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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전,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자신의 저서 [제2의 성]에서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
'우리는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
보부아르의 이 경구는 페미니즘 운동의 표어 그 자체가 되었으며
현재도 페미니스트들과 PC 운동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경구다.
그들의 말대로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여자다운 행동을 강제했기에 그들은 여성이 된 것일까?
아니면 성 정체성은 타고날 때부터 생득적으로 정해지는 것일까?
존스홉킨스 대학의 의학심리학 교수
"성역할"로서 "젠더"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양반이자
매드 사이언티스트
1973년
미국과학진흥협회의 연례 학회에서 존 머니라는 사람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실험 내용을 발표했다.
평소 그는 생물학적 성별이 '성 정체성 gender identity'(머니가 만든 용어다)을 좌우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부모와 사회와 문화가 아기에게 성행동 양식을 부여하는 것이다."
"성 정체성은 태어날 땐 중성이며 생후 18개월까진 바꿀 수 있다."
유전자보단 양육 환경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며 당대의 주류 학설이었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약 1,000명 중 1명꼴로 생식기가 남성의 것인지 여성의 것인지
불분명한 신생아가 태어난다.
여자아이인데 클리토리스가 너무 커서 페니스처럼 보이거나,
남자아이인데 페니스가 너무 작거나 아예 없고 잠복고환증인 경우 등이 있다.
성별이 불분명한 신생아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곤혹스러워하곤 했다.
1973년 즈음 사람들은 대체로 머니의 의견을 (어쩌면 기쁘게) 받아들인 상태였다.
명성이 자자한 존스홉킨스 대학 소속인 점도 한몫했을 테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부모와 의사들의 근심 걱정을 해방시켜주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페니스와 고환을 떼어내고 가짜 질을 만드는 수술이
신생아에게 페니스를 만들어주는 수술보다 훨씬 간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신생아의 성별을 결정하는 수술을 할 때 마음 편히 쉬운 쪽을 선택할 수 있었다.
성 정체성을 만드는 것은 사회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존 머니의 주장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머니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존 머니의 이론은 당연하게도 실험을 통해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정상인 두 신생아의 생식기를 반대 성별로 바꾸는 수술을 해야 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비윤리적 수술을 한다 쳐도
대조군(수술한 신생아들과 같은 환경에서 원래 타고난 성기를 가지고 생활할 신생아)이 없기 때문에
실험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브라이언과 브렌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다
브렌다는 브루스의 개명 후 이름이다
캐나다의 일란성 쌍둥이 브루스와 브라이언은 1965년 둘 다 완벽하게 정상인 남아로 태어났다.
하지만 어린 브루스가 신생아 때 포경수술을 받다가 의사의 실수로 페니스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된다.
절망한 부모들은 북미의 온갖 유명한 의사들을 다 찾아다녔지만 소작기로 태워버린 성기의 재건은 불가능했다.
이때 만나게 된 것이 존 머니고 부모는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머니는 브루스의 운 나쁜 사고가 대조군이 존재하는 이상적 실험을 할 절호의 기회임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브루스와 브라이언은 유전자가 같았고, 같은 자궁에서 태어났으며, 같은 부모와 같은 가정에서 자랄 것이었다.
또한 브루스는 의료사고 전까지 완벽하게 정상적인 남아였으므로,
생식기로 성별을 구분할 수 없거나 자웅동체인 경우와 달리 '남성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브루스의 페니스와 고환을 절제하고 여성으로 성전환시킨 후 여성으로 키운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브루스는 전형적인 여자처럼, 브라이언은 전형적인 남자처럼 행동한다면,
생물학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와 교육이 인간의 성행동을 결정한다는 머니의 이론은 입증되는 것이었다.
그는 조언했고
레이머 부부는 머니의 조언을 따랐다.
브루스를 거세하고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을 투여했다.
이름을 브렌다로 바꾸고 여자아이로 키웠다.
