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중국에서 결성된 민족해방운동단체의 하나. 상해임시정부의 좌익정당이다. 1931년 이후 일본군의 만주침략이 본격화되자 중국에 있던 항일운동가들은 분열상태의 해외운동진영을 통일하고자 32년 10월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조직하였다. 이 동맹은 김원봉(金元鳳)의 조선의열단(朝鮮義烈團)을 중심으로 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신한독립당·대한독립당 등 9개 단체가 합동하여 결성한 조직이었다. 35년 이 동맹을 기초로 하여 다시 <한국민족혁명당>이 태동하였고 이로써 김구(金九) 일파를 제외한 단일당이 형성되어 종래의 각 민족혁명단체의 분열은 해소된 듯했다. 그러나 한국민족혁명당의 지도부는 군사부장에 지청천(池靑天), 특무부장에 이범석(李範奭), 당무부장에 김원봉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김원봉파와 지청천파 사이의 상호 반목이 심하였다. 37년 전당대표대회를 개최하여 당명을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개칭하였으나 2개월 후 지청천파가 이탈, 독립하여 <조선혁명당>을 결성함으로써 종래의 한국민족혁명당은 김원봉파의 조선민족혁명당과 지청천파의 조선혁명당으로 분열되었다. 조선민족혁명당은 조선의열단을 중심으로 37년 조직된 <조선민족전선연맹> 산하에 조선의용대를 별도로 결성, 중국의 항일투쟁대열에 함께 참가하였다. 이 조선의용대는 조선민족혁명당의 김원봉이 최창익(崔昌益) 등의 공산주의자들과 같이 조직한 실질적인 항일무장투쟁부대였다. 후에 이들 중 최창익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용대 일부가 무정(武亭)의 연안계 항일무력과 합동하여 <화북조선청년연합회(華北朝鮮靑年聯合會)>로 통합되었다. 40년대에 들어서는 임시정부에도 참여하여 그 안에서 명실상부한 제 1 야당이 되었으나, 임시정부 내부에서 좌우의 파벌싸움을 일으켜 임시정부를 파국 직전까지 몰고 갔다. 46년 6월에 김원봉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민공화국>으로 개칭, 통일전선기구인 <민주주의민족전선>에 가담하였다.
첫댓글 이범석 장군이 평가를 잘 못받는 것이 좌익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여기에 그 근거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