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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최근 온라인상에 디지털 매체라는 거대한 생태계 속에서 '시의 자격'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고도의 미학적 절제와 압축을 요구하는 정통적인 '시답다'의 기준과 일상의 언어로 진솔한 삶의 단면을 포착하는 대중적 시 표현 사이의 대립이다.
엄정한 문학적 엄숙주의와 자유로운 대중적 확장성이 부딪히는 이 현상은 단순한 감정의 대립을 넘어, 이 시대가 '시'라는 양식에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양 비판 모두 문학의 존엄과 존재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애정에서 출발하지만, 어느 한쪽만을 정답으로 규정하려는 이분법적 태도는 문학이 지닌 본래의 생명력을 제약할 위험을 내포한다.
응축된 장미의 미학, 피어난 들꽃의 소명
치열한 절제와 응축의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전통적 의미의 시는 정성껏 가꾼 화원의 장미와 같다. 시인이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감정을 통제하고, 단어 하나와 조사의 배치를 고민하는 장인정신은 문학의 품격과 깊이를 유지하는 경계선이다.
존재의 고뇌와 철학적 통찰을 담아낸 문장은 쉽게 읽히지 않더라도 읽는 이의 영혼을 뚫고 들어가 깊은 침묵과 사유를 선사한다. 이러한 미학적 완성도를 향한 투쟁은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지평을 넓혀온 문학사의 핵심 동력이다.
반면, 오늘날 온오프라인의 담장 밑에서 피어나는 소박한 언어들은 들꽃과 같다. 고도의 은유나 압축을 갖추지 못했을지라도,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단함과 기쁨, 외로움을 직관적인 문장으로 정직하게 담아낸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언어라 하여 가치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학의 문턱을 낮추어 누구나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 타인의 문장에서 즉각적인 위로를 얻게 만드는 힘은 대중적 시 양식이 지닌 분명한 시대적 소명이다.
응축된 장미의 미학, 피어난 들꽃의 소명
충돌하는 언어들, 문학의 영토를 넓혀온 역사
화려한 장미만이 진정한 꽃이라며 들꽃의 생명력을 부정하는 것은 다양성을 가두는 독선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들꽃의 친근함만을 옹호하며 장미를 피워내기 위한 치열한 언어적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것 역시 문학 생태계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수 있다.
미학적 완성도를 지향하는 시와 일상적 소통을 지향하는 시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각기 다른 위치에서 문학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상호 보완적 존재다.
돌아보면 한국 현대시의 역사 역시 경계선 위의 치열한 논쟁을 먹고 자라났다. 1930년대 카프(KAPF)의 계급주의 문학과 순수문학파 간의 대립, 1960~70년대 '순수시 대 참여시' 논쟁, 그리고 2000년대 '미래파'로 대변되는 난해성 시 논란에 이르기까지 문학사는 늘 '무엇이 참된 시인가'라는 질문으로 동요했다.
시대마다 질문의 형태는 달랐으나, 본질은 언어가 지닌 독자적 미학성을 우선할 것인가, 혹은 ‘언어가 발 디딘 삶과의 소통과 현장성을 우선할 것인가’의 항구적인 기동(機動)이었다. 지금의 논쟁 역시 그 역사적 궤적의 연장선에 서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형식의 엄밀함이나 매체의 차이가 아니라, '그 언어가 인간의 내면에 어떤 울림을 남겼는가?'라는 본질이다.
깊은 고독 속에서 건져 올린 정교한 문장이든, 퇴근길 무심코 스쳐 지나가며 가슴을 툭 치는 단편적인 문장이든, 누군가의 어두운 마음에 불을 밝혀주었다면 그 언어는 이미 시적 소명을 다한 것이다.
화려한 장미만이 진정한 꽃이라며 들꽃의 생명력을 부정하는 것은 다양성을 가두는 독선일 뿐이다.
지금의 뜨거운 담론은 시의 몰락을 알리는 경종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여전히 언어가 주는 구원과 미학적 가치를 갈망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건강한 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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