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조천읍 함덕리 1266-11번지. 함덕리사무소 동쪽
시대 ; 일제강점기(1926)
유형 ; 기념비
규격 ; 높이 73㎝, 폭 上32.9, 下30.3㎝ 두께 上14.3, 下13㎝. 윗면은 부채꼴 모양으로 다듬었으며 방부는 따로 만들지 않았고 다른 비석들과 같이 전체적으로 대리석 기단 위에 설치되었다.
비문 내용
從二品黃萬平紀念碑(종2품 황만평을 기념하는 비석)
捐出土地 成立校宮 進學有年 永世慕風(땅을 내놓아 학교를 성립하여 여러 해 동안 진학하게 되었으니 경모하는 바람이 영원하리라.)
大正十五年 春 咸德里 立(대정15년 봄에 함덕리 세움)
※황만평(1856∼1905)은 1891년에 명월만호를 역임하였으며 아들 祐眞, 손자 元休 등이 있고, 선생의 증손 태호(1937년생)가 함덕리 1290번지(함덕14길14호)에 살고 있다.
※종2품은 조선시대 관직의 품계이다. 조선시대 관직 품계는 정1∼9품과 종1∼9품이 있었는데 가정대부·가선대부가 종2품에 속한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조선시대 품계를 쓴 까닭은 알 수 없다.
※大正(다이쇼)은 1912년 7월 30일부터 1926년 12월 25일까지의 일본 연호이다.
※일제강점기 신학문이 도입되면서 함덕리에서 의도적인 교육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향사에서 운영하던 개량사숙(改良私塾) 함덕서당(咸德書堂)이다. 이 개량사숙 함덕서당은 현 함덕초등학교의 전신이다. 이어서 1924년 황만평(黃萬平)씨가 805평의 학교 부지(함덕리 1279-2번지=조천읍 신북로 524-1 현 덕림사 부지)를 희사하고 마을에서 건물을 건립하여 조천공립보통학교(朝天公立普通學校) 부설(附設) 함덕송조학교를 운영하였다. 함덕초등학교60년사에 의하면 송조학교는 공식적인 기록이나 역사적 근거를 찾지 못하여 지역 원로들의 증언에 의한 것이므로 정식 설립인가를 받지 못한 사설학원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함덕송조학교는 정규학교가 아니어서 조천공립보통학교로 시험을 보아편입 진학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1937년 당시 조천면장 한보권(韓保權)씨는 함덕리 1004번지의 땅 3,400평을 학교 부지로 희사하고 주민들을 설득하여 앞장서서 학교 설립을 추진한 결과 1937년 7월 4일에 4년제 함덕공립보통학교(咸德公立普通學校) 설치 인가를 받고 함덕서당을 인수하여 같은 해 9월 1일 1학급 40명으로 개교하였다.
황만평의 증손 황태호씨에 의하며 함덕리 1004번지에 함덕초등학교를 설립할 때에도 선친이 할아버지 명의로 된 땅(면적 미상)을 기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황만평씨는 이미 1905년에 돌아가신 분이므로 아들 祐眞(일명 奭度)씨가 부친의 명의로 기증한 것으로 보인다. 황만평씨가 기증했던 땅은 교육청이 개인에게 불하하였으며 현재 덕림사가 들어서 있다.
※1926년 6월 20일자 동아일보에 〈故黃氏紀念碑〉라는 제목으로 ‘제주도 신좌면 함덕리에서는 이 세상을 떠난 故 황만평씨가 학교부지 기부한 공적을 후세에 전키 위하야 지난 5월6일에 기념비를 건설하였다는데 신촌, 조천 양청년회에서 축사도 있었고 각리 인사들도 다수 내참하였다더라.’라고 하여 이 비석이 세워진 것이 보도되었다.
※이 기념비는 학교 안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함덕초등학교 연혁지에는 학교 안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는 함덕리 1구 비석거리에 있었던 것(함덕리 황태호씨 증언)인데 언제 학교로 이설되었다가 다시 현재의 위치로 이설되었는지는 미상이다.
《작성 170911, 보완 26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