1973년 존 머니가 미국과학진흥협회의 연례 학회에서 발표한 실험 내용이 바로 이 쌍둥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머니는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브라이언은 일반적인 8살 소년처럼 거칠게 뛰어놀았고,
브렌다는 원피스를 입고 인형 놀이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학회가 끝난 뒤 [타임] 지에서는 머니의 발표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는 남성적, 여성적 행동의 전통적 패턴을 바꿀 수 있다는
여성 해방주의자들의 주요 견해를 탄탄하게 뒷받침했다.
··· 머니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거의 모든 차이점은 문화적으로 결정되며
사실상 선택의 문제라고 확신하고 있다.'
선구적 페미니스트 샬럿 퍼킨스 길먼은 1898년 [여성과 경제]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여성적 마음이라는 것은 없다. 뇌는 성별이 구분되는 기관이 아니다. 차라리 여성의 간에 대해 논하자.'
이제 [타임]의 기사는 길먼과 보부아르가 옳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어깨 위로는 남녀 사이에 중대한 선천적 차이가 없다는 과학적 증거로
머니의 연구를 환영했다.
머니의 발표 이전부터 성별 정체성이 선천적으로 형성된다는 논문이 다수 나왔고
머니의 발표 직후에도 나왔으며 이후에도 나왔다.
탈모인들의 희망 5-알파 환원요소와 성 호르몬, 정체성과 관련된 논문들이 이때 등장했다.
존 머니의 발표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학자들도 많았으나 모두 가볍게 묻히거나 격렬히 공격받았다.
양육에 의해서 성별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이론이 증명됐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 실험 결과를 정설로 받아들였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인용하고 응용하고 적용하였다.
명망있는 의학 교재에도 그의 케이스 스터디가 실리며 그의 의견은 절대적인 의학 지식으로 자리 잡아 갔다.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이 학설을 기반으로 '치료'되었고 '교정'되었으며
성 정체성이 불분명한 신생아들의 성기가 쉽고 편리하게 갈려나갔다...
의사들은 자웅동체 영아나 왜소음경, 총배설강뒤집힘증 등의 환자에게도 마음 편히 시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브렌다는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었을까?
그럴 리가...
존 머니는 진실을 숨기고 있었다.
머니의 원대한 실험은 매끄럽게 흘러가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대재앙 수준이었다.
진실은 불편했다.
브렌다는 학회 때 발표한 8살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남성적 행동을 했다.
유아기 때부터 병정놀이나 칼싸움을 하며 또래 남자아이처럼 놀길 좋아했고
드레스나 인형 놀이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브라이언이 자기 장난감 자동차와 트럭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자,
브렌다는 용돈을 모아 따로 자기 것을 샀다. 브라이언과 함께 놀려고 장난감 총도 샀다.
화장실에서도 서서 소변을 보는 등 남자처럼 행동했다.
부모는 브렌다를 여성으로 기르기 위해 행동을 교정하려 하였으나
브렌다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느껴졌으며 이로 인한 성적 미달로
초등학교에 겨우 입학할 수 있을 정도였다.
존 머니는 초등학생도 안된 아이에게 성별 구별을 주입식으로 세뇌하려 들었다.
질 성형 수술을 강권했으며,
쌍둥이 동생인 브라이언을 끌어들여 쌍둥이 간에 남녀의 성관계 장면을 모사하도록 강요했다.
임산부의 분만 장면 같은 쇼킹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기준으로는 당장 아동학대로 징역형이지만 70년대 당대의 윤리기준은 그렇게 허술했다.
당연히 이딴 교육을 한다고 존 머니가 부모에게 알릴 리는 없었다.
브렌다는 주치의와의 상담 시간을 극도로 꺼려 하며 여러 번 부모에게 가기 싫다고 말했지만
어린이의 투정 정도로 생각한 부모 때문에 주치의와의 상담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또래 집단과 어울리지 못하며 스트레스를 받던 브렌다...
사춘기가 오면서 브렌다가 남성적인 모습을 띄기 시작하자 상태는 더 나빠졌다.
여성 집단에서는 선머슴 같다고 따돌림당하고
남성 집단에서는 여자애라고 따돌림당했다.
머니는 브렌다에게 호르몬 요법과 질 수술을 강권했다.
