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수목드라마 ‘각시탈’이 요즘 장안의 화제라고 합니다. 지난 16일(목) 22회를 방영했는데요, 듣기로 28회까지 방영 예정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말해 근자에 와서는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만, 초중반부에는 별로 보질 못했습니다. 방영시간이 저녁 9시 55분부터인데요, 그 시간에 제가 귀가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근래부터 이 드라마를 눈여겨보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 드라마에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여’라고 해서 제작진의 일원으로 참여하거나 배우로 출연하는 건 아니구요, 이 드라마의 극본을 쓰고 있는 작가에게 약간의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시대상황이 일제시대다 보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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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수목드라마 '각시탈'에서 주인공 각시탈(주원 분)의 모습 |
지난달 말, 어느 날 오후 낯선 이에게서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신은 ‘각시탈’ 극본을 쓰는 유현미 작가라고 소개하고는 저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모르는 분이었지만 그쪽은 제 블로그(‘보림재’)를 자주 들르는 애독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각시탈’ 내용 속에 백범 김구 선생에 관한 얘기를 꼭 넣고 싶은데 만나서 아이디어를 좀 얻고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만남을 거부할 이유도 없고 또 어쩌면 ‘작은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 싶어 만나기로 하되 한 사람을 더 끼워서 같이 만나자고 제안했습니다. 백범에 관한 얘기라면 진짜 ‘백범 박사’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백범기념관 홍소연 실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홍 실장님에게 전화로 사정 얘기를 하고 동석을 권했더니 흔쾌히 동의해주셔서 마침내 지난달 27일 점심 때 유 작가님과 서로 상면을 하게 됐습니다.
우선 유 작가님은 임시정부 시절 한 번도 귀국한 적이 없는 백범이 비밀리에 조선을 찾는 내용을 포함시키고 싶다면서 그런 구상이 적절한지, 그리고 백범이 입국한다면 어떤 ‘목적’으로 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조언을 부탁했습니다. 1919년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구성되자 백범은 상해로 건너가 임정에 투신한 후 해방 후 환국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입국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 의거 후 배후인물로 지목돼 일제로부터 거액의 현상금이 걸릴 정도로 신변에 위협이 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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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유현미 작가, 홍소연 실장, 보조작가 |
그런데 그런 백범이 대리인이나 수하를 시키지 않고 굳이 본인이 직접 와야 할 정도라면 그건 일황이나 혹은 조선총독과의 단독회담 같은 일밖에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건 현실 속에서도 없었고 또 설사 그런 만남이 이루어진다 해도 주고받을 게 마땅하지 않습니다. (혹 가상해본다면 조선총독이 '우리가 물러갈테니 백범 당신이 조선의 치안과 행정전반을 맡아주시오!' 이런 제안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마치 일제가 항복 후 몽양 여운형에게 치안을 부탁했듯이 말입니다.) 결국 백범이 온다면 1919년 ‘3.1만세의거’ 정도의 전(全)민족 차원의 거사 정도가 아닐까 하는 걸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럴 경우 백범은 중국 등 해외 항일세력의 구심점이 되고 누군가는 국내에서 ‘카운터파트’가 돼 줘야 할 인물이 필요한데 유 작가님은 그를 몽양 여운형 선생으로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이즈음에서 유 작가님은 백범을 두고 ‘양백 선생님’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래서 제가 유 작가님에게 ‘양백’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백범’과 ‘양백’은 두 글자 가운데 하나가 같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추측은 절반은 맞았더군요. ‘양백’은 백범 김구와 백산 안희제 선생의 호에서 각각 ‘백’자를 땄는데 ‘백’이 둘(兩)이어서 ‘양백’으로 지었답니다. 한자로는 ‘兩白’이 되는 셈이지요.
(‘양백 선생’은 지난 수요일(21회분)부터 등장하는데요, 시청자들 가운데서도 알만한 분들은 양백 선생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극중 대사에서 ‘양백 선생’을 두고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사람, 윤봉길·이봉창 등 한인애국단을 조직한 사람, ‘칠가살(七可殺)’을 제정해 친일파 척살 등을 주도하는 사람 등으로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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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 김구 역으로 나오는 '양백 선생' |
한편, 백범은 ‘양백’이라는 별칭(별명)을 붙였는데 그렇다면 몽양 여운형 선생은? 그날 만났을 때까지는 몽양 선생의 별칭은 짓지 못했다며 우리 보고 하나 지어달라는 거였습니다. 갑자기 몽양 선생의 별칭 작명 부탁을 받고 보니 당장은 저도 쉽게 떠오르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몽양 선생이 경기도 양평 출신인 것에 착안해 ‘양평 선생’이 어떻겠느냐고 제가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양평 선생을 일단 후보로 올려놓기로 했으나 양백, 양평 둘 다 ‘양’자가 들어가서 조금 그랬습니다. (참고로, 여운형 선생의 아호 ‘몽양(夢陽)’은 선생의 조부 여규신이 꿈에 ‘태양이 떠오르는 꿈을 꾸고 낳았다’ 하여 선생이 나중에 이를 한자로 표기해 이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날 토론(?)에서는 ‘양백 선생’(김명곤 분)이 입국을 하는 목적이 ‘제2의 3.1만세의거’를 도모하기 위해 몽양 여운형 선생을 만나러 오는 것으로 정하였으며, 그제 21회분에서 양백 선생이 실지로 비밀리에 입국했습니다. 그런데 양백-몽양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시청자들에게 몽양 선생의 등장을 예고하기 위한 ‘사전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일장기 말소사건’입니다. ‘일장기 말소사건’은 흔히 <동아일보>에서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여운형 선생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에서 먼저 결행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들통이 나지 않아 사건 당시에는 그냥 넘어 갔으나 나중에 <동아> 건이 터지면서 뒤늦게 말썽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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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양 여운형 역으로 나오는 '동진 선생' |
