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도 여행의 재미다. 산이나 바다에서 먹는 음식 맛은 희한하게 좋다. 일단 현지에서 직접 캐온 먹거리는 신선하기도 하고, 주위 풍광도 좋아 입으로만이 아니라 눈으로도 맛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별미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요즘 맛기행을 즐길 만한 곳은 어딜까? 보령 천북과 사천의 비토가 좋다. 두 곳 모두 굴 산지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화롯불에 굴을 구워먹는 재미는 대도시에선 좀처럼 즐길 수 없다.
보령 천북면 해안 전경.
△ 보령 천북 굴구이촌
보령 천북 굴구이촌은 유명하다. 십수년 전만해도 난전에서 비닐하우스를 쳐놓고 영업하는 집들이 많았다. 요즘은 굴구이 식당 93개가 들어서 있다. 굴구이를 시작한 것은 30여년 전으로 굴구이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불을 피워놓은 어민들이 직접 딴 굴을 구워먹은 것이 관광객들에게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단다.
“천북굴은 알이 단단하고 맛이 깊어요. 물 속에서 키운 굴들은 알이 쉽게 크지만 밀물 때만 잠기는 천북 굴은 알이 적은 편이죠. 향도 좋지. 펄이 좋아서 그려. 보령 머드축제 때 쓰는 머드도 다 여기서 가져간다니까”
굴양식은 대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물속에서만 기르는 수하식, 밀물 때는 물에 잠기고 썰물 때 햇빛을 받는 지주식이다. 보령굴은 지주식이다.
천북수산의 박상원씨는 “물 속에서만 자란 굴은 1년이면 크지만 천북에선 굴구잇감이 적어도 2년은 된다”고 했다. 해산물은 오래 되고 큰 것일수록 맛있다는 뜻이다.
천북은 원래 굴이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 면 단위로는 축산업(돼지)이 전국 최고였다고 한다. 전에는 김양식을 했다.
보령 천북의 특미로 꼽히는 굴국밥.
“광천김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거여. 그런데 지금은 안 나요. 서산 방조제가 들어서면서부터 조류가 바뀌었고, 그때부터 김 양식이 안돼. 대신 굴 양식을 하잖아요.”
‘고무 다라이’에 놓은 굴을 불판에 올려놓자 탁탁 소리가 나면서 굴이 익었다. 박씨는 바짝 익히면 맛이 없고, 수분이 촉촉할 때 먹어야 맛있다고 했다. 박씨는 “굴은 소주가 없으면 제 맛을 못낸다”며 술을 연방 권하기도 했다.
천북면사무소 최영열씨는 “굴은 암수 동체”라고 했다.
“여름에 증식할 때는 암컷이지만 살이 오르면서 다시 변하죠. 지금은 암수 중간쯤 될 겁니다. 모든 생물은 알을 낳을 때는 약간 독소를 품어요. 그래서 여름굴은 알알해서 생으로는 못먹는다고 하잖아요.” 최씨는 굴은 정화작용이 뛰어나다고 했다. 어항에 굴 두어개만 넣어두면 물이 맑아진다고 한다.
천북 최고 굴요리는 굴 물회다. 관광객에게는 아직 생소하지만 물회는 다른 곳에선 먹을 수 없는 별미 중의 별미다. 싱싱한 굴과 과일, 매콤한 양념을 함께 버무려 내놓는다.
“굴 물회를 정말 제대로 먹으려면 조그만 더 참아야 혀. 1월이 더 좋아. 1월엔 동치미가 말갛게 익거든. 동치미국물에다 굴을 넣고 양념을 해서 먹어야 제맛이여.”
물론 굴밥도 특미다. 취향에 따라 소라도 굽고, 호일에 싸서 낙지도 구워먹는다.
△ 경남 사천 비토
경상남도 사천 비토에서 맛볼 수 있는 굴구이.
사천 비토라고 하면 대부분은 고개부터 갸우뚱거린다. 사천 사람들도 잘 모르는 곳인데 풍광이 아름답고 개펄도 좋은 바다다. 거북이를 따라 용궁에 들어갔다가 간을 뭍에 놓아두고 왔다는 토끼와 거북 설화가 나온 곳이 비토다. 서포면 끝자락 토끼 꼬리처럼 붙어있는 섬이다. 비토는 굴구이도 좋지만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주변에 남해와 창선도 등 워낙 수려한 곳이 많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산 허리를 깎아 해안도로를 타고 비토로 들어간다. 가파르지 않고, 일부 구간만 전망대처럼 높은 해안도로에선 남해의 올막졸막한 섬들이 잘 보인다.
그 끝자락에 굴 양식장이 있다. 개펄이긴 하되 펄과 모래가 섞여있다. 굴뿐 아니라 바지락도 유명하다.
처음부터 굴구이를 팔지는 않았다. 경관이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따라 마지막 부두까지 온 관광객들은 굴이라도 조금씩 팔라고 주민들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아낙네들이 굴을 조금씩 내다팔았고, 나중에는 난전에 굴구이집들이 들어섰다.
박용구 이장은 9월부터 굴을 캤는데 굴시즌은 내년 4월까지라고 했다. 이 지역의 굴이 좋은 것은 물살이 세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살이 단단하다. 대신 알은 작다. 채취량은 지난해의 60% 수준. 가을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염분이 높아졌고 굴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의 번식이 적었단다.
현지에서 장작불에다 직접 구워먹는 굴 맛은 좋다. ‘고무 다라이’ 1개에 1만5000원부터다. 삶아 주기도 한다. 어딜 가나 자기 고향자랑을 하게 마련이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다른 데서 이런 굴 못 먹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서 비토까지 굴만 먹으러 가겠다면 멀다. 인근에 볼거리가 꽤 많다. 사천 도솔사도 가깝다. 도솔사는 소설 <등신불>의 무대가 된 곳이다. 힐튼 남해리조트도 승용차로 1시간 내에 있다.
비토에선 굴과 함께 흥미로운 전설 한 토막도 들을 수 있다. 비토 바로 앞 섬이 월등도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약간 다른 <토끼와 거북 이야기>가 전해진다. 토끼가 거북이를 따돌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달밝은 보름 밤에 달빛에 어린 월등도를 향해 뛰어내리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생긴 섬이 그 옆 토끼섬이다. 토끼를 놓친 거북이는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해 거북섬이 됐단다. 토끼의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목이 빠져 목섬이 됐다는 것이다. 그만큼 올망졸망한 섬들이 많으며 경치가 좋다.
길잡이
△ 보령 천북
서해안 고속도로 광천IC에서 빠진다. 톨게이트를 나오자마자 우회전. 다시 500m쯤 가면 고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내려서자마자 우회전하면 천북 굴마을로 가는 길이다. 이정표가 잘 돼 있다. 굴구이 값은 대개 비슷하다. ‘고무 다라이’ 하나에 2만5000원. 굴밥은 7000원, 굴 물회는 1만5000원이다. 천북수산(041-641-7223).
△ 사천 비토
대전·통영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한다. 곤양IC에서 빠져 3거리에서 좌회전하면 58번, 1005번 지방도로가 서포면으로 연결된다. 비토 이정표는 있으나 헷갈리기 쉽다. 비토교를 지나 3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비토초등학교(폐교)로 가는 길. 초등학교 앞 부두에 난전이 있다. 굴구이는 1만5000원부터.
<사천·보령 | 글·사진 최병준기자>
첫댓글 잘보구갑니다~~~굴 먹으로 함 떠나야겠네요.....감사
좋은글 업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