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으로 지는 해를 기억하라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누구나 편안하고 깨어있는 삶을 누리고자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 속에서 부딪히는 갖가지 사건들이 나를 편안하게 내 버려두지 않고
행복하게 살도록 놓아두지 않기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우리는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그 까닭은 업(業) 때문이다.
나 자신이 몸(身)과 말(口)과 생각(意)으로 알게 모르게 지은
좋지 않은 업이 나를 얽어매어 부자유스럽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짓는 나쁜 업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모두가 자기애(自己愛) 때문에 생겨난다.
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에게 맞으면 탐심을 내고, 나에게 맞지 않으면 성을 내며,
나에게 너무 집착하다 보니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삿된 생각을 일으킨다.
나아가 수만 가지 번뇌와 나쁜 말, 심지어는 나쁜 행동까지 거침없이 저지르게 되고 만다.
결국 갖가지 번뇌에 휘말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라며
짜증 내고 괴로워하면서 살게 되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번뇌와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비록 나로 말미암아 생겨난 번뇌요 고통이지만,
번뇌와 고통 속에서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벗어나래야 벗어날 수 없으므로 마지못해 그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누구라도 좋다.
누구든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인생이 어떠한 것인가를 솔직히 되돌아보는 것이 좋다.
인생! 우리의 삶이란 어떠한 것인가? 인생은 꿈속에서 사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대부분 중생은 스스로가 만든 번뇌라는 이름의 꿈을 벗어나지 못하여
세세생생(世世生生) 선악의 인과에 휘말리고 생사의 세계를 윤회하고 있다.
나서는 늙고, 늙어서는 병들고, 필경(畢竟)에는 죽고 거듭 태어나 또다시 죽는 무상한 존재이다.
번뇌의 꿈속에서 한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깨어날 줄 모르는 허망한 존재가 중생이다.
하지만 꿈이라고 하여 실망할 일은 아니다.
바로 꿈이라는 이 단어 속에 행복과 평화로운 삶의 비결이 간직되어 있다.
꿈과 같이 무상하고 허망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 때
새롭게 눈을 떠 꿈을 깬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헤아리니 한바탕 꿈이로다.
좋은 일 궂은일이 한바탕 꿈이로다.
꿈속에 꿈을 헤니 이 아니 가소로운가.
어즈버(아!) 인생 일장춘몽을 언제 깨려 하는가.
과연 우리는 이 옛시조처럼 인생을 한바탕 꿈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뿐 아니라, 꿈속이라도 좋으니, 부귀영화를 누리고 마음대로 살아보았으면 할 것이다.
☞ 옛날 중국의 당나라에 노생(盧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큰 부자 되는 것이 원이요, 출세하여 이름을 날리는 것이 원이요,
예쁜 아내를 얻어 아들딸 낳고 영화롭게 사는 것이 원이었다.
어느 날 노생은 한단(邯鄲) 지방으로 가다가,
신선도를 닦는 여옹(呂翁)을 만나 자기의 소원을 하소연하였다.
묵묵히 듣고 있던 그 할아버지는 바랑 속에서 목침(木枕)을 꺼내주면서 쉬기를 권하였다.
고단할 테니 이 목침을 베고 잠간 눈을 붙이게. 나는 밥을 준비할 테니,
목침을 베고 누운 노생은 금방 잠이 들었고, 그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새롭게 전개되었다.
그의 소원 그대로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얻고 절세 미모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딸을 낳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것도 무려 80년의 세월이나……
그런데 누군가 밥 먹게 하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떠보니 모두가 한바탕의 꿈이었다.
80년 동안의 부귀영화가 잠깐 밥 짓는 사이에 꾸었던 꿈이었다.
☞ 미국 보스턴 주의 뉴포트에 가면
어업에 종사했던 부자가 지었다는 어마어마한 집이 있다.
그는 8년 동안 세계 각처를 다니며 최고급 대리석을 비롯한 좋은 건축자재를 모았고,
10년 동안 온갖 심혈을 기울여 초대형 호화별장을 완성 시켰다.
그 뒤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호화별장에서 살았을까? 불과 8개월 만에 죽고 말았다.
더욱이 그는 뒤를 이을 사람이 없는 독신자였기 때문에,
죽기가 바쁘게 그 호화별장은 보스턴 주 정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주 정부도 그 집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
관광객들에게 집을 공개하여 관광 수입으로 충당하기로 하였다.
관광객들은 이 화려한 집을 구경하면서 “와- ” 하고 감탄하지만,
사연을 알고 그 집을 나올 때는 하나같이 말한다.
2m도 되지 않는 몸뚱이를 겨우 8개월 동안 간직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집을 짓다니…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이 두 편의 이야기처럼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한평생을 꿈속에 갇혀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꿈처럼 허망한 일에 자신을 내맡기며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마침내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거늘,
자기에 대한 사랑과 헛된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허망한 꿈을 꾸며 살아 서야 하겠는가?
좀 더 잘살아 보겠다고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지 말고,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하고,
스스로 삶이 꿈속의 삶이 아닌지를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 일타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