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9) 요한 복음 15장 9절에는 두 가지의 사랑이 소개된다. 성부 하느님의 성자에 대한 사랑과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그것이다.
여기서 앞에 나오는 성부 하느님의 성자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성자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의 모델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처럼'으로 번역된 '카토스'(kathos; as)라는 비교를 나타내는 접속사에서 잘 드러난다. '카토스'(kathos)는 '마치~같이'로 번역되어 사랑의 방법을 나타낸다.
하지만, 때로는 '~만큼'으로 번역되어 양(量)의 정도를 나타내기도 하고, '~인 까닭에'로 번역되어 이유를 나타내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러한 두 가지 의미가 복합적으로 다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과 동일한 방법, 그리고 동일한 정도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사랑하셨으므로, 성자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사랑하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느님 사이에 있는 신적(神的)인 사랑이 우리 인간을 향한 사랑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한 복음 15장 9절에서 두 번 사용된 '사랑하다'란 뜻의 동사 '아가파오'(agapao; have loved)나 '사랑'이란 뜻으로 한번 사용된 '아가페'(agape; love)가 모두 무조건적이며 이타적인 신적 사랑을 뜻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사랑하다'는 동사가 이미 결정적이며 불변함을 암시하는 부정(不定) 과거형으로 쓰였다는 점도 이러한 사실을 보여 준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이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사랑 안에 머물러라'는 뜻이다.
'내 사랑 안에'에 해당하는 '엔 테 아가페 테 에메'(en te agape te eme;in my love)에서 '내 사랑'은 실제 원문에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사랑'에 해당하는 '테 에메'(te eme)와 '그 사랑'에 해당하는 '테 아가페'(te agape)의 두 단어로 되어 있다.
이것은 소유의 뜻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희랍어에서 소유의 뜻을 강조할 때에는 인칭 대명사의 소유격을 쓰는 대신에 '테 에메'(te eme)와 같은 소유 대명사 여격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소유하시고 있는 사랑을 강조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그 안에 머물러라고 명하신다.
여기서 '머물러라'로 번역된 '메이나테'(meinate; remain; continue)는 '메노'(meno)의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서 '머물러 있으라' 혹은 '살라'는 뜻이다.
또한 '메노'(meno)가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아마드'(amad)와 '쿰'(qum) 등의 역어로 주로 나오는데, 이것은 어떤 것의 존재 뿐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 계속적인 효력을 나타내는 뜻도 지닌다.
특히 '메노'(meno)가 하느님께 사용될 때에는 '지속하다', '불변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뜻을 지닌 '메노'(meno)와 더불어 신적(神的)인 사랑을 나타내는 '아가페'(agape)가 쓰였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우선, 예수님의 사랑이 지닌 특성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이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먼저 베푸는 사랑이다.
이것 뿐만 아니라 변함이 없고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이므로, 누구든지 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이사55,1; 마태11,28; 로마2,11; 1코린1,26~31).
두번째는 우리가 얻은 구원이 지닌 영원한 효력이다.
예수님과 일치한 자들,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이러한 특권과 축복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가 영원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예수 그리스도와 믿는 이들)의 사랑의 관계도 또한 영원한 것이다.
따라서 '아가페'(agape)사랑이 지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해나 조건이 전제되지 않는 것, 즉 이기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세상적인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출처: 피앗사랑 |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