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편지(15)
그리운 어머니의 시 모음
+ 히말라야의 노새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어머니의 房
어머니의 방은 토굴처럼 어둡다 어머니, 박쥐떼가 둥우리를 틀겠어요, 해도 희미한 웃음 띤 낯빛으로 괜찮다, 하시고는 으레 불을 켜시지 않는다 오랜 날 동안 어둠에 익숙해지신 어머니의 몸은 심해에 사는 해골을 닮은 물고기처럼 스스로 빛을 뿜는 발광체가 되신 것일까, 흐린 기억의 뻘 속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바지락, 동죽, 가무락조개, 여직 지워지지 않는 괴로움과 마지막 남은 혈기 다해 가슴속에 푸른 해초 섞어 끓이는 바다에서의 半生을 반추하는 데는 차라리 짙은 어둠 속이 낫다는 것일까, 얼굴 가득 덮인 검버섯 무수한 잔주름살 속으로 잦아드는 낯선 운명을 더욱 낯설게 덧칠하는 치렁치렁한 어둠 속, 무엇일까, 옻칠된 검은 장롱에 촘촘히 박힌 자개처럼 빛나는 저것은 (고진하·목사 시인, 1953-)
+ 어머니의 고무신
어머니 밭에서 오시기 전 사립문은 싸르락싸르락 울고 어머니 사립문 열고 들어오실 때는 울지 않아 머릿수건 풀고 허리 펼 사이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면 꿈결인 듯 밥상이 들어오고 마지막 아버지 숭늉까지 만들어야 잠시 방에 앉는 어머니 온종일 품 파느라 호미 들고 앉은뱅이로 뜨거운 밭 오갔을 어머니 고단한 숟가락에 밥보다 졸음이 먼저 올라앉네 시큰한 콧날 괜스레 움켜쥐고 부엌 문지방에 목 늘어뜨리고 밥상을 건너다보는 백구의 엉덩이를 발로 차 내쫓고는 후덥지근 몰려드는 배나무밭의 더운 바람에 몸을 낮추니 댓돌에 벗어놓은 어머니의 고무신 바닥으로 가득한 흙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두 손으로 어머니의 고무신 털어내니 사립문 덩달아 싸르락싸르락 울고, (최나혜·시인, 강원도 화천 출생)
+ 어머니 발자국
걸을 수 없을 만큼 다리가 아파 흉내조차 낼 수 없어 눈물만 쏟아내야 하시는 어머니! 참아낸 가슴에 피를 토해내야 했던 어머니를 헤아리지 못했다. 불효여식은.
비수 같은 언어들을 쏟아내고도 나 혼자서 잘 먹고 잘 자란 줄 알았던 것은 어머니의 골절 속에 흐르지 않는 血이 될 줄을 몰랐다.
주무시다 몇 번씩 이불을 덮어주시던 것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고. 밥알이 흩어져 떨어지면 주워먹어야 하는 줄 알았고. 생선을 먹으면 자식을 위해 뼈를 발려서 밥숟가락 위에 올려줘야 하는 줄 알았고. 구멍 난 옷을 입어야 어머니인 줄 알았다 .
밤이면 몸뚱이가 아파 앓는 소리가 방안을 휘감아도 그 소리가 관절염 속에 파묻힌 고통인 줄 몰랐다.
걸을 수 없어 질질 끌고 다니시는 다리를 보고서야 알았다. 자나깨나 자식이 우선이었고 앉으나 서나 자식을 걱정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줄 알았다.
