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8주기 추모식에 5만이 모였답니다. 그때, 저는 선단 동 칠
성 부동산 지하실에서 세븐 게임장을 하던 때인데 세월이 훌쩍 지나갔네요.
공교롭게도 어제가 최 순실 박 근 혜 전 대통령께서 재판을 받는 날이어서
우리 언론이 카메라 초점을 어디로 잡아야할지 고민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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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날일을 나가서 점심을 먹다가 박대통령 표정만 잠깐 보았을 뿐입니다.
대통령이 올림머리를 했고 민낯을 했는데 특이한 것은 사복위의 수번이
스마일 빼지(나대블츠) 같았습니다. 수형번호는 직사각형의 흰색 바탕에
숫자를 매직으로 쓰기때문에 명찰을 컴퓨터로 새겨 다는 것만으로도 권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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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재판할 때 불쌍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고무신을 신기도 하지만,사복에
올림머리, 그리고 스마일 빼지를 단 수형자의 모습은 저도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누나는 ‘나 아직도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9시에 시작하는 재판을 위해 호송버스가 서울구치소에서 서초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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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아니니 경호가 붙지 않았고 보통은 검찰 내
유치장에서 순서를 기다리지만 대기 없이 바로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직, 주소, 생년월일, 국민재판을 받지 않겠습니다로 최소한의 대답 54
글자를 말했다나봅니다. 일반 수형자가 재판을 받을 때는 사동에서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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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떼 빼고 광내고 나오면 호송차를 타기 전에 수갑을 차고 굴비 엮듯이
포승줄을 매는데 박대통령은 혼자 호송차를 탔기 때문에 포승줄은 하지
않았고 수갑만 착용한 것 같습니다. 똑같이 수갑을 차더라도 포승줄을
묶고 줄줄이 굴비까지 엮으면 기분이 휠 엿 같습니다. 수척한 용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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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제 기분도 가라앉았습니다. 한편 문제인대통령이 참석한 추모제에
권 양숙 씨가 육개장을 300그릇이나 찬조했고 노무현대통령의 장남 건호가
삭발을 하고 와 눈길을 끌었는데 다른 뜻은 없고 "심하게 탈모가 생겨 본의
아니게 속살을 보였다. 건강상의 문제나 정치적인 이유나 사회 불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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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 마지막 순서로 참석자 일동이 '임을 위한 행진곡'
을 제창하는데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문대통령께서 추모사를 통해 "8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중략)노무현이란
이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의 상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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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면서 "우리가 함께 아파했던 노무현의 죽음은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들로
되살아났고, 끝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임기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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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이제 당신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립니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부럽습니다. 고인이 부럽고 이렇게 멋진
말을 하는 인간 문재인 이 부럽습니다. 주여, 내게는 언제나 봄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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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때문에 오랜 시간 앓고 있는 저는 성종이 부럽기만 합니다.
아비가 죽고 사가 생활할 때는 어미가 금지옥엽 키웠으며, 나이 12살이
되자 누나가 사춘기를 잡아줬습니다. 12살이면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여자 애들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 어린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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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정리를 자청했습니다. 13살에 한명회의 딸로 중전을 삼고 송이를
소실로 삼았으니 성종에게 있어 송이는 이것저것 첫 정입니다. 플라토닉과
에로스를 모두 송이에게 배웠다는 뜻입니다. 드라마 ‘인수대비’ 편을 보면서
꼬마가 뭘 알고, 뭘 하겠다는 지 웃음이 나왔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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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에 처음 자위를 했고 너무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돼서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꼬마신랑 성종과 송이누나의 러브스토리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꼬마신랑이 장가가던 날......,난 몰라, 난 몰라 집에 갈 거야. 엄마지지
먹으러 집에 갈 거야. 서방님, 서방님 울지 마세요. 누룽지 긁어 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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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동요를 들으면서 컸는데 할 일 없는 위인이 그냥 만든 가사라고
생각했고 만 이제야 감이 잡힙니다. 20세에 성종이 수렴청정을 끝내고
친국을 하게 되면서 세 명의 여자가 서로 ‘이 남자(성종)가 아니면 안 된
다‘고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데 짱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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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송이)이 왕(성종)의 침소에 쳐들어가서 손톱자국을 남긴 일도 생각
하기에 따라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송이가 바람피운 것도,
살인을 한 것도 아니고 나는 내 남자를 원한다는데 그것을 하나 이해
못합니까? 저는 그런 여자 있으면 상을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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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란 칠거지악이지만 내 사랑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여인의 절규입니다.
