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8. 큐티
시편 107:1 ~ 3
여호와께 감사하라
관찰 :
※ 시편 107편은 시편 전체 5권의 시편 분류 중에서 제 5권(107-150편)의 첫 번째 시입니다. 제 5권은 시편 전체 5권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인 44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시편 전체의 29편의 감사 예배시 중에서 18편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제 1권(1-41편)과 제 2권(42-72편)에 비탄시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이러한 시편의 편집은 시편 전체를 마감하면서 성도의 삶이 감사와 찬양을 수반한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 본 시편은 시편 전체 150편 중에 표제어가 없는 34편의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본 시편의 저자 및 저작 배경이나 연주 방식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모두 44편의 시가 수록된 제 5권 가운데 무려 28편이 저자 미상의 시편입니다. 저자 미상의 시편이 많다는 것도 제 5권의 특징중 하나입니다. 본 시편이 저자 미상의 시이지만 포로 귀환 이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찬양
- 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구속받은 자들을 향한 여호와의 찬양을 촉구하는 본 시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선포하며 시작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라”(הֹדוּ, 호두)는 “עדי”(야다)의 사역명령형입니다. 이 단어는 ‘(손을 들어) 경배하다’, ‘(손을 들어) 존경하다’, ‘(손을 들어) 감사하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히 여호와께서 행하신 과거의 일에 대하여 감사하라는 권고 뿐만이 아니라 미래적 의미와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찬양하고 고백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 이름을 인정하고 고백하라는 포괄적인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히브리성경에서는 “כִּי”(키이, 왜냐하면)가 “그는 선하시며”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앞에 각각 나오는데 한글 개역개정에서는 생략되었습니다. 즉 “여호와께 감사하라 왜냐하면 그는 선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왜냐하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그리고 그 백성에 대한 인자하신 호의와 그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한결같은 사랑과 은혜는 영원하신 분이신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가 반영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찬양하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속량 받은 자들을 모으시는 여호와를 찬양
- 2절.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 시인은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구속하시고,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신 “속량을 받은 자들”을 모으시는 분이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구속하심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함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역사하심을 늘 기억하고, 이 일이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회자되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속량”(גָּאַל, 가알)은 ‘건지다’, ‘구속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무와 깊은 관련을 지니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한 개인이 곤궁함에 빠져 그의 기업인 밭을 팔아야 하거나 그 자신 혹은 가족이 종으로 팔려가게 될 경우 가장 가까운 친척이 어려움에 빠진 친족을 구우너하고 건지기 위해 그 땅을 되사거나 그를 종 된 신분에서 건져내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한 개인이 억울한 피를 흘리고 죽임을 당할 경우 그 친족은 그를 대신해 피의 복수를 단행해야 했습니다. “속량”(גָּאַל, 가알)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단어는 주로 시편과 예언서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위해 원수들을 친히 갚아주실 구속자이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속량”(גָּאַל, 가알)은 단순히 그를 어려움 가운데서 건져주셨다는 의미보다 친족의 입장처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들을 구속하셨다는 데에 초점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되, 그 구속의 대상자들에 대한 친밀함, 애정, 자애를 가지시고 기꺼이 구원하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 3절.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흩어진 상태에서 불러모으시는데 온 세상에 흩어진 자들을 불러모으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동서남북”을 직역하면 “동으로부터와 서로부터 북으로부터와 남으로부터”라는 의미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세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을 침략했습니다. 첫 번째는 애굽을 정벌하는 노정에서 예루살렘을 거치게 되었던 것이고, 나머지 두 번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의 거민들이 포로로 잡혀가면서 바벨론으로, 그리고 바벨론이 정복한 다른 이방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본 절은 이렇게 널리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의 각 지역으로부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모으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디에 처해 있든지 지켜보시며 그들을 붙드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시편 기자가 말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시라는 그 존재론적 이유만으로도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무서우신 분이시고, 잔인한 분이시라면 인간은 정말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말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너무나 좋으신 분이시기에 죄 많은 인간일지라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그 백성이 흩어진 곳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다 살피신 분이십니다. 비록 포로가 되어 천지 사방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가 된 상황이었지만 그들의 모든 처지를 하감하고 계셨고, 때가 되자 그 흩어진 곳에서 하나님께서 모으셨습니다. “알아서 모여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속량하심으로 댓가를 치러주시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모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 백성들을 살피시고 보호하시고 모으시는 분이십니다.
3) 하나님의 속량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그 사랑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던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죄인에게 들어오셔서 주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의 영혼에 성령이 내주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과 은혜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영원히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
1)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이시고 인자가 영원한지에 대해서 생각할수록 기쁘고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성령님으로 동행해 주셔서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모든 은혜가 넘침을 고백합니다.
2) 하나님의 자녀들을 땅 끝에서도 다 알고 계셨고, 그들을 다 속량하시며 모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 나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찬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주관하시고 풀어가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주님의 속량의 역사, 문제 해결의 역사가 제 삶 가운데 명쾌하게 드러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3) 참으로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전심으로 찬양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