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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터너의 어린시절은 고통과 좌절에 가까웠다.
4.5kg으로 태어났지만 첫 생일을 맞이하기전 수두, 폐렴, 천식등을 앓았고 특히 89년 시카고에서 유행한 홍역은 그를 죽음의 근처까지 다다르게 하였다.
당시 그의 엄마 Iris는 자신의 아기가 제대로 울지도 못할 정도로 아픈걸 발견하고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의사는 그녀가 과장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간단한 지침만을 지시한다.
하지만 그녀는 심상치않음을 느끼고 병원으로 향했고 터너는 응급실에서 심각한 상황에 빠져 호흡과 관련한 수술을 하게된다. 그 결과 생명엔 지장이 없게 되었지만 1년동안 정상적인 호흡이 힘들어 침대에 누워 잠을 잘수 없었고, 그녀가 1년동안 자신의 품속에서 터너를 재워야만 했다.
그리고 3살 땐 차에 심하게 치였는데 머리부터 땅으로 떨어져 뇌진탕증세가 있고 외상이 있어 다시한번 병원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큰 위기들을 넘겼지만 터너의 큰 좌절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는 치아크기의 불균형 때문에 명확하게 말할 수 없었고 3살 때까지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가족 중에서도 그의 형 Darius만이 제대로 알아들었으며 심지어 터너의 엄마도 형의 통역이 필요할 정도였다.
(예를들면 터너는 "Momma."를 "Bobba"라고 발음했다.)
“나는 Darius가 없었으면 터너가 어땠을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 둘은 특별한 관계였어요.” 그의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터너는 좌절했고 수줍었으며 자신이 없었다. 그는 스피치 테라피의 도움을 받았지만 특별관리를 받는 기분은 썩 좋지않았다.
“나는 고함을 지르고 싶었어요.. 다리우스 그가 뭘 원해? 그가 뭘 원해?..” 터너가 말했다.
어릴 적 그는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았고 그저 밖에서 농구를 하고 집에서 March Madness2003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농구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아주 좋은 치료법이 되었다. (그는 게임에서 자신을 가장 수치 높게 만들었 플레이하곤 했다)
모든 것이 정상이 된 어느 순간 터너가 스스로가 겪고 이겨낸 것들은 자신감으로 바꿨다.
그는 어떤 장애도 해쳐나갈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막지 못할 시련을 겪게 된다.
John Moll & Evan Turner
시카고 St. Joseph's 고등학교의 첫날 신입생 터너는 식당에 혼자 앉아있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서 이야기했다.
“여기 앉아도 되냐? 너 나 알지?” 단언하듯 이야기한다.
“내가?” 터너가 말했다.
그가 청소년 리그이야기를 꺼냈을 때 터너는 상대팀의 아프로 파마였던 그를 기억해냈다.
지금은 짧은 머리의 그를 보며 “기억난다 ‘Smiling Johnny’” 터너가 말했다
그것이 John Moll과 Evan Turner의 우정의 시작이었다.
터너와 몰은 말은 적지만 잘 웃는 친구들이었으며 교실과 체육관에서 함께 어울렸다. 하지만 터너는 몰에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둘은 직접적인 문제를 함께 겪은 적이 없었고 몰이 종종 학교에 결석을 했을 때도 터너는 그저 출석부에 적힌 ‘무단결석’이라는 내용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리라 예상하지도 못했다. 그저 그가 돌아왔을 때 그를 격려하고 농구를 즐길 뿐이었다.
아무도 몰랐던 John Moll
John Moll은 2개월 때부터 수양가족과 살았다. 존의 친엄마는 정신분열증이었고 인생의 대부분을 시설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녀는 시설에서 그를 임신했고 존 몰과 함께할 수 없었던 그녀는 그를 포기한다.
Barbara & Matt Moll은 그러한 존 몰을 키운 부모였지만 그가 8학년 말에 약과 관련된 일을 시작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운동에 재능이 있는 사교성 좋은 건전한 학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는 친구들에게도 "Smiling Johnny Moll"이라고 불렸으며 좋은 친구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2004년 12월 11일 모두가 놀라고 좌절했다.
존 몰은 저녁식사 후 부모와 포옹한 뒤 다시 돌아올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그는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그의 부모, 친구들, 정신과 카운슬러 모두가 알지못했다.
“당시에 가장 놀란 사람들은 나와 남편과 전문가들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그것이 오고있는 줄 몰랐다.” 바바라 몰이 말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머릿속이 어떤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터너는 그 사실을 체육관에서 들었다. 체육관은 침묵이 흘렀고 터너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 나는 정말로 터너가 걱정이 되었다. 그는 큰 고통에 빠졌다.” 터너의 엄마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못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락커룸은 내 바로 오른쪽에 있었고 교실에서 그의 책상은 내 옆에 있었으며 밥 먹을때도 항상 내 옆에 앉았었다. 그가 이 락커룸을 다시 사용하지 하지 못하고 이 책상에 다시 앉지 못할 것이라는 걸,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오래 걸렸다. 당시에 나는 그가 돌아올거라 생각했다.” 터너가 말했다
터너는 존 몰을 그저 조용하고 친근하며 거친 수비를 지닌 포인트가드라고 알고 있었다.
