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경쟁으로 막 오른 ‘전기차 시즌2’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Y’. 테슬라코리아 제공
여러 해에 걸쳐 폭발적으로 성장해 온 전기차 시장에서 올해 최대 화두는 결국 ‘가격 경쟁’이 될 모양이다. 각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는 가운데 주요 전기차 브랜드의 가격 인하가 잇따르고 있다.
시작은 테슬라였다. 올해 초부터 미국과 중국, 유럽을 포함하는 주요 시장에서 주력 제품인 ‘모델3’와 ‘모델Y’ 등의 가격을 여러 번 인하했다. 인하 폭도 매번 수백만 원씩으로 상당히 컸다.
선도기업이 가격을 내리며 시장을 지키려 할 때 후발주자에게는 뾰족한 선택지가 없다. 중국 전기차를 대표하는 비야디(BYD)와 독일 폭스바겐 등이 전기차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했고, 현대차와 기아도 국내외에서 할인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테슬라의 대항마로까지 꼽히던 미국 전기차 기업 루시드도 얼마 전 차량 가격을 최대 11% 내렸다.
장애물 없이 성장할 것 같던 전기차 시장에서 별안간 펼쳐진 가격 경쟁은 전기차가 완성차 시장의 주류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2020년 222만 대 수준이던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2021년 471만 대로 껑충 뛰었고 지난해 802만 대 규모까지 성장했다. 지난해 글로벌 완성차 판매는 약 8000만 대. 전체 완성차 시장의 10%를 돌파하면서 머지않아 내연기관차를 누르고 주류로 올라설 것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값비싼 소재로 만들어지는 배터리 때문에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의 가격 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전기차 시장의 ‘얼리 어답터’들은 더 비싼 가격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새로운 수요자로 끌어들여야 할 고객들은 “같은 값으로 훨씬 더 크고 고급스러운 차를 살 수 있는데 왜 굳이 전기차를 사야 하느냐”고 되묻고 있다.
대다수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다른 모델로 생산되는 가운데 국산차 중에는 제네시스가 동일한 모델의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함께 판매 중이다. 이들 모델에서 비슷한 사양을 선택했을 때 전기차의 가격은 내연기관차보다 1500만∼2000만 원가량 더 비싸다. 보조금을 받아도 20% 이상 더 비싼 제품이 ‘초기 시장’을 넘어 ‘주류 시장’에 안착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의 가격 경쟁은 전기차 확산이라는 달리는 말에 일단 올라타면서 전기차 모델과 판매량을 늘리는 데 집중했던 ‘전기차 시즌1’이 저물고 있다는 뚜렷한 신호다. 그리고 폭발적인 성장세가 한풀 꺾이는 이 시점에 전기차 산업은 ‘시즌2’로 접어들고 있다.
가격을 낮추며 전기차 시장의 후발주자들을 누르려는 테슬라와, 내연기관차 판매 수익으로 전기차 가격 경쟁력을 갖추려는 기존 완성차 브랜드가 격돌하는 가운데 자국 기업의 전기차 경쟁력을 평가해 보급 정책을 다시 짜야 하는 각국의 계산까지 맞물린 상황. 이런 시즌2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어느 기업과 국가가 전기차 대전에서 승리하고 패배했는지도 윤곽이 드러날 듯하다.
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