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을 빙자한 교회 안 음악에 대해서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며 노래와 비교가 안 되는 권세가 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찬양받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찬양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몇 년 전, ‘날 세우시네(You raise me up)’이라는 곡이 한국교회에서 많이 불러졌다. 그리고 여전히 이 곡을 많이 좋아하며 즐겨 부른다. 그러나 이 곡은 찬양이 아니다. 모든 노래는 영감으로 작곡, 작사가 된다. 그래서 이 곡을 누가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곡을 누가 만들었냐도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곡에 담긴 의미와 목적, 생각과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You raise me up’는 1998년 브래던 그래험이 쓴 베스트셀러 소설인 ‘The Whitest Flower’ 읽고 롤프 뢰블란이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으로 이후에는 ‘The Whitest Flower’의 작곡가이자 작사가인 브래든 그래험에게 롤프 뢰브란이 작사를 의뢰하여 만들어진 곡이다. 그리고 이 곡은 시크릿가든(Secret Garden)은 뉴에이지 가수 그룹으로 뉴에이지 영성과 사상을 지향하는 듀오이다.
즉 이 곡에서 지칭하는 ‘You’는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GOD’이나 ‘LORD’가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기독교적으로 개사를 한다고 해도 이 곡을 작사, 작곡을 할 때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성령의 감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곡을 만들게 한 영감은 세상의 영을 통해 곡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높이기보다는 ‘자기만족’, ‘인본주의’, ‘인간의 감성’만을 자극하는 뉴에이지의 음악일 뿐이다.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음악이 우리 교회에서 버젓이 불리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또 한 가지는 영화 ‘미션’에 나오는 OST ‘Nella Fantasia’이다. 이 곡은 주로 성가대에서 불려진다. 그러나 이 곡도 결코 하나님의 영감으로 만들어진 찬양이 아니며, 뉴에이지에 기초한 사탄 음악에 불과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특정 단체를 거론할 수는 없지만 요즘 청년,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찬양팀들의 찬양이나 CCM을 보면, 비속어, 감정과 감각을 자극하는 곡의 흐름, 그리고 하나님보다 사람과 세상에 치우쳐 십자가와 보혈,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기보다는 자기 연민, 자기애에 심취하게 되는 곡들이 너무나도 많아 사실 무척이나 염려가 된다.
거룩이 유지되어야 할 교회 안에 언제부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이 아닌 세상을 사랑하는 가요나 뉴에이지, 또는 미혹적인 노래들이 버저시 불려지고 있고, 이것에 대해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경각심이 없이 찬양팀과 찬양단, 그리고 목회자와 성도들은 부르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조심스럽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 거룩이 훼손된 종교인들만 교회 안에 넘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3)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 13:29)
앞서 두 곡(You raise me up, Nella Fantasia)은 사실 CCM도 아니다. CCM이란 비신자들이 찬양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현대적인 음악에 기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찬양으로 세상에 선교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CCM은 성도들을 위한 찬양이 아닌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송과 CCM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두 곡은 사실 복음송도 아니며 CCM도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교회 안에서 불리면 안 되는 뉴에이지 음악일 뿐이다.
이것에 대해 많은 문제제기와 우려의 섞인 목소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 안에서 불리고 있으면 교회 안에 십자가를 통과한 거듭난 자들보다는 여전히 자기 연민, 자기 애, 자기 사랑에 충만한 종교인이 많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는 가?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노래만이 아니라 서적, 영화, 드라마 등 앞에서 연재하며 계속해서 언급하였듯이, 작품을 창작해낼 때에는 반드시 사람은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과 의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의 배후에는 반드시 영적인 존재, 영적 실체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 스스로 행동하고 말하는 창조적 존재가 결코 아니다. 반드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를 통해 영감으로 모든 작품들을 창작해내며 영적 존재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2)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6)
무분별하며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표면적으로는 잘 인지가 안 되며, 감각적으로 아무 느낌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작품 안에 내재해 있는 영감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지배가 아니면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진리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가수 윤복희 권사의 ‘여러분’의 노래는 윤향기 목사가 죽을병에 걸려 힘들어 하는 동생을 위해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기독교적인 노래다. 이 노래는 결코 찬양팀이나 찬양단에서 부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곡은 불신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요이고, 또 찬양으로 부르기에는 맞지 않는 곡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원작자의 의도에 맞게 불신자들의 입으로 불려서 그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하면 된다.
이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진 찬송가, 찬양, 복음송, 복음성가들을 부르면 되는 것이며 앞으로 만들어지는 찬양도 오직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주의 나라와 뜻을 위해 만들어지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찬양도 교회에서는 구별하여 불러야만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예를 들었지만, 이미 교회 안에는 인본주의적이며 혼합적인 요소들이 들어와 있다. 이것을 배제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룩을 회복해야만 하며, 거룩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 불러야 할 찬양인지,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는 찬양인지 분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찬양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사단을 숭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교단 차원이나 기독연합 단체에서는 사실 관심이 없다. 그리고 본부차원에서도 찬양에 대해 구분지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나 단체들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노래들이 만들어지며 수많은 미혹으로 교회를 음란한 문화로 무너뜨리려는 시대에 교회 스스로가 말씀과 기도로 깨어 성령 안에서 거룩하고자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죄와는 피 흘리기까지 죽도록 주님께만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거룩을 회복시켜주셔서 분별력을 통한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거룩한 찬양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산제사, 산제물이 될 줄 믿는다.
설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