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친이라고 여겨지는 저 늙은 노인 다이달루스의,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 발명품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밀랍의 날개. 저 노인의 말마따나 우리를 구원할 천사의 날개 일지도 모르는 저 발명품을, 나는 지금 씁쓸한 표정을 만면에 띄운 채 말 없이 지켜보고만 있다.
저 노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으면서 깃털을 서로 붙여대고 있다.
역겹다. 그 말 밖에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다이달루스. 이 세상은 나의 부친 행세를 하고 있는-어쩌면 친부일지도 모르지만 난 부정한다- 저 노인을 가리켜, 천재 발명가 혹은 명장 이라고들 한다. 확실히 뭘 모르는 내가 봐도 대단하기는 하다. 우리가 몇일째 갇혀있는 이 크레테의 미궁을 설계한 인물이 바로 저 늙은이라니. 그걸 처음 저 노인이 밝혔을땐, 나도 적지 않게 놀랐다. 하지만,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더러운 뒷 이야기는, 저 노인을 증오하고 있는 나의 증오심을 한층 더 거대화 시켰다.
이 지옥 같은 크레테라는 빌어먹을 나라에 나라에 오게되었을때 부터, 아니, 그 전에 다이달루스가 예술적 재능이 충만한 나의 사촌 페르딕스를 살해하고나서부터 그 더러운 이야기들은 시작을 한다.
다이달루스가 페르딕스를 살해하고, 우리는 쫒기며 이곳 크레테로 왔다. 내가 예전에 이곳으로 온 까닭을 조심스레 물었을때, 그는 경쾌하게 웃으며 지껄였다. 자신의 예술을 마음 껏 선보일 수 있는 이곳을 예전부터 동경해 왔다고.
어린 마음에, 나는 그걸 곧이 곧대로 믿었다.
소문은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이곳 크레테의 군주 미노스라는 자에게 전해졌고, 당장에 나와 다이달루스 노인은 거처를 왕궁으로 바꿔야했다. 처음에는 순수함에, 나의 보호자 격인 다이달루스의 비위를 맞추면서 착하게 살아왔지만, 나의 순수함도 이 빌어먹을 미궁의 건설로 무너져내렸고, 지금은 겉만 순수하고 바보같은 내가 되어버렸다. 다이달루스, 저자의 검디 검은 마음 뒷편을 아는 나는, 나의 천재성이 발각되면 언제 어느때 내 사촌 페르딕스와 같은 죽음을 맞이 할지 모르기에 나는 지금까지 ‘바보 연기’를 하며 지내왔다. 번거롭지만, 그 덕에 내가 살아 숨쉬고 있는 지도 모르니, 나는 다이달루스의 곁에선 평생 바보가 되어야만 했다.
내 빈약한 몸, 그리고 튼튼치 못한 다리는, 오렛동안 조각상을 다뤄온 팔힘의 다이달루스에게 반항할 마음을 가꾸어 내지 못하였다.
난, 다이달루스도 증오했지만, 이런 나도 싫었다.
파시이프 왕비가 황소랑 간통을 하는걸 추진한 다이달루스는, 그 둘 사이에서 생을 맞이한 괴물 미노타우르 를 감금할 미궁을 미노스 왕에게 만들어 주고, 또한 미노타우르를 죽이게 될 실타레를 공주에게 건네주는 등, 여러사람들의 비위를 번갈아 가며 맞춰 주다가, 결국은 미노스 왕을 배신한 혐의로 나와 함께 이 미궁에 갇힌 것이다. 저 노인이 설계한 이 미궁은, 굶어 죽거나, 돌아다니고 있는 미노타우르 에게 잡혀 죽거나의 두가지의 법칙만이 성립 되는 것이었다.
배신의 내용이 뭔지는 알지 못하고, 또 궁굼하지도 않다. 다이달루스라는 인간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전부 더러운 것이라고, 나는 이미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고정관념이란 것을 싫어하는 듯 하지만, 결코 다이달루스에게 다른 면이 있다고는 그 누구도 –그를 아는 사람에 한해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기꾼 노릇을 하다가 붙잡혀 감금 되기 전, 그는 한뭉치의 밀랍과 새의 깃털을 가지고 들어와 지금 껏 계속 그걸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목숨을 구해주는 저 사람의 행위일지도 모르는데, 난 왜 저 다이달루스의 행동 하나 하나에 역겨움이 묻어남을 감추지 못하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의 분노가 극에 달할 지경에, 자신의 깃털을 다 완성시킨 듯 한 다이달루스는 벌떡 일어나며 껄껄 웃어댔다. 자신이 만들어 낸 두 쌍의 날개들을 이리 저리 둘러 보던 그는, 이내 그 삐적 마른 몸을 돌려 나에게로 다가왔다.
