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양식이 가장 아름다운 성당 공세리성당
공세리성당이 자리한 인주면은 역사가 깊은 곳입니다.
백제를 세운 주몽의 아들 비류가 고구려에서 남하해 처음 정착한 미추홀이 이곳이며 지금은 밀두리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백제의 멸망을 이끈 나당연합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청일전쟁 때도 전란의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공세리 성지.성당 박물관은 도지정문화재 144호인 구사제관을 개보수하여 봉헌된 곳으로 대전교구 최초의 감실을 비롯한 1,500여점의 유물을 모시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의 태동에서부터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한 초대교회의 교우촌 생활모습과 신유.병인 박해때의 순교자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성직자 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공세리성당 초대 신부인 에밀 드비즈 신부의 유물과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샹스땅 신부의 유해와 성녀 루이스 드 마릴락의 유해 뿐만 아니라 32순위 순교자 유해를 모시고 있습니다.
박물관 관람은 화요일~주일 오전10시~오후4시(매주 월요일 휴관)이며,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4대박해(신유, 기해, 병오, 병인)를 통해 만 여명의 순교자를 낳게 되는데 그 대부분이 내포 천주교에서 나왔습니다.
신유박해 때는 아산 최초의 순교자인 하 발바라가 있고, 또 병인박해 때는 박씨 삼형제인 박의서(사바스), 박원서(마르코), 박익서(세레명 미상)를 비롯하여 부부 순교자인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그리고 삼부자인 이 요한, 이 베드로, 이 프란치스코가 영광스럽게 순교합니다.
이들을 포함한 병인박해 때 아산지역 출신 순교자는 모두 32명이었으며 각각은 서울, 수원, 공주 등으로 끌려가 고문, 옥사, 참수형 등으로 순교합니다.
봉헌된 납골식 순교자 현양탑에는 박의서 사바, 박원서 마르코, 박익서 세 분의 유해와 박인서, 이 마리아, 이씨 부인, 박홍갑, 박화진 알렉산데르와 조 모니카의 묘표석, 그리고 순교자 김중백을 포함한 스물세 분의 묘석이 모셔져 있습니다.
바다가 육지로 깊숙이 들어온 아산만에 인접한 충남 아산군 인주면에 위치한 공세리 성당은 일찍이 조선조 때 아산. 서산. 한산을 비롯해 멀리 청주. 문의. 옥천. 회인 등 40개 고을의 조세를 쌓아 두던 공세창고가 있던 곳입니다.
이 창고 건물이 1523년(중종 18년)에 개설됐다가 고종 때 폐지됨으로써 80간짜리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1897년 구본당 및 사제관 건물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성당은 붉은 벽돌과 먹빛 벽돌이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지붕 귀퉁이에는 하얀 석고상을 장식물로 앉혔습니다.
드라마 <모래시계>, <불새>, <에덴의 동쪽>,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고스트 맘마>, <신부수업>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공세리성당이 처음 지어진 것은 116년 전인 1895년. 당시에는 마을의 가정집을 개조해 미사를 드렸습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현재의 성당은 1922년 프랑스 출신의 드비즈 신부가 중국인 기술자를 데려와 지은 것입니다.
1890년 한국 천주교회에서 아홉 번째이자, 대전교구에서 첫번째로 설립된 공세리성지. 성당은 12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순교성지. 성당답게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144호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본당은 1층 적벽돌 건물로, 정면에는 높은 첨탑이 있고, 내부에는 무지개 모양의 회색 천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건축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해 온 공세리 성당 옆에는 오래 된 고목이 한 그루 있습니다.
그 연륜을 알 수 없는 고목은 공세리 본당의 긴 역사를 그저 무심한 듯 말없이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성당 둘레로는 한적한 오솔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한 바퀴 도는 데 겨우 5분도 채 안 걸리는 짧은 거리이지만, 온갖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어 참 포근하게 느껴지는 매력이 있습니다. 여기엔 14처가 조성되어 있어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공세리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이곳 아산만과 삽교천은 교회 박해 시대에는 내포지방의 입구로 해상과 육로로 연결되는 중요한 포구였으며, 현재 성당이 위치한 9,500여 평의 부지는 예로부터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가 있던 공세곶 창고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1895년 이곳에 부임한 에밀 드비즈 신부님는 400년이 지난 세곡 창고 터를 헐고, 그야말로 복음창고인 고딕 양식의 공세리 성당을 1922년 10월 8일 봉헌함으로써 내포지방 신앙의 못자리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아산, 서산, 당진, 홍성, 예산 등 내포 지방은 순교자들이 유독 많은 곳입니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하고, 천주교가 다른 지방에 비해 먼저 전래됐기 때문입니다.
조선후기 4대 박해기간 동안 천주교 순교자를 보통 1만 명 정도로 추산하는데 이중 내포와 충청권이 60~70%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공세리성당의 초대 신부님이었던 드비즈는 ‘이명래 고약’의 개발자로도 유명합니다.
당시 이곳에는 80여년에 걸친 간척사업이 진행됐는데, 드비즈 신부님는 고된 노동으로 몸이 헐어 고생하는 이들을 위해 한방의술을 활용, 자신이 직접 한약을 조제합니다.
처음에는 드비즈 신부님의 한국 이름을 따서 ‘성일론 고약’으로 불렀습니다.
그 후 자신의 심부름꾼이었던 이명래(요한)에게 고약의 비법을 전수해 준 뒤 ‘이명래 고약’이 되었습니다.
첫댓글 바쁜신데 시간 내서 차량봉사해주신 비오,스테파노형제님들께 감사드리고,꼭 !또 다시 가보고 싶은 성지였어요
정말 이쁘답니다~~
백인대장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전례를 성안나에서 주도하니 보조본당(?)에 온 느낌이었죠..ㅎㅎㅎ
이제서야 감사인사를 드리네요..운전해 주시고 멋진 사진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공세리 성지 너무 아름다운곳이고 또하나의 추억을 만들수있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