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믿음의 동역자분께
Buenos días
주제성구 마태복음 7장 13절
-물이 나올 때가지 파라 그러면 생수를 먹을 수 있다.
올림픽은 4년마다 전 세계 젊은이들 피땀의 무게를 달아보는 기회이다. 그들의 삶 중 그 4년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수많은 종목이 있고 금메달 또한 수백 개에 이르지만 그 하나를 목에 걸기 위해 얼마나 투지를 불살랐는지 당사자가 아니면 다 표현하기 어렵다. 2008년 베에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장미란 선수가 있다. 그의 종목은 미의 화신인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과 자못 다른 역도이다. 여자가 역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수치이거나 피하고 싶은 종목이다. 장미란의 손은 굳은살이 얼마나 많은지 막노동군의 손은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는 올림픽이 끝나고 한 방송에 출현해 ‘또래 여자들이 화장할 때 난 손에 송진가루를 묻혔고, 친구들이 다이어트 한다고 난리칠 때 야식을 먹고 체중을 불려야 했다.’ 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려 시청자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는 분명 여자들이 걷는 길과 좀 독특한 길을 가 자기의 영역을 개척한 승리자이다. 지금은 ‘장미란 재단’을 만들어 사회를 위해 자신이 받은 은혜를 돌려주고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13)” 영생을 얻는 길 또한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아 내야하는 것이다. 믿음도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 Patuju 교회는 목사의 부덕한 탓으로 성도들이 아직도 오락가락하며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전하는 말씀이 소에게 말씀을 읽어주는 ‘우이독경‘ 격이 되지만 그래도 또 권면의 말씀을 증거하고 인도 할 것이다.
첫째 내가 파는 우물은 주님의 뜻에 맞는가? 사람들은 군자대로행이라고 하면서 많은 이들이 걷는 길을 찾아 함께 가기를 원한다. 나 또한 그 방법이 꼭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는 말처럼 자기의 주관이나 목표, 꿈이 없이 남이 가니 나도 간다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나의 삶을 반추해 볼 때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았다. 물론 지금은 보통사람들이 ‘미쳤어’ 하며 혀를 찰 수도 있는 선택을 하고 외딴 길을 걷고 있다. 행복이나 즐거움을 떠나 내가 꿈 꿔 왔던 길을 가고 싶어 가족들과 떨어져 오지에서 고생을 자초하고 있지만 그 행위가 생명수를 파고픈 거룩한 욕심을 포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순간 후회가 밀려오고 낙담해 ‘왜 이러고 있지?’ 할 때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렘1:5)” 는 말씀이 귀를 때리기에 꾹 참고 복음이라는 우물을 파고 있는 것이다. 아직 물이 보일 기미가 없지만 나의 연로함은 뒤로하고 청년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물론 주님께 수도 업는 질문을 쏟아 내지만 묵묵부답이시다.
둘째 주님의 승낙을 받았다면 생명수가 나올 때까지 파야 한다. 여호와는 쉼 없이 엉뚱한 길로 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다.” 고 탄식을 하시며 아파하셨다. 우리가 계획을 하고 일을 추진하면 주님은 터를 닦고 상황을 연출하고 도우미를 섭외하는 등 연출자로 우리가 계획한 일을 성공케 해 주기 위해 무척이나 분주하시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릴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다. (사40:10)” Patuju 교회에 Miguel 이라는 50대 가장이 있다. 그 부인은 엄마회장이고 아들은 청년 리더로 교회의 상일꾼이다. 그런데 그 가장은 한 서너 번 교회에 출석해 목사에게 아양을 떨다 또 사라진다. 안 보이는 때에는 술을 먹고 패악을 부리고 교회 가는 부인을 핍박한다. 성도들 중에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자인데 행동은 개망나니이기에 참으로 불쌍하다. 그의 우물은 한 삽을 파고는 또 다른 곳을 찾아 헤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매일 아침 기도를 시작하면 그 가정을 위해 가장 먼저 기도가 나온다. 그를 바라보는 예수님 마음은 얼마나 불편하실까? 생각하면 그가 빨리 자기의 우물을 진득하게 파가기를 바란다.
지난 토요일은 무척 더웠다. 10월 22일 Patuju 교회를 찾아올 손님맞이 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땀이 쏟아지는지 셔츠는 마치 소낙비를 맞은 참새 같이 젖어버렸다. 샤워도 못하고 교회 사무실에서 잠을 청했는데 주님은 주일 새벽 3시에 깨우신다. 성전 문을 활짝 열고 찬양을 크게 틀고 무릎을 꿇었다. 기도하는 내내 시원한 바람이 마사지를 자청해 몸이 상쾌해지며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나는 지금 우물을 제대로 파고 있는가? 질문을 던졌다. 과연 생명수가 가득 지나는 수맥을 만날 수 있을는지 아니면 헛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묵상이 깊어졌다. 청년이라면 다시 팔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 시간 여유가 없다는 생각에 조금은 인내를 분실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숨을 쉴라치면 주님은 따스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내가 있지 않니 우물을 못 파면 어때?’ 위로를 건네주신다. 그렇다 물이 나올 때까지 끝장을 보아야 하지만 설령 시간이 부족해 다 파지 못한다 해도 낙망할 것은 없다. 그런 자를 위해 예수님 당신이 생명수가 되어 주시기 때문에 주님만 꾸준히 바라보아도 된다. 그러나 복음을 위한 우물은 계속 진행형이어야 한다. 할렐루야^^ 성경읽기 10월 14일 역대상 1 - 8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