[흐흐흐.. 그걸 입어라 얘야. 다행이도 미노타우르가 이곳을 찾기 전에 완성을 시켰구나.]
칩칩하고 끈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다이달루스의 시선에, 나는 울컥 했지만, 지금까지 버텨온 연기력으로 고개를 바보같이 끄덕거리며 그가 건네주는 한쌍의 날개를 내 팔에 붙였다.
하늘로 가는 것인가.
난 고개를 들어 텅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뜨거울 정도로 맑은 날, 구름 한점 없는 저 창공. 저 곳을 내가 헤엄치게 된다 이말인가? 난 잠시동안, 아주 잠시동안 상상에 빠졌다. 언제나 보아오던 독수리나 매 처럼 내가 두 팔을 벌려 하늘을 날게 된다는 사실이, 나를 전율 시켰다. 하늘이라면, 저 푸른 세상이라면 나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해 줄까?
끝없이 펼쳐진 저 하늘은,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이곳의 미궁 까지 온 이상, 나에게 더이상 삶의 미련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미노타우르 에게 잡혀 죽었으면. 저 더러운 인간의 곁을 떠날수 만 있다면.
그래서, 저 사람이 나의 생명을 구할 발명을 할 때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날개가 완성된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좀 전의 것과 약간 달랐다. 저 하늘 이라면 나의 모든 것을 받아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한줄기의 희망. 나의 압박감 느끼는 생활을 청산해 줄 구원의 빛이 바로 나의 머리 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의식할때, 나의 가슴엔 뜨거운 정열의 불길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하늘로 가는거다.
난 비상하는 독수리 마냥 서서히 날개짓을 하며 솟아 올랐다. 의외로 간단했다. 나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걸 느끼는 순간, 나의 머릿속엔 알수 없는 기분이 흥분이 마구 생성되었다.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두 눈에선 투명하고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저어 눈물을 털었을때엔, 난 이미 하늘에 솟아 있었다.
이 기분이다. 영원히 하늘에서 살고 싶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놈 이카루스. 신이 난 모양이구나. 대신 주의해야 할것이 있다. 너무 낮게도, 높게도 날지 말거라. 낮게 날면 몸이 무거워져 추락할 것이고,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에 가까워져 날개를 지탱하고 있는 밀랍이 녹고 말 것이다. 명심하고, 나를 따라 오거라.]
어느새 내 옆에 날아 오른 다이달로스가 징그럽게 키득 웃으며 지껄였다. 더이상 그에게 볼일이란 남아있지 아니했다. 난 들은척 만척 날개를 저으며 날아 올랐다.
사람이 날개를 달았다고 새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새에 한껏 가까워 질수는 있다는걸 난 지금 몸소 체험하고 있다. 날개를 저으면 나의 몸은 가볍게 상승했고, 하강했다. 알수 없는 행복함이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 하늘 인 것인가.
나는 문득 예전에 왕궁의 고서에서 발견한 신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최고의 신 제우스를 비롯하여 태양의 신 아폴로, 전쟁의 여신 아테네 등. 그들의 흥미진진하고 색다른 이야기에, 나는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계속 낡은 고서를 한장 한장 넘겨갔다. 멍청하고 약한 인간들의 이야기에 비해 그들, 신들의 거룩한 이야기는, 점점 이 세상에 신물이 나고 있는 나의 관심을 십분 주목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낡은 고서를 읽으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들을 떠올리며 나도 언젠가 하늘을 날아 보았으면 하던 어린 마음이, 지금에서야 실현 되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지금 기분은 그냥 단순히 좋은 정도를 넘어서, 세상의 어떠한 쾌락조차 비교될수 없을 정도로 붕 떠 있었다. 증오의 대상인 다이달루스 늙은이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 하고 말이다. 아마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가 아니었을까.
하늘을 날며, 저 아래로 보이는 미노스 왕국을 내려다 보았다. 평소와 다름 없이, 사람들은 제각각 일을 하고 있었고,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언뜻 보면 선해 보이는 자들도 다이달루스와 다름 없이 더러운 내면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난 그걸 많은 경험으로 느꼈다. 우습게도 난, 인간의 일생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어떻게 하면 모친으로 부터 생을 선물받았을때 지니고 있던 그 흰 솜 마냥 순결한 이노센스를 완전히 검게 물들일 수가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어째서 아직까지 순수함을 버리지 않은 인간들이 그들의 사이에서 고통스러워 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정말로 멍청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해가 안되기에.
