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기도를 다 바친 사제가 성체가 든 성반과 성혈이 담긴 성작을 들고 감사 기도를 끝마치는 영광송을 바치면 신자들은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아멘은 앞에서 말한 내용이 옳음을 인정하는 히브리 말로, 전례에서 주로 쓰였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인들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영원에서 영원까지.” 하고 말하자 온 백성은 “아멘!”으로 하느님 찬양에 참여하였습니다(1역대 16,36). 에즈라가 예식 중에 율법서를 읽고 나서 주님을 찬미하는 말로 끝마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습니다(느헤 8,6). 성 바오로도 이 단어를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였고(로마 1,25; 갈라 1,5; 에페 3,21), 자신이 쓴 편지를 “아멘”으로 끝맺기도 하였습니다(1코린 16,24).
가장 눈에 띄는 예는 천상 전례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천사와 성인들의 무리가 외치는 “아멘”입니다. 묵시록에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면, 천사 같은 네 생물이 “아멘!” 하고 화답합니다(묵시 5,13-14). 다른 장면에서는 천사들이 하느님의 어좌 앞에 엎드려 이렇게 외칩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묵시 7,12; 19,4 참조).
천상의 천사와 성인들이 외치는 이 찬양이 지상에서 드리는 미사에서 사제의 목소리로 다시 울려 퍼집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 표현 구조는 성경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로마 11,36). 바오로 사도는 또 “성령께서 이루어 주신 일치”에 대해서도 말합니다(에페 4,3). 골고타 언덕에서 완전하게 순종하신 성자를 통하여, 성자와 함께, 성자 안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으로 하나되어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드릴 때, 그것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표지가 됩니다.
한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을 향해 기도를 바치고 있지만, 동시에 지금 이런 기도를 하게 하신 분 또한 자기 속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에 대한 모든 참된 지식은 하느님이셨다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온다는 것,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 자기 옆에서 기도를 돕고 계시며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하느님은 자신의 기도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이자, 이 사람이 기도하도록 밀어주고 있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 내지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 평범한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평범한 작은 침실 안에서도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실제로 움직이고 계심이 드러난다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한데 모여 한목소리로 찬양할 때, 삼위일체 하느님은 얼마나 더 분명하게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시겠습니까!
모든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하느님의 것이라는 사제의 찬양에 우리는 천사들처럼 하느님 찬양을 향한 열정으로 불타올라 “아멘!” 하고 외칩니다. 초기 로마 교회의 미사 때 울려 피지는 이 “아멘”을 두고 예로니모 성인은 “우렛소리처럼 하늘에 울려 퍼진다”고 말하였습니다. 구원 역사의 모든 영웅들이 삶 전체로 바친 하느님 찬양에 결합하여 우리도 힘차고 아름답게 “아멘”을 노래합시다.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