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J . L. 보르헤스의 단편집 <Las fictiones>중 <바벨의 도서관>
분명 원작에 누를 끼치는 잡글이 될 테지만
심심해서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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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 같은 곳에 있는 노래방이라고 하면 보통 'XX가든' 같은 곳에 부속품으로 딸려,
주말이면 도피처를 찾아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여색을 탐하러 온 배 나온 직장인들의
2차 코스를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 노래방은 다르다.
우선 강가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애당초 야경이랄까, 호젓한 분위기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은 위치 선정이다.
그리고 일체 주류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 근처의 술집에서 흘러들어오는 놈팽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놈팽이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곳도 아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그 광대한 내부에 놀라게 된다. 수백 수천, 아니 어쩌면 수만의 알바들이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모르도르의 분화구 속에서 바삐 일하는 오크들을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끝도 없이 아래로 펼쳐진 중앙 홀을 따라 나 있는 나선형 계단마다, 각각의 면에 뚫려 있는 노래방의
방방 켠켠을 돌아다니면서 끝없이 방을 체크하고, 행여 취객이나 음란행위를 하는 이가 없는지 확인한다.
각각의 방은 정육각형 모양으로 뚫려 있으며 각각의 조명은 모두 다르다.
층이라는 개념이 없이 나선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거대한 벌집을 연상케 하지만
이 나선형 계단이 뻗어내려가는 끝을 보았다는 이는 아무도 없다. 보통 그 끝까지 내려가기 전에
생을 마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숙식을 해결해 가며 이 수상쩍기 그지없는 가평의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는 사랑이 있고, 증오가 있고, 도둑이 있고, 경제 체계가 있다.
이곳의 노래방에서 사람들은 미친 듯이 이 노래 저 노래를 뒤적거리며 살핀다.
왜 이 많은 이들이 모두 노래방 따위에 묶여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지금부터 시작하겠다.
각각의 방에 설치된 노래 기계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금영도 태진도 신나라도 없다. 이곳의 노래방 기계는 메이커가 없는, 하지만 모든 곡이 들어 있는 특이한 기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에서 원하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곳의 노래방 기계에는 안내책자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래방 기계에 달린 거대한 숫자판에 곡명이 아니라,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없는 숫자를 찍어넣는다.
기계에 들어 있는 노래의 수가 <무한>이라는 점이 밝혀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나자,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각기 추구하는 그 무언가 역시 그 노래방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것은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의 종류 역시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그렇지 않은가?
그러한 노래는 각자의 인생에 대한 어떤 종류의 해석, 곧 해설가(解設歌)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유한한 인생에 무한이 내리는 삶의 지침으로서의 선물이 될 것이었다.
그 사실이 입에서 입으로 -이 경건한 공간은 결코 외부의 어떤 쓰레기 같은 신문이나 무뇌충을 노래하는 쇼프로에도 소개된 적이 없다- 전해져
수많은 이들이, 구도자와 수도승과 아햏햏 햏자들과 뉴에이지 추구자들과 금욕주의자들과 고행주의자들이 온갖 도구들과 온갖 욕망을 품고 무한한 수용량을 지닌 이 가평의 노래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이곳의 늘어난 일자리 -사실 그것은 말 그대로의 <무한>으로서 결코 이전에도 이후에도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없는 무한한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를 찾아 이곳의 질서에 편입되어 알바의 역할을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찾아온 수탐자들은 자신만의 '해설가'를 찾아 각자의 노래방에 처박혔다. 수억을 수억 곱한 것보다도 많은
노래방의 각 방들은 담고 있는 노래가 모두 달랐다. 그래서 그들은 이 방에서 수만 개의 노래를 틀고, 또 저 방으로 옮겨가 수만 개의 노래를 틀었다.
자신만의 해설가를 찾아 돌아다니는 이러한 노력이 성공을 거둔 적이 있다는 말을 나는 아직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해설가의 존재는 분명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이따금 12세기에 죽은 한 젊은 기사의 숭고함과 그의 일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치질의 문제를 다룬 랩소디라든가,
혹은 23세기쯤 되어 태어날 한 기형아의 슬픈 운명을 노래한-가평의 노래방은 시간을 초월한다. 분명 지금은 21세기 초이다- 곡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미 확인되고 검증된 이러한 사실들에 의해 해설가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 수많은 이들은
각자의 노래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결국 정육각형의 방문을 걸어잠근 채 폐인이 되기도 하고,
심심찮게 육각의 거대한 홀 아래, 그 무저갱 속으로 몸을 던져 버리기도 하고
-이 광경은 특히 18일의 일요일 밤에 자주 일어나기에 그 밤이 되면 악마적인 취향을 가진 나의 알바 동료들은
알바 숙소의 창밖을 통해 그 광경을 목도하려 모여들기도 한다.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이가 부르고 있는 노래를 뺏으려 하다가
서로 죽이고 그 시체를 중앙 홀 아래로 던져 버리기도 하고,
가끔은 하루에도 수천 곡씩의 노래를 부르는 것에 미쳐 버려 나선형의 계단 복도를 알몸으로 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수만에 수만을 곱한 수의 알바들은 열심히 그 모든 이들의 뒤처리를 해야 했다.
