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체험
입소 이틀째. 연병장에서 아들과 함께 제식훈련과 총검술 훈련을 받았다. '받들어 총! 세워 총!" 같은 동작들이 쉽게 몸에 붙지 않았다 군인들이 장난감처럼 다루던 총은 왜 그렇게도 무거운지. 평소 TV나 영화를 통해 자주 본, 총을 다루며 행진하고 사열하던 군인들의 경쾌한 동작들이 수없이 거듭된 훈련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총검술 훈련이 끝난 뒤 우리는 아들들의 훈련 참관을 위해 이동했다. 아들들은 어느새 주황색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넓게 펼쳐진 그물망 밑을 포복으로 통과하여 목표지점까지 전력 질주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결승선에서 1, 2등은 통과. 나머지 범사들은 다시 원점으로. 결승선에서 낙오된 병사들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고야 훈련을 마무리했다.
다음 훈련은 총 들고 뛰어가다가 엎드려 자세로 사격하고 다시 일어나 높은 구릉을 타고 넘어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훈련이었다. 아들은 키가 크고 덩치도 제법 큰 편이었지만 놀랍도록 민첩하게 힘든 훈련들을 잘 해냈다. 아들의 모습이 당당하고 의젖해 보였다.응석받이 내 새끼가 어느새 저렇게 늠름한 대한의 역군으로 성장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어머니들도 유격훈련을 비롯하여 사격, 총검술, 로프 잡고 뛰어내리기, 아들과 함께 진흙탕 속에서 각개전투, 그물 다리 건너기 등 많은 훈련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훈련은 화생방 훈련이었다. 체험실에 들어가서 약품이 투입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다섯을 세고 문밖으로 뛰어나가는 훈련이다. 까짓 5초 정도야 하고 가볍게 생각한 이 훈련을 정작 통과한 사람은 대여섯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 3~4초도 지나지 않아 밖으로 뛰어나와 기침을 해대고 물통에서 물을 퍼내어 얼굴에 끼얹으며 야단법석이었다. 병사들은 우리보다 몇 배나 더 높은 강도의 훈련을 했다는데 거뜬히 훈련을 완수한 아들들이 참으로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아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마친 후 다시 연병장에 모여 취침을 위한 점호 시간을 가졌다. 인원 보고를 마치자 교관이 큰 소리로 ''전병사들 각자 고향을 향해 위치로!" 하고 외쳤다. 모든 병사들이 "야!" 하고 응답하며 제각각 고향 하늘 쪽으로 돌아섰다. 이어서 "부모님께 저녁 인사"라는 교관의 구령 끝에. "고향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이 밤도 편안히 주무십시오!"하고 병사들이 소리를 맞춰 인사를 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차던지 온 훈련소가 진동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주무십시오, 주무십시오,주무십시오'라는 인사의 끝말이 한참 동안 메아리쳤다. 우리 아이들이 밤마다 부모가 있는 제 집 쪽을 바라보며 저렇게 간절한 저녁 인사를 하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른 채 그동안 우리들은 단잠을 자고 있었구나!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저녁 인사는 아들아이가 군에 있는 동안 내내, 그리고 제대 이후에도 오랫동안 잠자리에 들 때면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되살아 나곤 했다.
20여 년 전 뜻하지 않게 참여했던 2박 3일의 논산훈련소 병영체험은 내게 군대란 오직 군인정신과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만을 절대적인 가치로 내세우는 경직된 조직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우리 아들들에게 자립심과 협동심을 길러줌은 물론 몸과 마음까지 건강한 성인 남자로 거듭나게 해주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동료 병사의 엄마인 나를 제 어머니인 양 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내무반 병사 12명, 그들이 단지 아들의 동료 병사만이 아니라 하나같이 소중한 나의 아들임을 깨닫게 해주었던 병영체험! 우리 어머니들이 내 아이만의 어머니가 아닌 모든 병사들의 어머니가 되어주어야 함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준 귀한 체험이었다.
김숙희 fideskim49@gmail.com
일 년 사이 어엿한 숙녀가 되어 찾아온 손녀딸과 그동안의 회포를 풀기도 전에 멀리 텍사스로 떠나보내고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