모든 인간들의 인생의 굴레는 시대가 아무리 지난다고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후로 몇 천, 아니 몇 만년이 흐른다고 하여도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계는, 모든 악한 마음이 뿌리가 뽑히기 전까지는 바뀌지 않을것이다. 슬프게도.
아마 신이란 것이 진짜로 존재 한다면, 그들이 보고 있는 대륙 인간들의 인생은 아마 더러운 마귀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느낄것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위를 보면, 그곳엔 하늘- 천국이 있는 것이다.
땅과 하늘의 만나는 점은 우리의 인간들이 더럽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높이를 넘어선 진정한 ‘하늘’ 에게 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기분이 이렇게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더러운 인간들의 손때가 묻을래야 묻을 수가 없는 허공. 그곳에서 내가 헤엄치는 것이다.
고개를 살며시 돌려 다이달루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보다 조금 낮게 날고 있었지만, 그런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지, 그의 입도 함지박 만하게 벌어져 있었다. 아마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 것에서 나오는 미소일 것이다. 역겹다.
저런 악한 인간에게도 진정한 행복이나 기쁨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닐것 같았고, 또 아니길 바랬다. 저런 더러운 인간이, 내가 맛보는 행복과 기쁨을 같이 맛본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였고, 견딜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방금 나의 생각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나도 이제 배타적인 악함으로 젖어드는 것인가?
이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선(善)이, 악(惡)을 악하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한다면 선도 그 배타적인 모습에 악으로 물들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정한 선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인가.
갑자기 미친듯이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내가 철저하게 선이라고 믿어왔지만, 나도 어느새 남을 미워하는 악한 마음에 취해 있던 것이었다. 단지 허울 좋은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나는 선이다. 나는 선이기 때문에 악을 증오한다.’ 라는 주문을 외워 댔던 것이었다.
나도 악한마음에 빠져있던 것인가. 아니, 아마 오래전부터 빠져있었지만 헤어나오기는 커녕 내가 악한 마음에 사로잡혔다는 사실 조차 망각한채 나는 선이다 라는 주문만 외워 댔던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바보로 안다. 난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사실 일지도 모른다.
아까 멎었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나의 얼굴은 온통 일그러져 있었고, 이빨로 꼬옥 물고 있는 나의 입술 아래론, 붉은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난 너무 어리석었다. 내 자신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지금껏 내가 옳다고 판단한 것이 반전되어 버렸다. 나도 내가 옳지 못하다고 판단하던 길로 무작정 달려 가고 있던 것이다.
[이카루스, 어디가 아프냐?]
옆에서 들려오는 다이달로스의 음성에, 나는 눈을 깜빡 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아무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를 대하는 나의 모습도, 바보의 그것과는 차이가 들어났다. 이제 더이상 바보 처럼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난 이대로 다이달루스를 피해 다른 곳으로 날아가서 살수도 있었다. 아니, 불과 몇분 전 만 해도 나는 그걸 실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무의미 해졌다.
어딜 가도, 나의 마음은, 이 악으로 물들여져 가는 이 마음은 정화 할수가 없다는걸 깨닭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만일 그런곳이 있다면 단 한군데일것이다.
하늘.
내가 죽어서라도 하늘에 이를수 있다면, 나는 백번을 죽을수도 있다. 저 태앙에, 밀랍이 녹고 온몸이 녹아도, 선함만이 가득한 하늘에 이를 수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나는 서서히 고도를 높여갔다. 나의 날개짓에는 힘이 더 들어갔고, 나는 이제 거의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입가에는 나조차도 알수 없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하늘로 가는 것인가.
하늘로 가는 것이다.
[이, 이카루스 이놈! 뭐하는 거냐! 어서 내려오지 못해?!]
다이달루스가 소리치는것이 들렸지만, 내 귀에는 그 내용이 들어올리 만무했다. 나는 그냥 아무말 없이 웃으며 고도를 높여 갔다.
몸이 점점 뜨거워 졌다. 태양이 가까워 왔다. 하늘이 가까워 왔다.
이제 악(惡) 나를 떠난다.
서서히 밀납이 녹기 시작했다. 나를 지탱하고 있던 깃털들도 하나하나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난, 웃으며 계속 상승했다. 결국엔, 나를 지탱하던 깃털들은 밀납의 녹음과 함께 전부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