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두 번째 전쟁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이 서로를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군사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병 속에 든 두 마리의 전갈처럼 공격은 자살행위이고 전쟁은 공멸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전쟁을 막아온 억지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전쟁에 가까워져 남북이 제한전쟁(Limited war)을 벌였던 1968년과 비교하면 현재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첫째,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정세관리 능력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 게릴라의 청와대 피습 사건 이후 박정희 정권은 보복 공격을 목표로 했다. 당시 베트남전을 치르던 미국의 린든 존슨 행정부는 한반도에서의 추가 전쟁을 원치 않아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된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을 택했다. 존슨 대통령은 사이러스 밴스 특사를 파견해 박 대통령을 붙잡았다. 미국이 보복 공격을 멈추면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을 철수시키겠다는 박 대통령에게 존슨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를 암시했다.
그런데 지금은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기 위한 미국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나지 않고 중동에서 전화가 확산되면서 한반도는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정전체제 관리 책임이 있는 유엔사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 무인기(드론)는 모두 정전협정 위반이자 유엔사 규정 위반인데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유엔사에는) 조사가 아니라 규정 위반의 재발을 막을 책임이 있다. 유엔군사령관이 1968년 당시 전쟁을 막기 위해 한국이 보복공격을 감행하지 않으려고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둘째, 전통적 우파와 뉴라이트의 차이다. 1968년 당시 주호였던 박정희 대통령은 술자리에서 온갖 지시를 내렸다. 장군들은 술에 취한 대통령의 보복공격 명령을 밤이 새도록 기다려 위기를 넘긴 적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존슨 대통령이 이런 내용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밴스 특사는 한국 장군들이 유엔군 사령관에게 털어놨다고 보고했다. 정일권 총리와 이후락 비서실장이 밴스 특사를 찾아가 박 대통령을 막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때는 술에 취한 대통령을 말리는 관료가 존재했다.
뉴라이트는 전통적 우파와는 다르다. 뉴라이트의 대부분은 과거 전향에 따른 열등감 때문에 극단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다. 전쟁세대의 전통적 우파는 전쟁에 신중하지만 전후세대의 뉴라이트는 언제나 쉽게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외친다. 전통적 우파는 비록 명목에 지나지 않더라도 애국심을 내세웠지만 뉴라이트는 대부분 사익을 추구한다. 뉴라이트는 지나치게 정파적이고 공동체 윤리가 없다. 특히 치명적인 약점은 그 무능이다.
셋째, 북-러 관계의 차이다. 1968년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나포했을 때 미국은 소련과 북한의 공모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소련은 이 사실을 몰랐다. 김일성 주석이 1961년 맺은 북-소 우호조약의 자동개입 조항을 거론했을 때 소련은 조약이 공격이 아닌 방어에 국한된다며 선을 그었다. 소련은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가 국제법 위반이며 북한의 군사모험주의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
이제 북-러 관계는 달라졌다. 냉전시대에 경험하지 못한 결정적 변화다. 북한은 전쟁 중인 러시아에 포탄, 노동력에 이어 용병을 공여하기 시작했다. 북한도 러시아에서 손에 쥘 게 많다. 특히 군사 분야의 협력은 한반도의 군사질서를 변화시킬 것이다. 북-러 관계가 전장의 혈맹이 되면서 한반도는 실질적인 신냉전 국면으로 전환됐다.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진영 대결의 공간으로 변했을 때 우리는 전쟁의 비극을 겪었다.
한반도는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서 있다. 물론 여전히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가 급회전할 때 과거 경험에 근거한 관성적 판단은 틀릴 수 있다. 전쟁을 막은 억지구조의 균열은 과거와는 다른 결정적 변화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차원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선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미국에 상황을 관리해야 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유엔사의 휴전 관리 책임도 적극적으로 촉구해야 한다. 미 대선 전후 혼돈의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평화세력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1968년에는 술에 취한 대통령을 말리는 관료와 장군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부에 그런 사람이 없으니 야당이 중심이 돼 평화를 위한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두 번째 전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