그는 슬픔과 좌절에 빠졌지만 그것은 오래가진 않았다. 그는 전화를 들었다.
한통의 전화
아들의 자살에 큰 슬픔에 빠져있던 그날 밤. Barbara Moll은 16살 소년의 목소리를 전화에서 듣는다.
터너는 한시간동안 그녀를 위로했고 바바라 몰은 큰 감동을 받았다. 터너는 누구의 제안을 받고 전화기를 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존 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모하기로 결정했다. 바바라 몰에게 전화한 것도 그중 하나의 일환이었다. 터너는 그로부터 매년 3번이상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날, 존 몰의 생일, 존이 죽은 12월 11일..-
바바라 몰도 계속해서 아들이 있던 팀의 04-05시즌 경기를 함께했으며 팀의 연회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5년뒤 터너의 대학교 경기도 계속 시청하거나 찾아갔다.
그곳엔 바바라 몰의 아들이 있었다. 21번이 새겨진, 바로 존 몰이 고등학교 때 입었던 그 번호를 터너가 달고 있다. 그것도 Ohio State에서 결정한 터너의 방식이었다.
*NBA드래프트 된 뒤 필라델피아엔 테디우스 영이 이미 21번을 달고 있었기에 터너는 번호 앞뒤를 바꿔 12번을 입었다.
"나는 아직도 그가 그날 밤에 나에게 전화를 했던 게 놀랍다" 바바라 몰은 이야기한다.
그녀는 최근 터너와 또다른 아들의 친구들과 연락하기 위해 페이스 북에 가입했다.
전화 한통의 대화는 간단했지만 많은 것을 시작하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터너는 여전히 그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이젠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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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봤습니다. 이런 스토리를 몰랐다면 그냥 09냔 크게 성장하지 못한 2픽 선수라고만 알텐데.. 아마 대부분 느바 선수들도 이런 식의 불우한 스토리가 있고 힘든 과정이 있을 거라 생각되네요 .. 여튼 터너도 정말 어렵게 성공한 스타였네요
맞아요. 참 많은 선수들이 그들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더군요. 에반터너가 발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쉬움이 느껴지는 선수인데 좀 더 애정을 갖고 지켜볼 수 있을거 같아요.
힘내요 터너
이넘아도 가슴따뜻한 청년이었네요...크게 성장해서 다른 두 AI못지 않은 76ers의 스타가 되었으면 하네요ㅎㅎ
터너를 다들 망픽이다 2픽값 못해주는 선수라고 보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데...자세히 살펴보면 터너는 좀 느리더라도 꾸준히 매해마다 기량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아직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제가 봤을때는 뒤에 크게 될 선수라고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동의합니다.점프슛이 올 시즌 늘었어요.워낙 멘탈이 좋아서 망할 가능성은 적은 선수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ㅠㅠ
기대가너무커서그렇지... 요즘충분히잘하는것같아요
잘봤습니다. 터너의 겉모습만 보면 엘리트코스만 밟았을 것 같은데,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한 선수군요.
터너는 이 프로필 사진이 너무 인상깊어서 소년같은 선수인줄 알았는데 멋진 청년이었네요 ㅎㅎㅎ
정말 멋진친구에요. 항상 유심히 보는 친구 중 한 명.
멋지네요. 저도 눈여겨 보고 있는 선수입니다.
멘탈이 좋아서 망할일은 없다고 믿고있습니다. 어릴때부터 몸이 안좋았고 대학때도 커리어를 날릴뻔한 등부상을 당했죠. 하지만 시련을 극복하고 더 성장했습니다.
선수들의 이런 인간적인 이야기 참 좋습니다. 잘읽었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선수들의 이런 스토리를 참 좋아합니다. 터너에 대해 관심이 더 가네요. 감사합니다.
멋진 선수네요
이러니 더 정이 갈 수 밖에 없네요ㅠㅠ 좋은글 잘 봤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런 글을 읽고 나면 그 선수가 특별해보인다는.. 역시 선수들의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이 외에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제레미 버틀러(시카고)와 포틀랜드(앗 갑자기 이름이..ㅠㅠ) 선수가 생각나네요.
리그 데뷔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있게 지켜보는 선수가 되었거든요. ^^
멋지네요^^ 죽은친구를 기억하기 위해 그의번호를 단다라...21번 다시 다는 그날까지 열심히 지켜봐야겟네요
이런멘탈좋은 선수들은 커리어를 길게가져가더라구요. 역시 터너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ㅎㅎ
난 너의 선한눈이 참 좋더라^^
울컥할뻔 했네요. 정말 좋은 마인드를 가졌네요.
저정도면 태디우스한테 부탁해서 번호받아도 될정도네요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인공이시네요ㅎ 파이팅!
스크랩 좀 할께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네 페이서스 파이팅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