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FA에 접촉하여
월드컵 이후에 스벤 예란 에릭손을 알렉스
퍼거슨 감독 대체자로 올드 트래포드에 데려오려고
하는데 놓아줄 수 있는지 정식으로 문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계획은 그 당시 유나이티드 단장이었던 피터 캐넌과 클럽에서 오래 일해온 법률 자문인 모리스 왓킨스가
FA
고위 관리자들과 만나기 위해 런던으로 가서 에릭손과 정식 미팅을 가지는 것이었다.
스웨덴인과 비공식 만남은 이미 이루어졌었다.
두 사람이 런던으로 떠나려는 찰나 퍼거슨이 왓킨스에게 전화를
걸어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말하였다.
퍼거슨은 결국 은퇴하지 않을 것이라 결심하였고
유나이티드 수뇌부의 계획은
조심스럽게 뚜껑을 덮었다.
만약 퍼거슨이 하루라도 늦게 전화를 걸었더라면,
유나이티드는 FA 고위직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고
에릭손 감독직을 위한 정식 수순을 밟았을 것이다.
2002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로 했던 퍼거슨의 결심은 캐넌을 걱정스럽게 하였었다.
그는 우선순위 한
사람으로 (스벤손을) 60세인 글래스고인의 계승자로 보았다.
퍼거슨이 정말로 은퇴를 원하는지 여러번의 미팅이 있었다.
캐넌은 퍼거슨이 생활방식을 바꿀 준비가 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하였다.
" 그는 수년간 경기의
최고점에 있어 왔습니다.
저는 그가 축구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축구 다음에 자신의 삶으로 여긴 경주에 깊이 열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경주마) 지브롤타의 바위(역주:그리스
신화에 헤라클레스가 이 바위에 두 개의 기둥을 세운 것으로 나옴.
하나는 용맹, 다른 하나는 덕을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가 그것을 언급했습니다.
경주는 그의 인생에서 분명히 더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그가 의식적으로
느꼈던 것이
그로 하여금 양자택일을 하도록 했을지도 모릅니다."
일단 캐넌은 퍼거슨이 떠나는 것으로 확인하고
가상 대체 후보자 명단을 작성하였다.
그러한 자리에
흥미를 끌 유력한 대상자들을 포함했다.
- 이탈리아의 두 훌륭한 감독 : 마르첼로 리피와 파비오 카펠로
마틴 오닐,
에릭손 그리고 그 당시 올드 트래포드에서 코치였던 스티브 맥클라렌-
이탈리아인들은 그들의 영어회화 능력이 대단히 좋지 못하다는 사실 때문에 곤란했다.
그러나 잉글랜드 국대 감독
이후에 클럽을 맡고 싶어했고
영어에도 능숙한 잉글랜드에서 이미 일하고 있는 또 다른 외국인이 있었다.
이외에도 그는 국가대표 주장인
유나이티드 소속 데비이드 베컴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캐넌이 아직도 이름을 거명하길 거부하고 있지만,
명단은 한명으로 좁혀졌고
바로 에릭손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모든 수준에서 성공해온 사람이었고 유쾌한 매너도 지녔으며
모든 수준의 클럽에서
적응할 수 있었다.
클럽의 법률 자문관인 왓킨스는 에릭손과 접촉을 가졌다.
2년 후에 에릭손이 첼시와 접촉을 하는 것이 포착된
그런 종류의 부주의한 광고는 왓킨스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빈틈없는 협상의 대가인 왓킨스는 런던에 있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호텔에서
에릭손을 만났다.
2002년 1월 마지막주까지 (에릭손과 FA)어떠한 계약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에릭손이 떠나고 싶다고
FA측에 말하느냐는 문제만 남았었다.
왓킨스는 첫째로, 법률상 고용인(에릭손)은 고용주(FA)에게 알려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물론 에릭손은 유나이티드에 합류하기 전에 2002 월드컵 마지막까지 잉글랜드팀을 맡을 거라고
FA에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유나이티드는 또한 FA와 공식적으로 접촉을 갖기로 정하였다.
그들은 목적을 FA에 말하지 않았지만 회담을
준비하였다.
그들은 직접 대면했을 때에만 사실을 말하기로 계획하였다.
만약 이러한 것이 영입을 위한 접촉처럼 들려도, 축구계에서 늘상
있었왔던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그들이 이날 했던 일에 대해 유나이티드와 에릭손이 항상 부정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유나이티드는 첼시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런던 아파트로 에릭손이 들어가는 사진과 같은 것으로
당황하는 일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7개월 이전에 잉글랜드팀이 케빈 키건 대체자로 새로운 감독을 찾고 있었을 때
퍼거슨은 그
당시 FA회장인 아담 크로저가 잉글랜드 국대 감독으로 에릭손을 뽑는데 도움을 주었었다.
크로저는 스코틀랜드 친구로 막연한 사이었고 퍼거슨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했었다.
크로저는 퍼거슨이 잉글랜드 국대 감독은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엔
다른 목적이 자리잡고 있었다.
"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의도가 있었어요.
적임자에 대한
퍼거슨의 생각을 들으러 갔지만 또한 코칭스텝의 일원으로
스티브 맥클라렌을 우리에게 보내주는 것에 대해 그의 동의를 얻으러
갔었습니다.
캐넌은 우리가 알렉스를 훔쳐가려 한다고 피해망상을 가질 정도였고
반면에 알렉스는 우리가 스티브
맥클라렌을 얻기 위해 그의 지지를 얻으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하였습니다.