아픈 말들을 주름진 골 사이로 뱉어 냈을 때 관절염이 통증을 일으킬 만큼 ˝나 같은 자식 왜! 낳았냐고˝ 피를 토하게 했던 가슴 저미는 말들. 너하고 똑같은 자식 낳아봐라 네 자식이 그런 말하면 얼마나 피눈물 나는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가 미웠다. 씻지 못할 철없는 말들을 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어머니 마음을 알려 하지만 전부는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뼈가 다 달아서 걸을 수 없어 고통과 사투를 벌이는 어머니! 제 다리라도 드려서 제대로 걸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피가 마른 눈물을 어이 닦아 드려야합니까? 어머니의 발자국을 찾고 싶습니다. 어머니! (애월 김은영·시인, 강원도 원주 출생)
+ 매듭
택배로 온 상자의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방식으로 단단히 묶인 끈 보다못한 아이가 칼을 건넨다
늘 지름길을 지향하는 칼 좌석표가 있다는데 일부러 입석표를 끊어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서서 가시며 그 근소한 차액을 남기시던 어머니는 평생 지름길을 모르는 분이었다
상자 속엔 가을걷이한 곡식과 채소가 들어있을 것이다 꾹꾹 눌러도 넘치기만 할 뿐 말끔히 닫히지 않는 상자를 가로 세로 수십 번 이 비닐끈으로 동여매셨을 어머니의 뭉툭한 손마디가 떠올라 칼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힘이 들수록 오래 기도하시던 어머니처럼 무릎을 꿇고 밤이 이슥해지도록 상자의 매듭과 대결한다 이는 어쩌면 굽이진 어머니의 길로 들어가 아득히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린 날에는 이해되지 않던 험한 길 굽이마다 붉게 저녁 노을로 걸린 어머니의 생애 옹이진 어머니의 매듭 같던 암호는 난해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풀어내고 보니 이음새도 없이 어머니의 길은 길고 부드럽기만 하다 (장흥진·시인)
+ 거룩한 사랑
성(聖)은 피(血)와 능(能)이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피를 묻혀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깔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보았다
서울 달동네 단칸방 시절에 우리는 김치를 담가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막일 다녀오신 어머님은 지친 그 몸으로 시장에 나가 잠깐 야채를 다듬어주고 시래깃감을 얻어와 김치를 담고 국을 끓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퍼런 배추 겉잎으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국을 맛본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를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 (박노해·시인, 1958-)
+ 연탄 갈아넣기 - 어머니 생각
허리 구부려 연탄아궁이에 연탄 갈아넣기는 어머니의 몫이었다 웬일로 연탄은 꼭 새벽에만 갈아넣게 되었던지 웬일로 그때는 또 그렇게 추웠던지 영하 10도가 넘는 새벽 두 세시 사이에 어머니는 일어나 연탄을 갈러 나가셨다 나는 알면서도 잠자는 척 이불을 덮어썼다 그리고 빈말로 어머니를 속였다 왜 저를 깨우시지 않고 연탄은 또 왜 꼭두새벽에 갈아넣어야 해요 그래, 그래야 불꽃이 좋아 아침밥 짓기가 좋지 어쩌다 내가 연탄을 갈러 나가면 어머니는 질겁해 따라 나오시며 너는 연탄내 쐬면 안돼 또 연탄은 구멍을 잘 맞춰야 하는데 너는 안돼 나를 밀쳐내시고 허리를 구부정, 연탄집게로 더듬더듬 연탄을 가시는데 폭 타버린 밑탄을 들어내고 불꽃이 남은 윗탄을 밑탄으로 앉히고 그 위에 새까만 새탄을 밑탄과 구멍을 맞춰 얹으시고 연탄아궁이 구멍을 확 열어 놓으셨다 활활 불꽃을 타고 올라오는 연탄내 때문인지 연신 쿨럭쿨럭 밭은 기침을 뱉으시며
어머니 용서하세요, 어머니 돌아가신 뒤 기름보일러에서 가스 보일러로 바뀌어 지금은 연탄 갈 일 없어졌어요 (정대구·시인, 1936-)
+ 어머니라는 말
어머니라는 말을 떠올려보면 입이 울리고 코가 울리고 머리가 울리고 이내 가슴속에서 낮은 종소리가 울려나온다
어머니라는 말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웅웅거리는 종소리 온몸을 물들이고
어와 머 사이 머와 니 사이 어머니의 굵은 주름살 같은 그 말의 사이에
따스함이라든가 한없음이라든가 이런 말들이 고랑고랑 이랑이랑
어머니란 말을 나직히 발음해보면 입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웅얼웅얼 생기는 파문을 따라 보고픔이나 그리움 같은 게 고요고요 번진다
어머니란 말을 또 혀로 굴리다보면 물결소리 출렁출렁 너울거리고 맘속 깊은 바람에 파도가 인다
그렇게 출렁대는 파도소리 아래엔 멸치도 갈치도 무럭무럭 자라는 바다의 깊은 속내 어머니라는 말 어머니라는
그 바다 깊은 속에는 성난 마음 녹이는 물의 숨결 들어 있고 모난 마음 다듬어주는 매운 파도의 외침이 있다 (이대흠·시인, 1968-)
+ 사모곡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느님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
아직도 몸 아프면 날 찾냐고 쯧쯧쯧 혀를 차시나요. 아이구 이꼴 저꼴 보기 싫다시며 또 눈물 닦으시나요.
