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멋모르고 동네약국에서 근무약사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매일 박카스만 만지고 까스활명수만 만지고서는 성공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더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 굳은 결심을 하고 스스로 일어서기로 했죠. 집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은 채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가락시장까지... 약국 자리만 7번을 옮겨 다녔어요."
강원대학교 약학대학생들에게 본인의 인생사를 설명하는 그는 어느 때 보다 진지하고 신중했다.
송파구 풍납동에서 가장 큰 현대아산약국 약국장 겸 대한약사회 이규진 감사가 솔직한 인생선배로 변신했다.
강원약대 학생들은 1년 앞으로 다가온 약국 실무실습과 약국 현장을 실제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23일 이 감사의 약국을 찾았다.
이들은 강원대학교 약학대학 토론동아리 '카벨' 소속 학생들이로 이 날 동아리 소속 학생 18명 가운데 13명이 견학에 참가했다. 방학 중 견학을 위해 대구에서 올라온 학생들도 있었다.
이 감사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실제 약국 업무는 큰 차이가 있다 생각해 약국 현장을 보여주고 싶어 학생들을 초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약국이 처방전을 받는 것부터 복약지도, 수납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
일반 동네약국이 아닌 문전약국의 일환을 보여주며 보다 다양한 약국을 소개해 후배들의 견문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 이 감사의 생각이다.
또 변화를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기존 약사들을 뛰어넘어 과감하고 파격적인 형태의 약국을 운영할 수 있는 자극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배 약사로서의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후배들이 공직이나 병원, 개국, 제약 등의 다양한 영역 가운데 자신에게 적합한 길을 권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날 학생들은 대체조제나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 미래 약국과 약사의 역할 등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했고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학생들 대다수는 주변에 약국을 하는 분이 없어 늘 환자로만 약국을 가다가, 생전 처음 들어가 보는 조제실이 낯설고 신기하다며 입을 다물 줄 몰라했다.
견학을 마친 김현지 학생은 이 감사와 함께한 자리에서 "환자로 약국을 올 때는 몰랐는데 막상 약국을 와 보니 이렇게 많은 약과 기계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공부를 하는 데 있어 자극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재원 학생도 "약사가 단순히 조제와 복약지도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약국 현장에 와보니 약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회사를 운영하는 총책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최근에 언론을 통해 약사들의 부정적인 면모를 보며 학업과 진로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는 임나정 학생도 "약국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문전약국은 하나의 기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예비 약사로서 자부심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1학년인 김다솜 학생과 이지민 학생은 "약사가 되고 싶어 약대에 오긴 했으나 약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실감이 안 났는데,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해 보니 좋았다"며 "진로를 결정하는데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아영 학생도 "이 감사의 설명을 듣고 의약품뿐만 아니라 경영학이나 법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 자신 스스로가 괜찮은 약사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버지가 약사라는 최지형 학생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하시는 약국에 가 일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조제실은 거의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도 약국이 다를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견학을 통해 약사의 업무가 루틴하기만 하다는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됐다"고 덧붙였다.
처음 조제실에 들어와 본다는 강지희 학생도 "짧은 견학이었지만 뜬구름 같았던 진로에 선을 하나 그을 수 있던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으며, 마영준 학생 역시 "주변에 친분이 있는 약사가 없고 고민을 털어놓거나 질문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을 계기로 궁금증들이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1학년인 김경민 학생도 "공부를 하며 실제 실무현장에 투입돼 일을 할 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선배 약사들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니 재미있고 신기했다"며 "약국 이외의 기관 등도 방문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기대을 밝혔다.
황지은 학생도 "1달간 약국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와 많은 부분이 다른 것 같다"며 "늘 제약회사나 외국계제약사, 공직만 생각하다 오늘 견학을 해보니 개국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강효진 학생은 "인생 선배로서, 약사 선배로서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이규진 감사에게 감사하다"며 "제언대로 꿈을 가지고 열심히 도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오홍식 학생도 "졸업을 한 뒤 싶은 게 많았는데 이들 가운데 개국이라는 경험을 해볼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감사는 "앞으로도 약학대학에서 약국을 방문해 보고 싶다는 문의가 있으면 언제든 응할 각오가 돼 있다"며 "후배 약사들에게 많은 조언과 격려를 아낌없이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역시 이 감사의 약국을 방문, 실무 현장 교육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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