경우에도, 1심에서 건물주에 대해서는 건물철거 및 지료판결이, 의뢰인인 세입자들에 대해서는 퇴거판결이 선고되었는데, 1심 판결에 기한 상대방의 퇴거가집행에 즈음하여 미리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아 등기부에도 등재하는 대비를 마쳤다(아래 201호 등기부는 소송대상 다세대 여러 호실 중 하나이다).
1심 재판을 수임하면서부터 이런 시나리오를 준비했고 1심 패소판결 직후 바로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았다. 반면, 상대방은 이런 문제를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상대방에 대한 주의환기 및 합의 유도하는 차원에서 2심 재판 항소이유서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분명히 했다.
게다가, 원고의 실제 의도는 건물철거에 있지 않습니다. 피고 회사에 대해 받은 금전판결을 채무명의로 하여 해당 건물에 대해 강제경매신청한 후 원고가 낙찰받을 의도입니다. 철거판결된 건물이기 때문에 원고 외 다른 사람은 낙찰받기를 꺼려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원고에게 헐값 낙찰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지상에 건물 있는 토지만 낙찰받아 투자하는 사람들의 흔한 투자수법입니다).
** 이에 대비하여 1심 판결 직후 세입자 피고들은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아 등기부에 등재하였습니다(참고자료 등기부 참조). 이를 통해 원고를 비롯한 건물의 어느 낙찰자도 대항력 있는 세입자 보증금을 변제할 수밖에 없는 바, 결국 철거판결을 기화로 건물을 헐값 낙찰받고자 하는 원고의 의도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원고는 가능하지도 않은 꼼수를 계속 할 것이 아니라 세입자 피고들과 적절한 합의로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결국, 세입자를 무리하게 퇴거시키고 건물을 헐값에 낙찰받겠다는 상대방 계획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한다면, 불필요한 재판이나 집행시도 없이 원만한 합의가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지상에 건물있는 토지만을 낙찰받는 것이 경우에 따라 좋은 투자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철거집행이 여의치 않은 건물이고, 건물주가 무자력 상태라 지료회수가 해당 건물경매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건물경매 마저 세입자 대항력 때문에 여의치 않다면, ‘건물철거를 무기로 건물을 헐값에 낙찰받겠다’는 것은 결국 어설픈 계획에 불과해서 자칫 실패한 투자가 될 수 있다. 향후 지상 건물 낙찰을 예정하고 토지만을 낙찰받는 사람으로서는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소송대리하고 있는 위 사건의 경우에도 세입자 보증금 합계액이 약10억원에 달하는 큰 금액이라,‘자칫 건물세입자 보증금을 승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토지를 낙찰받았다면 패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참고로, 토지낙찰대금은 약11억원이다).
반대로, 이런 상황에서 있는 건물 세입자 입장에서는, 자칫 임차권등기 이전에 퇴거집행 등으로 점유상실하게 되면 대항력을 상실할 수 있음을 주의해야한다. 점유는 대항력의 “존속”요건이기도 한데, 퇴거집행이 불법이 아닌 이상 세입자 자의에 의하지 않은 점유상실이라도 대항력을 상실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대항력있는 임차인이라는 것에 집착해서 임차권등기명령을 소홀히 하다가 퇴거집행으로 점유를 상실하게 되면 향후 건물낙찰자에 대해 대항력을 주장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