나 몸 아파요, 어머니 오늘은 따뜻한 명태국물 마시며 누워있고 싶어요. 자는 듯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부르튼 입으로 어머니 부르며 병뿌리가 빠지는 듯 혼자 앓으면 아이구 저 딱한 것 어머니 탄식 귀청을 뚫어요.
아프다고 해라 아프다고 해라 어머니 말씀 가슴을 베어요. (신달자·시인, 1943-)
+ 어머니의 밥
'얘야 밥 먹어라' 어머니의 성경책 잠언의 몇 절쯤에 혹은 요한계시록 어디쯤에 금빛 실로 수를 놓은 이 말씀이 있을 거다.
'얘야, 밥먹어라 더운 국에 밥 몇 술 뜨고 가거라'
아이 낳고 첫국밥을 먹은 듯, 첫국밥 잡수시고 내게 물리신 당신의 젖을 빨고 나온 듯 기운차게 대문을 나서는 새벽.
맑은 백자 물대접만한 유순한 달이 어머니의 심부름을 따라 나와서 '채할라 물마셔라, 끼니 거르지 말거라' 눈 앞 보얗게 타일러 쌓고
언제부터서인가 시원의 검은 흙바닥에서부턴가 마른 가슴 헐어내는 당신의 근심 평생토록 밥을 먹이는 당신의 사랑. (이향아·시인, 1938-)
어머니의 노래 잠을 자다 눈을 뜨니 바지를 꿰매는 어머니 얼굴이 호롱불에 흔들린다 이내 노래를 부르신다 그때 부르시던 어머니 노래가 눈물인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치마를 입을 걸 그랬나 봅니다 밭을 매다 말고 낫을 들고 뛰어가시던 어머니 쥐를 때려잡으며 외치신다 " 우리 새끼들 먹을 것도 없다, 이 쥐새끼들아 " 그때 외치시던 어머니 고함이 가마솥이 흘리는 눈물인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가마솥에 불을 지피지 말 걸 그랬나 봅니다! 이제는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차라리 노래라도 불러 주세요 아니 귀청 터지게 고함이라도 쳐주세요! (박의준)
+ 어머니의 지붕
어머니는 지붕에 호박과 무를 썰어 말렸다 고추와 콩꼬투리를 널어 말렸다
지붕은 태양과 떠도는 바람이 배불리 먹고 가는 밥상이었다
저녁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초승달과 서쪽에 뜨는
첫 별이 먹고 나면 어머니는 그것들을 거두어들였다
날씨가 맑은 사나흘 태양과 떠도는 바람
초승달과 첫 별을 다 먹이고 나서
성자의 마른 영혼처럼 알맞게 마르면
어머니는 그것들을 반찬으로 만들었다 우리들 생의 반찬으로! (이준관·시인, 1949-)
+ 어머니
가을 들녘에 내리는 황혼은 내 어머니의 그림자 까마득한 옛날 이미 먼 나라로 가신, 그러나 잠시도 내 곁을 떠난 적 없는 따스한 햇볕처럼 설운 노래처럼 언제나 내 곁을 맴도는 어머니의 그림자 (김동리·소설가이며 시인, 1913-1995)
+ 오늘도 어머니는
오늘도 어머니는 땅이 좋아 땅에 사신다 폭포처럼 굽은 허리 땅에 묻으시고 콩대로 어우러져 고구마 넝쿨로 어우러져 땅이 되셨다가 어머니, 저 왔어요 얼른 알아듣고 일어서는 저 폭포의 빛나는 물살 마침내 무지개로 걸리는 어머니의 땅 (허형만·시인, 1945-)
+ 어머니 생각
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 우리 부부 외출할 때나 출근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네 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쓸어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 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 풀린 손 내미시며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 하루 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 (이시영·시인, 1949-)
+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어머니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면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되어 있다. 우리들이 항상 무엇을 없음에 절실할 때에야 그 참모습을 알게 되듯이
어머니가 혼자만 아시던 슬픔 그 무게며 빛깔이며 마음까지 이제 비로소 선연히 가슴에 차오르던 것을 넘쳐서 흐르는 것을
가장 좋은 기쁨도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 않으려는 따신 봄볕 한 오라기, 자기 몸에는 걸치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 옛적 마음을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저도 또한 속 깊이 그 어머니를 갖추고 있나니 (이성부·시인, 1942-)
+ 늘 간절한 어머니 생각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선한 눈빛 부드러운 손길, 따뜻한 사랑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신보다 자식을 더 생각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풍성합니다.
