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 기자 간담회
2월 임시국회를
특위국회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늘부터 2월 임시국회가 시작된다.
국회법상 하반기를 제외하고는 매 짝수달마다 반드시 임시국회를 열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임시국회 개원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영수회담 문제로
서로 샅바싸움만 하다가 절반이 훌쩍 지난 오늘에서야 개원을 하면서 어처구니없게도 특위국회로 만들려 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특별위원회의 종류만 합의를 하고, 특위의 권한이나 업무범위, 기한 등을 정하지 않았으므로, 오늘은 이에 대해 쓴 소리를 좀 하고자 한다.
1. 무분별한 특위구성은 상임위원회를 무력화시킬 뿐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의한 바에 따르면 5개의 특위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먼저, 민생대책특별위원회에 대해 보자.
현재 국회에 개설되어 있는 16개의 상임위원회 가운데 도대체 민생과 관련이 없는 위원회가 어디 있는가?
내가 속해 있는 외교통상통일위원회조차 실질적으로 민생과 직결되어 있다.
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미 FTA와 한 EU FTA는 물론, 각종 자원외교의 대상이 되는 국제 기름값과 곡물값도 국내 물가에 곧바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민생특위가 구제역이나 전세난, 고물가, 실업문제 등을 다룬다고는 하지만,
실업문제의 경우 ‘일자리 만들기 특별위원회’가 이미 지난해 2월에 구성되어 올해 6월 30일까지 활동하도록 되어 있다.
더욱이 구제역이나 전세난, 고물가 대책의 경우에는 특별위원회가 아닌, 농림수산식품위원회나 지식경제위원회, 국토해양위원회 등이주축이 되어 대책을 논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18대 국회 초반인 2008년 7월부터 8월까지 ‘민생안전특별위원회’를 운영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해체되었음은 공지의 사실 아니던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마찬가지이다.
18대 국회 들어서만 벌써 정개특위만 세 번째다.
지난 2009년 1월부터 2월까지 1차로 활동하다 활동기간이 종료되었고, 2009년 3월에 다시 구성해서 9월 30일까지 활동하다 무려 3차례나 기간을 연장한 후 2010년 6월까지 존속했었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다.
겨우 재외국민 선거권 도입을 골자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해 본회의에서 졸속 처리했지만, 그 내용은 지금도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정개특위에서는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 시 당선무효 처분을 받는 벌금기준을
현행 1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상향조정하기로 합의한 일이 있었으나, 이같은 합의는 ‘일반 국민을 위한 특위가 아니라, 국회의원 자신들을 위한 특위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처럼 정개특위가 국민을 위한 정치개혁이 아니라, 당리당략과 국회의원의 신분강화를 위한 편법으로 활용된다면 국민들로부터 정치인들이 사랑을 받기는 틀린 일이다.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또한 18대 국회 초반인 2008년 8월부터 2009년 8월까지 활동했지만, 딱 4차례만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그나마 성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놔두고 무슨 남북관계특위를 또 만들겠다는 것인가? 게다가 외통위에는 현재 회의를 한 번도 연 적 없는 남북관계소위가 이미 결성되어 있다.
그렇잖아도 남북문제만 나오면 우리 헌법에도 부합하지 않는, 친북적종북적인 사고를 하는 정당이나 의원들을 중심으로 볼썽사나운 모습만 연출하는 국회가 국민들에게 또 무슨 모습을 보여주려고 혈세를 낭비해 가면서 남북관계특위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가 아니라, 남북관계저해위원회가 될 것이다.
연금개선특별위원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연금제도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연금운용문제는 더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연금문제는 그 종류에 따라 가입대상과 불입방법, 지불조건이 상이하기 때문에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야지, 뭉뚱그려서 하나로 토론하거나 대안을 낼 수 없다.
예컨대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장애인연금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퇴직연금은 환경노동위원회, 공무원연금은 행정안전위원회, 군인연금은 국방위원회, 사학연금은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별정직 우체국연금은 지식경제위원회에서 문제점과 대책을 충분히 논의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일단 이렇게 걸러지고 난 후에 만일 연금종류의 통폐합성이 제기된다면 그때 가서 조정을 거쳐 확정하면 될 터이지만, 어느 나라도 그 모든 연금종류를 통합하진 않는다. 목적과 성격상 통합할 수도 없다.
이렇게 각 연금의 성격과 목적, 방법이 다른 것들을 특위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어서 논의를 한들 무슨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명칭도 한없이 긴, 공항발전소액화천연가스주변대책특별위원회는 또 뭔가?
특위의 명칭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지금 지방공항들은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신동남권 공항의 경우에는 지자체가 지역 국회의원까지 내세워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특위를 구성하면 관련된 지역구를 가진 의원들이 너도 나도 특위위원이 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문제를 더 키우는 게 아닌가?
소관상임위원회에서 충분히 논의하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다.
왜 국회가 나서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고 하는가?
발전소나 액화 천연가스 주변대책을 특별위원회가 어떻게, 무슨 결과를 낼 수 있겠는가?
앞으로 작은 문제가 발생하기만 하면 국회는 계속해서 특위를 구성할 참인가?
2. 특위는 지금도 국회에 넘쳐난다.
오늘 현재 국회에 설치되어 있는 특별위원회는 국제경제대회개최 및 유치지원특별위원회, 세계박람회지원특별위원회, 일자리만들기특별위원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 등 모두 5개에 달한다.
18대 국회 들어서 모두 20여 개의 특위가 구성되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거의 없이 명멸해 갔다.
회의도 1년에 겨우 4번 정도 열었을 뿐이다.