그런데 ‘각시탈’에서는 이 내용을 조금 비틀었습니다. 원래 ‘일장기 말소사건’은 베를린올림픽에 마라톤 선수로 참가했던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세계 권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반도 청년’ 얘기로 바뀌었습니다. 또 실지 ‘일장기 말소사건’은 신문사에서 신문 제작 때 손기정 선수가 가슴에 단 일장기를 지운 것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권투시합에서 우승한 반도 청년이 카프레이드 환영행사 도중 시민들이 돌연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자 이에 흥분한 나머지 자신의 가슴에 붙었던 일장기를 스스로 떼어내는 방식으로 살짝 바뀌었습니다. 방식은 바뀌었지만 작가는 이런 식으로 ‘일장기 말소사건’을 극중에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날 환영행사에서 민중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온 것은 사전에 치밀한 각본에 따라 준비된 것이었는데 이를 준비한 주체는 ‘동진결사대’였습니다. 이 단체는 몽양 여운형의 휘하에서 무술을 연마하는 청년조직으로 장차 양백 선생의 파트너인 몽양을 따라고 또 돕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이는 훗날 여운형이 주도하여 결성한 ‘건국동맹’을 가상하여 설정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동진’은 몽양 선생을 일컫는 별칭일까요? 그렇습니다. 22회분부터 등장하는 ‘동진 선생’이 바로 ‘몽양 여운형’의 별칭입니다. 그러면 이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요? 여기에도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이달초 ‘민간인 사찰’ 피해자 김종익 선생이 사무실엘 잠시 들렀습니다. 평소 더러 들르는 분입니다만, 이날은 최근 자신이 번역출간한 <적도에 지다>를 한 권 갖고 오셨더군요. 이 책은 일제말기 포로감시원(군무원)으로 나간 조선인들의 이야기인데요, 얘기 도중에 우연히 ‘각시탈’ 얘기를 하다가 ‘양백 선생’ 얘기까지 나오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백범은 ‘양백 선생’으로 별칭을 지었는데 몽양 선생은 아직 짓지 못한 것 같다며 마땅한 이름이 없겠느냐고 했더니 김 선생님께서 대뜸 ‘동진 선생’이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동진’은 어디서 따온 것이냐고 연유를 물었더니 김 선생님 왈, 여운형 선생이 강원도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인 ‘동진학교’(1908년 강릉에서 개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으며 백범 김구 선생도 이곳에서 강연을 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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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장기 말소사건'의 손기정 선수를 빗대 가상으로 만든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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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의 일장기를 떼어낸 모습 | 동진. 적절히 익명성도 있어 보이고 해서 저는 일단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니라 이를 사용할 사람의 의향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앉은자리에서 유 작가님에게 전화를 걸어 몽양 선생의 별칭이 정해졌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유 작가님 왈, ‘몽운 선생’으로 정했으면 하는 데 아직 확정한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몽운’은 몽양의 ‘몽’자와 여운형의 가운데 ‘운’자를 합친 거라는데 얼핏 봐도 ‘몽양 여운형’을 쉽게 떠올릴 수 있어서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제 생각을 들려준 후 대신 ‘동진 선생’은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유 작가님은 ‘일단 참신하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래서 유래를 설명해 드렸더니 아주 만족해하는 눈치였습니다. 결국 몽양 선생의 별칭은 ‘동진 선생’으로 정해졌고 22회분부터 ‘동진 선생’이 등장하였습니다.
앞으로 남은 프로에서는 창씨개명, 징용, 징병 등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될 예정이며, ‘동진결사대’의 활약상이 박진감 있게 펼쳐질 예정입니다만,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죠? 그럼, 이만...
(추기-가끔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있어서 방송작가들의 역할을 조금은 압니다만, 드라마 극본을 집필하는 방송작가는 알고 지내는 분이 없어서 그분들의 활동상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현미 작가님을 만나면서 드라마 방송작가들이 다각도로 자료를 수집해서 힘들여 극본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유 작가님은 저 말고도 위안부 내용을 다루하면서 위안부 관련 논문을 쓴 분을 두 분이나 만나서 자문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드라마가 비록 ‘픽션’이긴 하지만 그래도 골간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는 만큼 적잖은 역사공부가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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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진이 여운형이구낭..몰랐다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르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사진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티비를 직찍하다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런것까지 세세히 신경쓰는줄 몰랐당 작가도 쉬운게 아니구나..
언니 기사 링크좀 달아주라ㅜㅜ폰에서는 기사가 짤리네ㅜㅜ
출처에 링크 걸림^^
앗그러네^^고마우이
오오 멋지다ㅠㅠ 이런 노력들ㅠㅠ
와 작가님 멋지다 ㅠㅠ
우와 진짜 대단하다작가님..
이 작가님 내가 아는 단체에도 고증 받으러 오고 그러셨다는데.. 우리 엄마는 양백선생 보자마자 바로 김구선생이네 하시던데 ㅋㅋ
헐.... 진짜 짱이다....
진짜ㅠ_ㅠ 잘 보고있어요 힝
우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가님 대단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