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 모꼬지
내게 이번 “시와 늪 제32집 출판회 및 하계문학의 밤” 행사의 백미이자 압권은 사명대사 유적지(경남도지정 기념물 제116호)에서 생가지(生家址 : 밀양시 무안면 사명대사생가로 642)와 기념관을 살펴봤던 즐거움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밀양을 찾았건만 이곳과는 연이 닿지 않아 늘 아쉽고 서운했었다. 지난 일요일(7월 4일) 장맛비를 뚫고 달려가 알현해 간절한 소원을 이룬 셈이다. 그 외에도 영산정사를 비롯해서 표충비와 만남은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원체 풍수지리에 청맹과니 주제인데다가 비가 오락가락하고 안개가 자욱해 산세나 지형을 제대로 살필 수 없어 섣불리 단언키 어렵다. 하지만 좌우로 길게 발달한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한 생가 터는 엄마가 양팔을 벌려 가슴에 아이를 품는 형국 같아 포근하고 안온하며 상서로움이 충만한 지기가 꿈틀대는 형국으로 여겨졌다.
복원된 대문에 위에 걸려있는 송운대사구택(松雲大師舊宅)이라는 현판을 보는 순간 반가운 마음에 주인장의 허락도 받지 않고 대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급히 집안으로 들어서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으며 대사의 얼과 혼과 마주하고 싶었지만 미욱한 때문인지 겉돌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마도 필부(匹夫)의 처지에 까마득하게 높고 큰 대사의 정신을 탐하려는 비례를 범했음에도 벌을 내리지 않고 넉넉하게 품어주었던 것만으로도 축복일러라.
대사의 기념관은 외형적으로 찾는 이를 압도할 정도로 위용이 넘쳐났다. 하지만 입구에 충의문(忠義門)이라는 현판이 붙은 곳에서부터 전시관 건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시멘트 구조물로 건축되어 있었다. 게다가 길바닥 대리석 위까지 곳곳에 지하수가 솟아나와 질척였다. 지하수 처리를 위한 암거(暗渠)나 도랑 따위의 시설을 하지 않은 것은 날림공사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렇게 폄하 하면서도 큰 스님의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기념관에 모심으로써 멸실(滅失)의 위험을 벗어나도록 만든 갸륵한 마음에는 깊이 감사하고 싶었다.
사명대사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이어진 곳이 영산정사(靈山精舍 : 밀양시 무안면 가례로 233))이다. 이 사찰은 대웅전과 2기(基)의 9층 석탑, 범종, 요사채, 관세음보살상, 성보박물관, 절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불사중인 와불(臥佛) 등이다. 특이한 것은 이 절의 범종은 크기 면에서 세계최대라고 하는데 연이 닿아 우리 일행은 타종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여덟 번에 걸쳐서 타종을 해보며 맥노리(울림) 현상을 바로 옆에서 느껴봤다. 또한 현재 불사중인 와불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중국풍의 9층 기와집 형태의 성보박물관이 있다. 이 건물 안에는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부처님 진신사리 100만과와 외국 팔만대장경 원전(原典)인 10만 패엽경(貝葉經)과 2천여 점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 불상(佛像)이 전시 되어있다. 이 건물에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4층(경전관)에서 경전을 구경하고, 3층(사리관)으로 내려와 사리를 살펴본 뒤에, 2층(불상관)에서 불상을 구경하고, 1층으로 내려와 수많은 국사(國師)들의 초상을 감상하다 보면 얼추 1시간은 족히 소요되지 싶었다.
영상정사를 거쳐 이전에도 몇 번 찾았었던 홍제사(弘齊寺) 경내에 있는 표충비(表忠碑 : 밀양시 무안면 동부동안길 4)를 찾았다. 이 홍제사는 1742 년 영조 때 사명대사의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된 수호사찰이다. 우선 표충비 앞에는 무안리 향나무(지방기념물 제119호)가 있다. 이 나무는 나무 높이 1.5미터, 가슴높이 둘레 1.1미터이며 수관(樹冠)은 녹색의 큰 나무 양산을 펼쳐 놓은 형상이다. 그런데 이 나무는 1738년 사명대사의 5대 법손(法孫)인 태허당 남붕선사(泰虛堂 南鵬禪師)가 표충비를 이곳에 세우고 기념으로 식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표충비는 연조 18년에 사명대사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송운의 5대 법손인 태허당 남붕(泰虛堂 南鵬)이 건립했다. 전면(前面)에는 송운대사의 행적, 후면(後面)에는 스승이신 청허당 서산대사(淸虛堂 西山大師)의 공덕과 기허대사(騎虛大師)의 사적, 측면(側面)에는 표충사 사적기(表忠寺 事蹟記)를 새겼다. 이 비가 유명한 것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를 전후하여 비석에 구슬땀이 흐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록에 따르면 1894년 11월 19일 동학운동 직전에 흘린 땀을 시작으로 입때까지 서른 차례를 훌쩍 넘길 정도로 여러 번 땀을 흘렸다고 한다. 이를 두고 민간에서는 아직도 사명대사의 우국충정 영혼이 전해져 그렇다고 믿어 신성시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속에서 표충비와 야트막한 담장으로 구분된 홍제사로 발길을 옮겼다. 자그마한 절의 전면에 적당하게 간격을 유지하여 큰 글자로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세로로 써 붙여 놓은 게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이는 모든 보살들의 공통적인 서원(맹세)이라는 의미에서 총원(總願)이라고도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불하여 중생을 구하겠다는 다짐으로 성불제중(成佛濟衆)을 뜻한다.
