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해였다.
I had one difficulty after another that year.
이제 검은호랑이가 검은토끼에 쫓겨 달아나고 있다.
호랑이는 토끼보다 덩치가 커지만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한다.
세상 사람도 모두 때가 되면 시절인연 따라 떠나가게 된다.
청산의 유수를 머물게 할 수 없듯이 가는
세월도 잡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맘때가 되면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갔다고 한다.
세월은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흘러가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우물쭈물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계획은 거창하였으나 결과가 창대하지 못하면
그 계획을 수정해야 하지만
어리석게 변명과 핑계로 일관하면 희망이 없다.
사람이 신중함이나 대책이 없이
무데뽀(muteppo) 논리로 세상살이를 하면
후회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세상사람 어느 누구나 한 해 동안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동일하게 8,760 시간이다.
이 시간 중에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죄인이 되고
누구는 바보나 환자가 되기도 한다.
누구는 소원을 성취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는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사람도 있다.
제야(除夜:섣달의 그믐밤)의 종은,
섣달그믐날 밤 12시에,
서울의 보신각이나 각 사찰에서 울리는 종이다.
매년 보신각에서는 33번,
각 사찰에서는 108번씩 울린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을
불전사물(佛殿四物.寺中四物)이라 한다.
법고는 땅을, 목어는 물을, 범종은 불을,
그리고 운판은 바람을 각각 상징하고,
또 법고는 육지 중생, 목어는 어류 중생,
범종은 지옥 중생,
운판은 허공 중생을 제도하는 의미를 가진다.
중생(衆生)이란,
부처의 구제 대상이 되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이나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모든 중생은 불전사물의 소리를 듣는 순간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각 사물(四物)의 소리가 상징하는 의미는
참으로 깊고도 넓다.
범종(梵鍾)소리는,
천상과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들의 영혼을 제도하고 구제하는 의미가 있다.
본래 범종은 대중을 모으고 때를 알리기 위하여 사용했으나
조석예불이나 의식을 치를 때도 치게 된다.
범종은 치는 횟수에 따라 각기 그 의미가 다른데,
28번은,
부처로 부터 혜능대사(慧能. 六祖大師)까지 이어진
법맥이 28명이란 뜻이고,
33번은,
33천(도리천 忉利天)이라는 불교의 세계관을 의미하며,
108번은,
백팔번뇌를 타파하고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의미의 구원의 소리이다.
법고(法鼓. 북)소리는,
땅위에 사는 모든 생명과
가축이나 짐승을 제도하는 의미이며,
불법을 널리 전하는 동시에
중생이 번뇌를 물리치고 해탈에 이르게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북의 몸통은 나무로 만들고,
두드리는 면의 한쪽은 수소(수컷인 소) 가죽을,
다른 한쪽은 암소 가죽을 대야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
또한 법고(북)소리는,
불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울려
“일심을 깨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중생들이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온갖 번뇌를 없애는 것을,
마치 진을 치던 군사들이
북소리에 따라 적군을 무찌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북을 칠 때는 십자(十)를 그리면서 친다.
법화경 화성유품에는,
"하늘의 범천이 부처님께 간청하시되, 정법(正法)의 북을 울리시고,
법비(法雨)를 내리시어 중생을 제도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하였다.
목어(木魚)소리는,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과
물고기들의 영혼을 제도한다는 의미이다.
목어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배 부분을 파내고 막대로 그 속을 두드리면서 소리를 낸다.
운판(雲板)소리는,
운판은 구름 모양으로 만들어진 철판이나 청동판으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천도(遷度)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본래 대중들에게 공양시간을 알릴 때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의식용으로 예불 때 다른 사물(四物)과 함께 친다.
비를 머금은 구름 모양에 주술적인 의미를 담아
선종계통의 사찰에서는
화재를 막는 의미로 부엌 앞에 걸어 두기도 한다.
또한 바람에 흔들려서 소리를 내는
풍경(風磬.풍령風鈴)은,
경세(警世:세상 사람들을 깨우침)의 의미를 지닌 도구로,
수행자의 방일(放逸)이나 나태함을 깨우치는 역할을 한다.
풍경 속의 방울에는 물고기 모양의 얇은 금속판이 매달려 있다.
물고기는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나 눈을 감지 않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듯,
수행자도 물고기처럼 잠을 줄이고 항상 깨어있어야 하며
쉬지 않고 부지런히 도(道)를 닦으라는 뜻이다.
