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사랑
홍 순 길
사랑을 말하기에는 철학이 없다. 사색이 부족하다. 그냥 일상의 얘기를 풀어내는 것일 뿐. 그 이상의 사랑을 논論하는 것은 내게는 무리다. 무심함이 무관심은 아니다. 무심함은 조용한 사랑이다. 그런 조용한 사랑이 좋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긴다. 십 대의 청춘을 불러온다. 그곳에는 스포츠머리에 굵은 안경테를 쓰고 약간 어수룩해 보이는 학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온 모양이다. 그가 있는 가까운 곳에는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다른 고장에서 온 여학생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말을 건넨다. 한 남학생이 여학생들 속으로 쪽지를 잽싸게 밀어 넣는다. 꼭지 머리를 한 예쁘장한 여학생이 남학생을 흘끔 쳐다본 뒤 쪽지를 집어 들고 총총히 걸어간다. 굵은 안경테의 그 남학생이 그런 장면들을 스케치하듯 하나하나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 그 남학생이 십 대의 나다. 십 대의 나는 남 앞에 나서기를 쑥스러워하며 친구를 사귀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던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 조용히 감싸 안고 어깨를 톡 닥여준다. 괜찮다고. 언젠가 나에게도 좋은 인연이 있을 거라고.
약간은 번잡한 중소도시의 중심가 거리이다. 넓지 않은 도로의 양쪽으로 젊은남녀가 떼 지어 걸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오가는 걸음이 더디다. 간혹 스치는 타인과 어깨를 부딪히면 힐난하듯 쳐다보고 지나친다. 그 혼잡한 거리의 어느 상가 2층에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 있다. 입구의 간판에는 "산타마리아"라는 가게 이름이 적혀있다. 아마 카페인 모양이다. 다방보다는 왠지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창문가에 남녀가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조금 전 두 남녀의 지인들이 그들을 소개해 주고 막 자리를 뜬 직후였다. 그들은 지금 소개팅을 하고 있다. 십 대의 굵은 안경테 남학생이 이제 이십 대 후반을 맞아 고향을 떠난 어느 중소도시에서 그 고장의 처자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조용하고 사려 깊은 아가씨이다. 그는 그 아가씨와 일 년 후 결혼을 하고 낯선 곳에서 생활해 온 지 삽십 년이 되었다.
아침 출근길에 식탁에 올라오는 된장국과 어제저녁 먹다 남은 식은 밥의 조합이 오히려 좋다. 번잡스럽게 차려진 밥상보다 간소해서 식탁에 앉고 싶어진다. 이것저것 젓가락이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여지기보다 단박에 집어먹을 수 있는 밥상이 제격이다. 그것이 암묵적인 우리의 사랑 방식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아내는 저녁 퇴근길에 요가 학원을 가고, 나는 수필 창작반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면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 먹다 남은 반찬 몇 가지와 식은 밥에 곁들여 맥주 한 잔으로 하루의 피곤을 푼다. 하루의 심신이 한 잔의 맥주잔에 녹아내린다. 그날의 일상이 밥상머리에서 춤을 춘다. 밥풀이 날아다닌다. 육신이 아닌 수다로 사랑을 한다. 육십에 가까워지면서 새로운 방식의 사랑을 배워가고 있다.
이십 대에는 목마름이었고 기다림이었다. 사랑에 대한 갈증에 목이 타 헉헉거렸고, 갈증 해소를 위한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는 기다림이었다. 어느 날은 가슴 탁 터이는 시원함으로 마주하지만, 갈증으로 벌컥벌컥 냉수를 들이켜는 답답함도 있었다. 때로는 오해의 싹을 틔워 이별을 얘기하고 누구의 사랑이 더 큰지 사랑의 크기를 재어 보기도 하였다. 이제 육십 능선에 올라 서고 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시간의 변화에 따라 몸도, 생각하는 것도 변화가 생겼다. 사랑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그 언저리를 맴도는 조각들이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변형된, 새롭게 융합된 형태의 사랑. 하이브리드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 하이브리드(hybrid):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요소를 둘 이상 뒤섞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