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集註大全卷之十九
자장(子張) 제십구(第十九) 此篇皆記弟子之言 而子夏爲多 子貢次之 蓋孔門自顔子以下 穎悟莫若子貢 自曾子以下 篤實無若子夏 故特記之詳焉 凡二十五章 이 편에서는 모두 제자들의 말씀을 기록하였는데, 자하가 제일 많고 자공이 그 다음이다. 대개 공문은 안자로부터 그 아래로 특출하게 깨달음에 있어 자공만한 이가 없었고, 증자로부터 그 아래로 독실함에 있어 자하만한 이가 없었다. 그래서 특별히 그들의 말을 여기에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모두 25장이다. 勉齋黃氏曰 此篇所記不過五人 曰子張子夏子游曾子子貢 皆孔門之高弟 蓋論語一書記孔門師弟子之答問於其篇帙將終而特次門人高弟之所言自爲一篇 亦以其學識有足以明孔子之道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이 편에서 기록한 것은 5사람으로서 자장, 자하, 자유, 증자, 자공에 불과하였지만, 이들은 모두 孔門의 高弟였다. 대체로 논어라는 한 권의 책은 孔門의 스승과 제자들의 문답을 그 편질이 장차 끝나려는 곳에다 기록하면서도, 특히 문인 고제들이 말한 바를 편차하여 스스로 하나의 편으로 만들었으니, 이는 역시 그들의 학식이 공자님의 도를 밝히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所記五人 子張二章 子夏十一章 子游二章 曾子四章 子貢六章 신안진씨가 말하길, “기록한 것은 다섯 사람인데, 자장이 2장, 자하가 11장, 자유가 2장, 증자가 4장, 자공이 6장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穎悟篤實皆以資質言 二子資質次於顔曾 顔曾學力有非二子所能及者 顔之穎悟 知之固徹 行之又至 曾之篤實 行之固至 知之又徹 子貢則穎悟於知而不足於行 子夏則篤實於行而不足於知焉 경원보씨가 말하길, “穎悟와 篤實은 모두 자질로써 말한 것인데, 두 분의 자질은 안회와 증자의 다음이었다. 안회와 증자의 학력에는 두 분이 능히 미칠 수 있지 아니한 것이 있었다. 안회의 穎悟는 아는 것이 본래 투철하였지만 실행하는 것도 또한 지극하였고, 증자의 篤實은 행하는 것이 본래 지극하였지만 아는 것도 역시 투철하였다. 자공의 경우에는 아는 것에 있어서는 穎悟하였지만 실행함에는 부족하였고, 자하의 경우는 행하는 것에 있어서는 篤實하였지만 아는 것에는 부족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以顔子之明睿 則穎悟不足言 以曾子之純誠 則篤實不足言 故但以稱子貢子夏也 호씨가 말하길, “안자의 명철한 예지라면 穎悟로는 다 말하기에 부족하고, 증자의 순수한 정성이라면 篤實로는 다 말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그저 이로써 자공과 자하만을 지칭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장 제1장. 子張曰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 자장이 말하기를, “선비가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이득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며, 제사를 지낼 때는 공경함을 생각하며, 부모의 초상을 당해서는 슬픔을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괜찮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致命 謂委致其命 猶言授命也 四者立身之大節 一有不至 則餘無足觀 故言士能如此 則庶乎其可矣 치명이란 그 목숨을 맡기고 바치는 것을 말하는데, 목숨을 내어준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네 가지 모두 입신의 큰 절개인데, 하나라도 지극하지 못함이 있으면, 그 나머지는 볼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선비가 이와 같을 수 있다면 곧 거의 괜찮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朱子曰 致命猶送這命與他 不復爲我之有 주자가 말하길, “致命이란 이 목숨을 타인에게 보내주는 것과 같으니, 더이상 내 소유가 아님이 된다.”고 하였다.
或問其可已矣 與前篇可也之說 曰 可則同 然曰可也 則其語抑 曰其可已矣 則其語揚 혹자가 ‘其可已矣’와 전편의 ‘可也’에 관한 설에 대하여 물었다. 말하길, “可는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可也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억누름을 말한 것이고, 其可已矣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들어올림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大節固所當盡 然斷之以其可已矣 則似失之太快而不類聖人之言 集註以爲庶乎其可 則固惡其言之太快矣 면재황씨가 말하길, “큰 절개는 원래부터 마땅히 다해야 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괜찮다’는 것으로 단정한다면, 너무 빨리함에서 잘못하여 성인의 말씀과 닮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집주는 거의 괜찮은 것으로 여겼으니, 이는 본래 그 말이 너무 빠른 것을 미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潛室陳氏曰 士者一男子之事 古人說士處多 如此不要將君子小人雜看 只此等事豈易 非奇男子不能 子張語病在末梢一句 잠실진씨가 말하길, “선비라는 것은 한 남자의 일이다. 옛사람이 선비를 말한 곳이 많은데, 이와 같이 군자와 소인을 섞어서 보면 안 된다. 다만 이러한 일이 어찌 쉽겠는가? 기발한 남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장의 말은 그 병폐가 제일 마지막 한 구절에 있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義敬哀皆言思 致命獨不言思者 死生之際 惟義是徇 有不待思而決也 서산진씨가 말하길, “義와 敬, 그리고 哀에 대해서는 모두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致命에 대해서는 유독 생각한다고 말하지 아니한 것은 죽고 사는 즈음에는 오직 義이기만 하면 따르는 것이지, 생각하기를 기다렸다가 결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見危致命者 處變而決之於一旦也 思義敬哀者 處常而思之於平時也 平時能思此三者而行之 則其人好義謹厚 己養之有素矣 一旦臨大變故 庶能於當死而必死焉 否則臨財利而苟得 臨喪祭而苟且 何望其臨變故而能死哉 신안진씨가 말하길, “見危致命이라는 것은 변고에 처하여 하루아침에 결단하는 것이다. 義, 敬, 哀를 생각한다는 것은 일상적 상황에 처하여 평시에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평시에 능히 이 세 가지를 생각하여 행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義를 좋아하고 근후하며 자신을 기르는 것이 평소의 일일 것이니, 하루아침에 대변고에 임해서도 마땅히 죽어야 할 것에는 거의 능히 반드시 거기에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재물이나 이로움에 임해서 구차하게 얻으려 하고, 초상이나 제사에 임해서도 구차히 할 것이니, 어찌 그가 변고에 임하여 능히 죽을 수 있기를 바라겠는가?”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