호르몬 요법으로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고
남자가 여자처럼 꾸미고 다닌다고 놀림당하며
몸과 마음이 한계까지 내몰린 브렌다는
한 번만 더 머니를 만나라고 하면 죽어버리겠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브렌다 가족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부모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브라이언에게
아버지가 브렌다에게...
진실을 알게 된 브라이언은 크게 충격을 받고 울분을 토했지만
브렌다는 의외로 침착했다고 한다.
"내 원래 이름이 뭐였나요?"
그가 진실을 알게되고 처음으로 했던 말이다
<As Nature Made Him: The Boy Who Was Raised as a Girl>에서 인용
한국에는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14살...
진실을 알게 되고
그는 남자로서 살기로 결심했다.
이름도 브렌다에서 데이비드로 바꿨고
이후 호르몬 요법으로 생긴 유방을 제거하고 가짜 페니스와 고환도 만들어 붙이는 수술을 받았다.
남성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도살장에서 일했으며
홀로 여러 딸들을 키우던 미혼모와 결혼해 같이 아이를 키웠다.
밀턴 다이아몬드
1997년
그와 키스 시그먼슨은
학술지[소아청소년의학 아카이브]에
머니의 승리를 무너뜨리는
논문을 발표했다.
존 머니의 미친 사기극을 밝히는데는 17년이 걸렸다.
90년대 초반부터 다이아몬드 박사와 브렌다의 근황을 궁금해하던
학자, 사회 운동가, 미디어 등에 의해 진실이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했다.
1997년
영국 BBC판 추적 60분 [호라이즌] 제작진은 브렌다의 이야기를 온 세상에 구체적으로 공개했고
머니와 그의 주장에 근거한 심리학/정신의학 이론들은 몰락했다.
존 머니는 이 폭로에 대해
“남성성과 여성성이 유전자 단계에 새겨져 있어서 여자는 침대와 부엌에만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익 언론과 반여성주의자들의 음모”라고 죽을 때 까지 주장했다.
한편 데이비드/브렌다의 동생이었던 브라이언은 어땠을까?
어린 시절부터 브렌다만을 신경쓰던 부모님의 상대적 무관심으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진실을 알게 된 이후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인지 우울증에 걸려 버렸다.
결국 조현병 진단을 받고 정신과 약으로 버티는 신세가 되었으며 항우울증 치료제 과다 복용으로 2001년
3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04년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상심이 더 컸을지 파경으로 인한 상심이 더 컸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안타깝게도 그는 지난날의 괴로움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39살의 데이비드 레이머는 엽총으로 자살했다.
세 번째 자살 시도였다.
밀턴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아직도 머니의 이론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일부 대학의 여성학과에서는 머니가 주장한 개념이 반영된
'성의 사회적 형성'같은 상투적 표현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데이비드 레이머는 남자의 뇌를 지녔기에 항상 남자였다.
생식기 모양과 무관했다.
고도의 사회화를 통해서도 그 사실은 바꿀 수 없었다.
존 머니는 2006년 사망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이 일에 관련된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 네이버 블로그 써놨던거 퍼오려니 다음 글쓰기가 얼마나 구린지 체감이 되네요 ㅋㅋ
책 읽다가 열 받아서 오랜만에 공 들여 써봤습니다.
여기 저기 마음껏 퍼가시길...
첫댓글 성정체성 뿐만아니라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죠.....
정신나간 양반이 시대를 잘만나 페미들 등에업고 선구적 지식인으로 탈바꿈했었네요
저건 요즘페미들이 하는 주장이라 정반대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기우선주의를 주장하거든요.
@two2019 해외는 모르겠는데 국내는 그렇겠죠.
같은 사회적 약자 운운하며 뭉쳤지만 페미애들 지분이 독보적이니 뭣하러
순수하지도 않은 자칭 명예여성들과 겸상합니까ㅋ
와... 믿음에 사실을 끼워맞추는군요. 인권유린은 기본이고.
다른걸 검색하다가 이 글을 읽게 되었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혹시 어떤 책을 보고 쓰신 글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도 나중에 시간될때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