홍제사 대웅전을 향해 다가 갈 때 맨 왼쪽에부터 오른쪽으로 가면서 다음 내용을 세로로 쓴 글자가 차례로 붙어있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 중생이 가없이 많지만 기어이 모두 구제하겠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 번뇌가 끝이 없지만 기어이 끊겠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 광대무변한 불타의 가르침을 모두 배우겠다)
불도부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 가장 존귀한 불도를 닦아 성불하겠다)
오래 전 계획된 일정이라서 장마와 겹쳐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장대같이 쏟아지는 장맛비속을 뚫고 오가야 했던 노정은 되레 더욱 정겨웠다. 지난 토요일(7월 3일) 창녕의 부곡온천 한성호텔에서 공식적인 행사가 열렸고, 이튿날인 일요일엔 밀양의 무안면에 자리한 사명대사 유적지, 영산정사, 표충비를 둘러보는 기행이 이어졌다.
첫날 공식행사 제1부에서는 간단한 특강에 이어 식전행사로 가야금 연주와 하모니카 연주로 분위기를 한껏 띄운 뒤에 본 행사가 시작되었다. 국민의례 따위의 의례적인 과정을 거쳐 50명이 넘는 참석자를 하나하나 소개했다. 몇 몇의 축사와 축시 축하 케이크 절단에 이어 5명의 회원에 대한 시상하는 막을 내렸다.
이어서 회원인 “김영락 시인”의 첫 시집 “사랑하라 하시네”의 출판 기념식이 펼쳐졌다. 기타 연주, 축사, 기념패 전달, 동료 시인들의 김영락 시인 시집의 시 낭독, 색스폰 연주, 감사의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 자리엔 김영락 시인의 부군을 비롯하여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모임의 회원 10여명이 함께해 축하해 주는 모습이 무척 훈훈했다.
저녁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다가 호텔연회장으로 돌아와 밤 11시 무렵까지 여흥의 자리를 가졌다. 다른 일정 때문에 당일 귀가해야 하는 경우는 저녁식사 뒤에 귀가를 하기도 했다. 나머지 회원들은 모두 여흥의 자리가 파할 때까지 참석했다. 여흥의 자리가 끝나고 대부분이 귀가하였고 숙박을 하는 경우는 여남은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3대의 승용차에 분승하여 지척에 이웃한 밀양으로 향했다. 장맛비가 소나기처럼 퍼붓다가 잦아들기를 되풀이하는 날씨라서 산허리까지 내려앉은 구름과 안개가 기행의 운치를 더해 각별한 감흥을 자아냈다. 예정된 기행을 마치고 다시 부곡으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한 뒤에 공식 일정을 마쳤다. 오전에 비해 거세진 빗줄기를 가르며 마산을 향한 국도(國道) 주행은 자욱한 안개와 낮게 드리워져 비를 내려주는 하늘이 하나로 어울려 신비한 비경의 복판을 뚫고 내eke는 기분이었다. 내서에 이르기까지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 졌다. 내서를 지나 쌀재 터널을 빠져나와 예곡동 언저리에 이르렀을 때는 비가 거의 개어 있어 딴 세상에 이른 듯 했다.
여느 모꼬지가 그렇듯이 이번에도 예외 없이 공식적인 무대를 통한 얻음보다 무대 밖이나 아래에서 개인적인 대화나 교류가 더 쏠쏠했던 게 아닐까 싶다. 불과 쉰 남짓한 회원이지만 모두의 삶이 다르고 성격이 판이하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에 이끌려 파주와 서울과 의정부, 청주와 구미 그리고 대구를 비롯해 영남 일원에서 장맛비에도 불구하고 함께했던 열정적인 자리였다. 모두들 좋은 추억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가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며 덕담을 주고받던 순간의 하나하나 모습을 되새기며 회상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희죽이고 있는 내가 비정상은 아닐지어다.
2016년 7월 5일 화요일
첫댓글 교수님 꼼꼼하게 잘
관찰 하시고 쓰신
기행 후기글 고맙습니다
언제나 건강 하세요
교수님께서 세심한 설명을 해주셔서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부를 하고 갑니다.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셨으니 저도 무척 행복합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교수님께서 세심한 관찰과 섬세하게 전달하신글을 읽고 새기며 많은 것을 얻어 갑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교수님 세심하게
설명해 주섰어 감사합니다
행복이가득한 7월 되세요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저희들이 모르는거 있어면
다 가르켜 주시고 같이 기행다니면
많이 배웁니다
그리고 모꼬지란 말은 언제 들어도 정겨워요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