물론 가평의 노래방의 모든 곡들에는 제목이 없다.
가끔 통속적인 돈벌이나 예술혼의 추구-나는 이 둘의 차이를 모르겠다-를 위해 부른 노래들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나는 디즈니의 라이온킹의 OST 중 하나였던 Under the stars의 경음악을 발견한 적도 있다-
그러한 곡들마저도 제목을 달고 노래방 기계의 스크린에 뜨지는 않는다. 단지 가사는 뜬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는 대신 가사에 지나치게 열중하기도 한다.
한 번, 몇 년 전엔가, 그런 일이 있었다.
당국에서 나왔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매트릭스의 agent 같은 그들은,
삽과 오함마와 곡괭이를 든 똘마니들을 데리고, 닥치는 대로 노래방 기계를 조사해
-나는 그들이 기계 자체를 뜯어 컴퓨터와 연결해 조사하는 시도를 했음을, 그리고 아무 소득이 없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종류의 노래가 없다고 판단되면-실제로 그들이 들어 본 것은 기계 하나당 몇 곡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예의 똘마니들을 시켜 기계들을 산산조각내곤 했다. 그런 식으로 수천 개의 방이 파괴되었다.
수많은 이들이 그런 요원들을 비난했고 그들을 파견한 당국의 처사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이제 저널리즘마저 자극하기 시작한 이 가평의 노래방은 그 존폐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깟 노래방의 존폐 여부를 가지고 어떤 종류의 결정을 내릴 생각이 별로 없었고
-사실 그것보다는 정계의 거물들의 아들들의 칠칠치 못한 행동들을 은폐하느라 바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래방을 운영하는 주체를 아무도 알 수 없었으며 그것이 운영되는 체제 역시 파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무도 노래방을 손댈 수 없었다.
사소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그 노래방이 움직이는 데 드는 거대한, 아찔하기까지 한 전력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가평 댐의 전력을 도둑질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 적이 있었지만
노래방이 하루에 사용하는 전력이 가평 댐이 1년 간 생산하는 전력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바들은 모두 알고 있었기에
그러한 질문에 대답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물며 어떻게 노래방이 누구에 의해 언제 어떻게 왜 설립되었는지를 알 수 있겠는가.
혹자는 이 노래방이야말로 현대적인 신의 역사하심이라 하였다. 생에 의미를 찾는 것을 포기하기 시작한 현대인들에게 내리는 준엄한 경종의 의미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알바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우리 모든 알바들은 매달 수천만원의 거액을 받으며
비밀 계좌에 수억의 돈을 쌓아 두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신께서 왜 그런 뒤 구린 일을 하시겠는가.
어째서 신께서 취객이나 정신병자 처리하면서 살고 있는 우리 같은 쓰레기에게 그런 엄청난 돈을 내리시겠는가. 신께서 그렇게 할일없는 분은 아니리라.
나는 앞서의 그 노래방 파괴 요원들의 행동에 대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이 그 수천 개의 기계들 속에 들어 있었을지도 모르는 자신들의 해설가에 대해 엄청나게 집착하고
그들을 비난하기를 불을 토하듯 하지만, 사실 각각의 노래들은 쉼표 하나, 음정 하나, 간주 길이 반 마디 정도가 다를 뿐, 대체로 똑같다. 그것이 <무한>의 비밀이다.
하지만 그렇게 거의 같은 내용의 노래가 같은 기계 내에 있는 예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만의 해설가를 찾아다니는 수많은 이들이나,
해설가가 없다고 기계를 부숴 버린 요원들 모두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해설가가 아니라, 그 조잡한 오역의 녹음판이라도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은 0이었음을 그들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이는 거꾸로 거슬러올라갈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즉, 어떤 단 하나의 노래가 어떤 단 하나의 사람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단 하나의 노래에 관해 노래하고 있는 노래 역시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노래에 관한 노래에 대해 노래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이렇게 무한한 연역 과정을 답습하다 보면 원하는 노래를 찾는 것은 의외로 빨라지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 역시 불가능하다 생각한다. 그 노래의 노래의 노래의 노래의... 노래를 찾기 위해 나선형 계단을 수십 년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 노래가 진실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 이것이 알바들이 가진 진정한 비밀이다.
우리는 그 노래들 중에 거짓, 거짓을 위한 거짓, 거짓을 증명하는 진실, 진실을 증명하는 거짓, 거짓을 옹호하는 진실, 진실을 옹호하는 거짓,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노래 자체만을 위한, 거짓과 진실을 초월한 노래들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을 알고 이것의 비밀을 지킬 것, 그것이 모든 이 가평의 노래방의 알바들이 그 고용주와 약속해야 할 유일한 계약 조건이다.
이름도 얼굴도 사는 곳도 모르는 그 신비스럽고 비밀스런 고용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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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마무리를 내 맘대로 해 버려서 굉장히 미안합니다.
모방작은 이래서 안 되는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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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기고란
단편
[리메이크]가평의 노래방
B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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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06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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