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조용히 지내오던 아내가 오늘 저녁을 준비하며 갑자기 이상증세를 보였다. 물론 이유는 그럴듯하다. 남편에 대한 원망이다. 그럴듯하다. 옛말에 털어서 먼지나지 않는 걸레가 있느냐고 했다. 이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나를 공격하는 아내 역시 허물을 들추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상대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 상대를 포용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덕목이다. 그렇다면 아내는 전혀 그러한 교육을 못받았을까? 그럴리 없다. 적어도 나의 설교를 20년이상 들었다. 그렇지만 그 심령에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윗을 미워하는 사울이 갑자기 수금을 타는 다윗을 향해 창을 던지는 행위는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 심령을 조절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내가 목회를 하지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목사사모라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조차도 조절할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목회를 하겠는가!
아내가 처음부터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짐작건대는 두번째 임신을 했을 때 자궁에 혹이 발견된 후 자궁적출을 했었다. 아내의 성격에 변화가 온 것은 바로 그 이후 부터라고 생각이 된다. 물론 개척교회를 하면서 아내가 겪은 고생은 이루 말로다 못할 정도였음은 내가 인정을 한다. 하지만 너무나 불신앙적이고 비정상적인 순간적인 발작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사탄의 역사는 전염이 강하다. 마치 드랴쿨라에게 물린 사람이 똑같이 되는 것과 동일하다.
처음에는 아내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적으로 상대를 했었다. 그것이 영적인 문제임을 알게된 것은 많은 세월이 지난 후 였다. 그래서 이제는 아내가 악신의 조정을 받을 때 절대로 맞서거나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맞서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더욱 거세게 몰아부쳐 어떻게든 반응을 보이도록 자극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리를 피하게 된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라는 말이 현명한 대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