소위원회를 아예 열지도 않은 특위도 무려 6곳에 달한다.
현재 개설되어 있는 5개의 특위도 실태는 대동소이하다.
이들 특위가 개점휴업상태인 것은 창피해서라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이런 상황에서 위에 언급한 5개의 특위가 또 개설된다면 모두 10개의 특위가 존재하게 된다.
상임위원회가 16개인 것을 감안하면 잘못하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판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앞으로도 이슈만 생기면 앞 다투어 특위를 구성하려 하지 않겠는가?
특별위원회 남발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선진국 의회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특위를 거의 구성하지 않는다.
상임위원회를 제쳐두고 특별위원회에서 정치 쇼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여야의 중진의원들이 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나눠 먹기 위해
소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위인설관(爲人設官)을 하고 있다’는 비아냥을 하는 것이다.
3. 특위는 국민 혈세를 빨아 먹는 하마다.
특위구성의 또 다른 문제점은 혈세를 낭비한다는 점이다.
지난 3년 동안 국회는 특위 예산으로 무려 45억 원을 사용했다.
우리는 어제 국회 사무처에 구체적인 사용처와 사용금액을 요구했으나, 저녁 늦게까지도 총액 문서밖에 받지 못했다.
공정사회가 되려면 최소한 국회부터 투명해져야 한다.
국회 홈페이지에 매년 예산사용액과 사용처를 올려놓고 국민들이 들어와 확인하게 하지는 못할망정, 자료를 요구해도 제대로 내 놓지 않는 국회는 한 마디로 민의의 전당이 될 자격이 없다.
사무처가 자료를 구체적으로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알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문제점을 지적하겠다.
실제 액수에 다소 차이가 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료를 제때에 제대로 공개 받지 못한 탓이다.
특위위원장들은 매달 600만 원에서 800만 원 정도의 활동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미스러운 일이지만 위원장에 따라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1달에 그 비용을 다 쓸 수는 없더라’는 차마 웃지 못 할 토로를 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또 위원장에 따라서는 그 비용을 위원장 부인이 관리를 한다는 소문도 있다.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다.
감사원의 감사라도 청구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특위는 대체로 활동 기간 중에 소속 위원 4-5명이 한차례씩 해외시찰을 나가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동남아를 제외하고 유럽이나 미국 또는 남미로 가는 경우에는 1인당 해외시찰을 위한 비행기요금만 해도 1천 만 원을 훌쩍 넘는다.
4-5명이 가면 항공료만 4-5천 만 원이 든다.
그러다 보니 매년 특위의 여비만 평균 3억원에 달했다.
18대 원 구성이 6월에 가서야 가능했던 2008년도에도 무려 3억 원 이상의 여비가 지출되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문제는 여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위원회의 특수활동비도 지난 3년 똑같이 8억 6천 5백 5만 원이었다.
특위마다 소속위원이 다르고, 업무의 성격이 다른데, 어떻게 특수활동비는 끝전 하나 틀리지 않고 8억 6천 5백 5만 원으로 똑같을 수 있는가?
어느 국민이 이 액수에 납득하겠는가?
이밖에도 업무추진비, 운영비, 직무수행경비가 별도로 책정되어 있다.
완전히 돈 잔치고, 국민의 혈세를 빨아 먹는 하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비로 책정되어 있는 돈을 위원장에 따라서는 임의로 연구자를 선정한다는 믿고 싶지 않은 설들도 국회 안팎에 떠돌고 있다.
그 연구개발비마저 개원이 늦어 활동기간이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2008년도에
무려 1억 원이었다.
2009년 2010년엔 똑같이 5천만 원이었는데도 말이다.
이공계열 연구비도 아니고, 사회과학 연구비에 이렇게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는가? 또 그 연구결과는 다 공개가 되고 있는가?
국민의 혈세를 이런 식으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국회에 예산 심의 확정권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국민의 혈세를 무분별하게 낭비해서는 죄 받는다.
4. 국회의장의 무분별한 외유도 문제다.
국회의 무책임하고도 무분별한 특위구성과 그에 따른 비용문제를 지적하는 김에
국회의장단의 외유 문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국회의장이 직접 나서서 외교활동을 펼 수도 있다. 그것까지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정도의 문제다.
국회의장이 한 번 외유를 하는데 평균 3억 원의 경비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의장이 국무총리나 대법원장과 함께 3부요인이라고는 하지만, 1회 출장 치고는 지나치게 과도한 지출일 뿐만 아니라, 행정부를 통할하는 국무총리와는 외교권의 범위도 다르다.
대법원장과 비교할 경우에는 국회의장의 과도한 외유현상이 더 더욱 도드라진다.
특히 박희태 의장의 경우 더 심하다.
전임 김형오 의장은 2년 동안 4회로 연 2회 꼴이었지만, 박희태 의장은 아직 취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4번을 다녀왔다.
국회의장단의 외유는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5. 특위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설치해야 한다.
국회법상 특별위원회는 ‘특정한 안건’을 다루는 ‘한시적 기구’여야 한다(§44-46).
만일 특별위원회의 심사대상을 확대해석한다면 상임위원회의 활동을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소관사항이나 심사대상을 명확하게 명시해야 한다.
아직 2월 국회에서 논의할 특별위원회의 권한이나 대상, 업무범위 등이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 나는 우국충정의 심정으로 국회의 치부를 드러내 보였다.
우리 국회가 나의 이 같은 발언을 고깝게 듣지 않고 뼈아프게 받아들여 특위를 남발하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고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국회가 스스로의 권위도 회복하고, 국민의 사랑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