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orgsky, Modest Petrovich(1839.3.21~1881.3.28) 러시아
19세기 낭만주의 음악 후반에 러시아에서는 국민 음악 운동이 일어났다.
슬라브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을 건설하려는 기운이 감돌았는데, 그 운동의 중심은 이른바 5인조에 의해 이루어졌다.
무소르그스키도 그 주요한 멤버 중의 한 사람이었다.
처음 그는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7세 때에 벌써 리스트의 소품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13세 때 근위 사관 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 프레오브라젠스키 수비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군 병원에서 군의관이었던 보로딘과 알게 되었고 큐이, 발라키레프 등과도 교우를 맺었는데,
그 후로 그는 발라키레프에게 작곡을 배웠다.
22세 때 그는 군에서 떠나 음악에 전념하였는데, 1860년에 작곡한 오케스트라곡을 연주하여 호평을 받았다
무소르그스키는 ‘쿠치카(억센 무리)’란 러시아 국민음악파 5인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러시아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포함한 여러 관현악곡과 피아노곡들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가장 사랑을 받는 것은 <전람회의 그림>이다.
이것은 본래 피아노곡이지만, 프랑스의 인상파 작곡가인 라벨이 그림 같은 관현악으로 편곡한 것이 더 많이 연주되고 있다.
이 걸작 <전람회의 그림>은 우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무소르그스키가 속해 있는 러시아 국민음악파 5인 그룹을 끔찍이도 떠받들던 건축가이자 화가인 빅토르 하르트만이
31세라는 젊은 나이로 갑자기 사망하자 그 이듬해 하르트만의 예술을 사랑한 사람들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그의 유작전을 열게 된다.
여기에는 하르트만의 스케치·건축 설계도, 그 밖의 여러가지 디자인 등 모두 4백여 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하르트만은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을 높이 평가해 주고 진심으로 격려해준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무소르그스키는 이 전람회에서 하르트만을 추모하는 10점을 뽑아 피아노곡으로 삼게 된 것이다.
첫째 곡 <난쟁이>는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워 보이는 괴상한 난쟁이의 뒤뚱거리는 모습
전람회의 그림은 10곡으로 되어 있지만, 중간중간에 전주와 간주의 구실을 하는 프롬나드 (산책이라는 뜻)도 연주된다.
이 모음곡은 배열도 매우 훌륭하지만 독창성이 넘쳐 흐르기 때문에 1백여 년이 지난 현대에도 새로운 시대 감각을 느끼게 한다.
무소르그스키는 국민음악파 5인 그룹이 거의 다 그렇듯이 정규적인 음악 수업을 받지 않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었지만,
일찍이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워 7세 때 리스트의 피아노곡을 치고
9세엔 존 필드의 피아노 협주곡도 칠만큼 천재성을 보인 바 있다.
이같은 자질이 나중에 <전람회의 그림> 같은 최대 걸작을 낳은 것이다.
오늘날 이 곡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대 지휘자인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의 위촉을 받고 관현악 조곡으로 편곡해서 1922년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뒤였다.
첫댓글 달빛뜨락님이 신청하여 올려드린검돠!~~~~ 지금 이 곡은 모리스 라벨이 관현악 조곡으로 편곡한 것이고 원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피아노곡임!
해설까지 붙여 주셔서 감사 합니다 이 기괴한 음악이 <전람회의 그림> 편곡 이었군요 ~
무소르스키의 원곡인 피아노곡도 듣고 싶네요
100년전 미래를 내다 본 천재 음악가의 독창성? . . . . .
동영상 신청한 3살짜리 신동도 동영상방에 올려놨어요.
검색에 나온 것 죄다 들어보고있는 중인데 원곡의 피아노곡은 찾질 못하겠고 죄다 라벨의 편곡만 있네요...카랴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Orch의 연주가 조금 다르긴하군!~ㅎㅎㅎ 동영상방에 예프게니 키신의 피아노 연주로 원곡 올려놨습니다.
여유님 감사 합니다 꾸바닥~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