스님들이 사용하는 목탁(木鐸) 역시
물고기의 눈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절 추녀 풍경 속에 물고기를 달아놓은 이유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삼아
한 마리 물고기를 매달아 놓음으로써
그곳은 물이 한없이 풍부한 푸른 바다가 되며
그 바다에 한 마리 물고기가 노닐고 있게 된다.
풍부한 물은 어떠한 큰 불도 능히 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나무로 지은 사찰의 목조건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상징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아침저녁으로 올리는 예불 준비의 하나로,
주로 대웅전에서 종(쇠로 만든 종)을 치며
진언(眞言)이나 법계(法戒)를 기리어 말하는(頌) 것을
쇳송(종송 鍾頌) 이라 한다.
새해에는 이 <쇳송소리>를 듣는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호(加護)가 충만(充滿)하며
만사형통(萬事亨通) 하기를 바란다.
( everything turns out as one wished )
나는<쇳송소리>가 참 좋다. 땡~ 땡~
누구에게나 우연히 다가오는 행운은 없다.
운이란 준비와 기회의 만남이다.
그러니 내가 올해 금대산(金垈山)에서
당신을 만난 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세렌디피티이다.
세런디피티( serendipity)는
"행운"(幸運)을 뜻하는 말로,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뜻밖의 발견, 운수 좋게 새로운 발견,
재수 좋게 예기치 않게 우연히 찾아 낸 것을 뜻하는 말이다.
흰돌국제선교센터 대표 이광복(76) 목사는,
지난해 “삼위일체통합신학대전”을 완간했다.
전체 200 권, 5만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먼저 하나님의 진리를 보여주고
입증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목사는 그동안 1060 권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국내외 목회자를 대상으로 무료 세미나를 진행해왔다.
지금은 과학혁명의 시대이며
인간이 신(神)이 되려고 하는 “호모 데우스”의 시대이다.
호모 데우스(Homo Deus)란,
( 라틴어 " Homo "는 사람 또는 인간을 의미하고
" Deus "는 신을 의미한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무조건 믿으라고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이 목사는,
이제는 예수를와 성경을 무조건(無條件) 믿으라고 하면
안 통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과학혁명의 시대에 교회는 성경의 진리와 신학을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진리를 입증하고 보여줘야 한다.
기독교나 불교나 다른 종교들도
이제는 무조건 믿어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
12월 30일 오늘은 불교의 명절인 성도절(成道節)이다.
성도절(成道節)은 음력 12월 8일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 8일)은 사찰 밖에서도 연등행사 등
큰 행사를 하는 데 비하여
성도절은,
수행의 의미를 강조한 법회로 주로 사찰 안에서만 행하고 있다.
성도절에는
1주일간 꾸준히 수행하는 전통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으며,
전국의 사찰마다 연등을 달고
1 박 2 일로 철야정진을 하기도 한다.
성도절 하루 전 사찰에 모여서 다 같이 수행하고 죽을 먹는다.
성도절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든지 7일째 되는 날
새벽별을 보고 깨달음을 성취한 날이며,
부처님 오신 날(음력 4월 8일)과
출가절 (음력 2월 8일)과
열반절 (음력 2월 15일)과
성도절 (음력 12월 8일)은 불교의 4대 명절이다.
인류의 스승이 된 부처님 모습을 닮기 위해
성도절에는,
전국 사찰에서 매년 철야 용맹정진 등 다채로운 행사를 한다.
싯다르타는 도(道)를 이루지 못하면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했다.(수행본경)
구도자 싯다르타는 보리수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깨달음을 향해 치열하고 철저한 대용맹정진을 하여
35세에 음력 12월 8일
동방에서 떠오르는 샛별을 보고 진리를 깨달았다.
왕궁을 떠나 출가해 구도 수행을 한 지 6년 만이었다.
부처님은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깨닫고 대자유를 얻었다.
잡아함경에서는,
이 연기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此滅故彼滅).
이처럼 연기법(緣起法)이란,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관계를 가짐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관계가 깨어질 때 존재도 사라지게 된다.
연기의 원리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홀로 존재하는 것도 있을 수 없고,
영원한 것도 없으며 절대적인 것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부처님의 깨달음은
단순히 개인의 행복을 위한 깨달음이 아니라
일체중생의 행복이며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선언이다.
부처님께서 무명에서 벗어나 정각(正覺)을 이룬 것처럼
불자들도 깨달음을 통해 참 나를 찾고
부처님을 닮기 위한 발원을 다시 세우고
부처님과 같이 살고자 노력하는 것과
이웃과 사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성도절이 갖는 진정한 의미이다.
나의 법명(法名)은 正覺(정각)이다. 나무 아미타 불 ()()().
<쇳송. 3094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