제가 원래 천박해서 그런지 송이스타일은 내 스타일입니다. 본시 편한 여자란
섹스어필하는 여자를 말합니다. 사랑이란 구차하고 치사하고 집착과 욕망......,
등등의 징글징글한 속성이 있다는 것을 가만하면 송이의 죄목은 성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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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 죄일 것입니다. 아, 나도 송이처럼 사랑을 하고 싶어집니다.
한명회의 본처는 노랑머리 이 재 은 양이 맡았는데 걸쭉한 시골 아낙으로
더 이상 망가질 수 없는 섹시 걸의 모습입니다. 옛날에는 여자 둘이서
형님 동생하면서 잘도 지내데? 설마 요새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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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 세 명이서 노후를 보내도록 만든 곳이 창경궁입니다. 창경궁에서 저는
결혼식 야외촬영을 했는데 금혼식은 경복궁 교태전에서 해야겠습니다.
세종이 세조를 놔두고 문종에게 위를 넘겨준 것이나 문종이 끝까지 인터벌을
벌이다가 단종을 세운 까닭에 세조는 가슴에 응어리가 많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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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본인도 한명회와 인수대비를 죽여서라도 예종에게 보위를 넘겨주고
싶어 했습니다. 태조는 방석 이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방원 이는 정도전
뿐 아니라 아예 왕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세종이 그리고 또 문종과 단종이
그랬던 것처럼 세조역시 자신의 아들에게 보위를 물려주기 위해 사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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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식은 내 분신이니까요. 대왕대비랑 왕대비의
싸움은 고부간갈등의 원조일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과거 울 어머니에게
대들던 제수 씨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제 아내는 한명회의 부인과고
제수씬 인수대비 과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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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는 그것이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한명회부인이 정겹습니다.
여걸 왕대비의 은퇴 후 고부간에 온천욕을 갔다가 정의 황후가 승하하십니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입관식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지금도 두 분 염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지방을 쓰고 신위를 모셔 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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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까지 하나도 무섭지도, 낯설지도 않습니다. 단종은 목을 매서 죽이고
폐비 윤 씨는 사약을 먹여 죽이는 방식이 뜨끔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사형제
폐지 여론이 높지만 아직까지는 교수형을 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군대에서는 사형시킬 때 가슴에 타깃을 달고 m16으로 총살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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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킵니다만 저는 사약보다는 총살형이, 현대식 교수형보다는 재래식 교수형이
더 좋아 보입니다. 저는 아직 죽을 준비가 덜 된 사람이라 70살이후에 교통사고
를 당해서 죽고 싶습니다. 소품이나 효과음 그리고 미장센이 익숙하게 느껴
지는 이유는 아마도 감독이 내 나이쯤 되었을 것입니다. 아참, 소복을 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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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이 더 무서운 것도, 여자가 한을 품으면 내린다는 오뉴월 서릿발도
장 희빈이나 폐비 윤 씨 때문이 아닐까요? 정의 왕후의 긴긴 수렴청정과
파 평 윤 씨의 질긴 생명력은 보수의 생명력 같았고요. 욕하면서 배운다고
끝내 인수대비도 시어머니의 대를 이어 보수가 되었으니 내 속에도 보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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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4대강 비리, 정유라, 정윤회, 우병우, 방산비리 등 산적한 적폐청산이 남아
있는데 보수가 문제인 정권에게 60%를 지지해주고 있는 상황에서 연산이
지어머니 복수로 인생을 망쳐버린 역사를 교훈삼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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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든 성종의 태평시대는 보수의 공(순기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연산은 보수가 낳은 가장 큰 역기능입니다. 역사에 죄인의 아들이란
족쇄를 채우고자 폐비 ‘보기’ 전에 궁서 한 인수대비는 죽음도 컨트롤 하는
슈퍼울트라 캡 짱입니다. 연산을 양자로 삼고 키워준 큰어머니(월산대군 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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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매었고, 2년 후 연산의 외삼촌 박원종이 중종반정을 일으켜 조카(진성
대군)에게 왕위를 바친 것까지는 모두 다 인수대비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산을 왕으로 세운 아버지 성종이나 손자를 살리기 위해 며느리를
죽인 인수대비는 둘 다 자식 편에서 최선의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과연 보수는 죽은 것일까?
2017.5.24.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