어머니의 자식도 나이가 들어가며 세상을 살아가면 갈수록 어머니의 깊은 정을 알 것만 같습니다.
늘 뵙는 어머니지만 뵙고픈 생각이 간절해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도 내 생각을 하고 계셨답니다.
그 무엇으로도 다 표현하지 못할 어머니의 사랑 그 사랑을 갚는 길이 없어 늘 어머니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어머니의 섬
늘 잔걱정이 많아 아직도 뭍에서만 서성이는 나를 섬으로 불러주십시오. 어머니
세월과 함께 깊어가는 내 그리움의 바다에 가장 오랜 섬으로 떠 있는 어머니
서른세 살 꿈속에 달과 선녀를 보시고 세상에 나를 낳아주신 당신의 그 쓸쓸한 기침소리는 천리 밖에 있어도 가까이 들립니다
헤어져 사는 동안 쏟아놓지 못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바람과 파도가 대신해주는 어머니의 섬에선 외로움도 눈부십니다 안으로 흘린 인내의 눈물이 모여 바위가 된 어머니의 섬 하늘이 잘 보이는 어머니의 섬에서 나는 처음으로 기도를 배우며 높이 날아가는 한 마리 새가 되는 꿈을 꿉니다. 어머니 (이해인·수녀 시인, 1945-)
어머니
당신의 이름에선 새색시 웃음 칠한 시골집 안마당의 분꽃 향기가 난다
안으로 주름진 한숨의 세월에도 바다가 넘실대는 남빛 치마폭 사랑
남루한 옷을 걸친 나의 오늘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기워 주신 꽃골무 속에 소복이 담겨 있는 幼年의 추억
당신의 가리마같이 한 갈래로 난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나의 연두 감사 저고리에 끝동을 다는 다사로운 손길
까만씨알 품은 어머니의 향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이해인)
어머니
그럭저럭 견딜 만한 인생살이 같다가도 세상살이가 힘겨워 문득 쓸쓸한 마음이 들 때 나지막이 불러보는 세 글자
어
머
니
당신의 그 여린 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지어낸 이 몸 이 소중한 생명이기에 꽃잎 지듯 쉽게 무너질 수는 없어요 (정연복)
+ 어머니의 편지
딸아, 나에게 세상은 바다였었다. 그 어떤 슬픔도 남 모르는 그리움도 세상의 바다에 씻기우고 나면 매끄럽고 단단한 돌이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돌로 반지를 만들어 끼었다. 외로울 때마다 이마를 짚으며 까아만 반지를 반짝이며 살았다. 알았느냐, 딸아
이제 나 멀리 가 있으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뜨겁게 살다 오너라. 생명은 참으로 눈부신 것. 너를 잉태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했던가를 잘 알리라. 마음에 타는 불, 몸에 타는 불
모두 태우거라 무엇을 주저하고 아까워하리 딸아, 네 목숨은 네 것이로다. 행여, 땅속의 나를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목젖을 떨며 울지 말아라 다만, 언 땅에서 푸른 잎 돋거든 거기 내 사랑이 푸르게 살아 있는 신호로 알아라 딸아,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문정희·시인, 1947-)
+ 어머니
생의 끝자락에서 고운 자태는 사라지고 이마엔 주름진 모습만 보이시는 어머니
사랑으로 꽃을 피우시고 인내로 열매 맺으신 소중한 내 어머니 건강히 지내시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이성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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