맨체스터 수뇌부를 좌우한 사람은
알렉스였습니다.
저는 캐넌이 처음에 아마 약간 반대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알렉스는 잉글랜드 감독아래 코치진의
일원으로 스티브를 두는 것에 분명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퍼거슨은 또한 알렉스에게 최고의 일(국대)을 스웨덴인에게 맡기는 것을 강조하였다.
" 알렉스와 같은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저는 스벤이 우리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초 퍼거슨은 에릭손이 자신의 계승자가 될 것이라고 들었을 때,
유나이티드 감독에게 극적인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고 급하게 왓킨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퍼거슨은 나중에,2003년 2월에, 스웨덴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털어
놓았다.
" 나는 그들이 완전히 (계약을)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에릭슨이라고 확신했죠....... 그들이 서로
악수했다고(타협만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잉글랜드 감독이었기에 종이에는 아직 아무것도 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에릭슨이 괜찮게 해 왔고 그들이 선택하기에 쉬웠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떠한 것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는 순항하며 아무도 그와 다투지 않습니다."
FA내부에선, 에릭손에 대한 유나이티드의 관심이 비밀이 아니었다.
크로저는 위협을 느낀 선수들의 관리에 대해
왓킨스에게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는 왓킨스에게 농담하곤 했다. " 우리 사람에게서 손 떼라구"
크로저는 나한테 말했다.
" 그들이(유나이티드) 스벤과 얘기하는 것에 내가 배후에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래, 난 그들이 그랬다고 생각하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월드컵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스벤과 그들 사이에 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네.
월드컵 때 까지 잉글랜드팀을 이끌지 않을거라고는 의심하지 않아.
스벤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것을 결정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그러나 그 당시 퍼거슨이 마음을 바꾸고 눌러
앉기로 결심했지."
캐넌은 말했다.
" 우리가 월요일 아침 점찍은 후보자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가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정식으로 접촉하기로 모든 것이 계획되었습니다.
모리스가 전화를
받았을 때 우리는 런던으로 내려갈 준비가 된 상태였습니다.
왓킨스의 핸드폰으로 걸려온 퍼거슨의 전화는 아주
다급하였다.
그는 말했다.
" 나좀 만나러 캐링턴(유나이티드 훈련장)으로 와줄 수 있겠어 ?"
왓킨스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분명히 중요한 것이었다.
퍼거슨은 자신이 가족들에게 은퇴에 대해 말했더니
그의 부인 캐시는 그가 집에 눌러 앉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는 건강검진도 받았고 건강했다.
그는 마음을 바꾸고
이제 2002년을 넘어서는 새로운 계약을 원했다.
퍼거슨의 갑작스런 변화는 왓킨스를 당황하게 하였다.
왓킨스는 캐넌에게 전화를 걸어 퍼거슨이 마음을 바꿨다고
말하였다.
캐넌은 그 당시 유나이티드의 회장인 로날드 스미스에게 연락을 취해
자신들은 FA와의 만남을 연기할 것이라고
전하였다.
다른 경영진도 곧 도착하였고 한 유나이티드 내부인이 말했다.
" 경영진 사이에서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 고맙네 알렉스, 하지만 됐네" 라고 말하려던 사람들은 재빨리 침묵을 지켰다.
결론은
퍼거슨이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고 공개된 공식 성명은,
클럽은 영국에서 가장 성곡적인 감독이 계속 맡게 되어서 크게 안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공식적인 표명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논쟁은 더 길러졌고 아주
신랄해졌다.
내부인이 말했다.
" 그는 더 긴 계약과 더 많은 돈, 약 4백만 파운드에 가까운 돈을 원했습니다."
2년 계약
전에 1년을 옵션으로 두는, 길고 힘들었던 협상은 합의를 보게 되었다.
" 그는 더 긴, 4년을 원했습니다."
퍼거슨의 보수는 일주일에 6만파운드에서 7만파운드로 올랐고, 연봉으로는 모두 합해 3백6십만 파운드로
알려졌다.
이 액수는 1주일 후에 계약한 핵심 미드필더 로이 킨의 주급 10만파운드와
베컴이 오래 끌었던 협상 후에 또한 받아들였던
금액에는 여전히 못미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의 마지막에, 퍼거슨은 선언했다.
'일단 계약이 2005년 끝나게 되면 어떤
경우라도 클럽에 남을 의향은 없습니다.'
번역 : waiter
원문 : http://www.telegraph.co.uk/sport/main.jhtml?view=DETAILS&grid=A1YourView&xml=/sport/2007/02/23/sfnbos23.xml
첫댓글 길다 퍼거슨화이팅
아
읽기 실타 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2222
마지막 계산이 조금 틀렸네요...주급 7만파운드면 연봉으로는 360만 파운드 정도 되겠죠....
다른 옵션들까지 포함해서요 아니,아니네요 만을 빼먹었네요 광주금호보고파님이 맞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 사실 번역하면서 저도 무척 길다고 생각했어요. 내용은 그냥 한가지입니다. 퍼거슨 대체자로 에릭손을 점찍었는데 퍼거슨의 전화 한 통화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다행이닷..에릭손이 안되성...
리피가 감독했음ㄴ 어태됬을깡?
지브롤타의 바위는 퍼기경이 소유한 경주마 이름이죠.
그랬군요. 진짜 경주마를 의미하는 건지 덕장을 의미하는 건지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번역 너무 수고하셨어요~ ^^ 에릭손이라니..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