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는 1년에 2번이나 꽃으로 덮히는 절이다
봄엔 동백이 절집 뒷산에서 와르르 쏟아지고
가을엔 타는 듯 붉은 꽃무릇이 절 입구부터 쫘악 깔린다
아니다 한번 더 있구나
일주문으로 들어서면서부터 계곡을 따라 붉게 타는 단풍도 있구나
그러면 3번이나 붉은 꽃에 덮히게 되는 것이다
선운사 동백은 제주나 오동도의 겨울동백이 다 지고 나면 피기에
춘동백이라 불린다
어느 해 이 곳 춘동백을 보러 갔다가 동백숲 입구에 많이 모여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깊숙이 들어간 적이 있다
여기 이렇게 한적하고 꽃도 많은데 왜 입구에서만 북적거리지?
하며 동백나무에 걸터앉기도 하며 즐기고 있는데
우릴 쫓아온 스님이 빨리 나오라고 화를 내신다
이 곳은 출입금지구역이며 어기면 거액의 벌금을 내야하는 곳이라며 우릴 겁주신다
어쩐지 하며 민폐관광객이 되어 고개를 숙이며 걸어나왔던 웃픈 기억이....
선운사를 드나든 횟수가 여러번인 것 같은데 천왕문의 기둥을 자세히 살펴본 건 처음이다
멀리서 보면 베흘림 기둥으로 보이는데 가까이 보니 아랫부분은 정확한 분할로 이어진 돌기둥이다
그러니까 돌과 나무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기둥이다
그것도 베흘림기둥 느낌이 드는 돌을 찾아 연결했다
아주 자연스런 베흘림기둥이다
건물전체적인 색감이 며칠 후 가게 될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전시되는
프랑코 폰타나가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할 모습이다
폰타나 님 여기 소개할게요 당신의 카메라로 촬영하면 너무 멋진 색감이 나올 듯 합니다
이번엔 시기를 조금 놓쳐서 꽃이 시들기 시작할 때 꽃구경이다
9월 초에서 중순까지가 만개한 꽃과 봉우리들을 볼 수 있는 시기다
꽃이 시들기 시작하면 줄기의 물관에선 더이상 물을 올려 보내지 않는지
줄기가 생기를 잃고 바닥에 누워있다
장렬히 싸우다 최후를 맞이한 병사처럼 말이다
2년 전 꽃무릇 사진
그래서 이런 모습은 볼 수 없다
대신 스러진 꽃줄기가 햇살에 말라가고 있다
마치 엄마가 뜰에 널어 말리는 고구마줄기처럼.
제법 힘 있어 보이던 꽃대가 저렇게 힘없이 누워있다니.....
1년을 거르고 안 갔더니
꽃무릇 가득한 곳에 카페도 하나 뚝딱 지어졌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정취가 너무 아름다워 야외테이블 차지하고
차 한잔 주문해야 했다
이 곳에서 한참을 꽃멍 하다가 일어서려니
명당자리 프리미엄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작품감상하다 지쳐 잠시 쉬러 들어간 박물관 카페에서
광장의 피라미드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테이블이 너무 좋아 일어나기 싫었던 기억이 나 웃었다
점심도 그 자리에서 샌드위치로 때우며 여유를 부렸던 ....
정말 그 자리 프리미엄받고 팔고 싶다고 일어서면서도 자꾸 뒤돌아 봤던 그 날.
저 멀리에 보이는 기와건물이 바로 새로생긴 카페건물이다
누가 정 명당에 카페를 짓게 했는지
불교용품이나 관련 기념품들도 많이 판매하고 있는 걸 보면
사찰 운영위원회의 결정이겠지 하고 오지랖을 부려본다
사리탑 근처의 담장을 향해 서 있는 여린 꽃들이 사랑스럽다
꽃무더기에서 빠져나오니 이런 자연스런 여유가 또 반갑다
꽃무더기에선 꽃의 귀함을 모르다가 이렇게 듬성듬성 자라는 여린 꽃대가 아주 귀하게 이쁘다
사찰 옆길의 계곡길 따라 산책하 듯 걷는다
이 곳에 단풍이 들면 선운사는 그야말로 붉디붉은 꽃으로 다시한번 덮히게 된다
물가의 단풍이 더 예쁘다는 섭리를 여기에서 깨우친 것 같다
걷다보면 제법 넓은 차밭을 만난다
5월의 여린 잎은 아니지만 차 밭이 주는 이미지는 푸르름과 정갈한 곡선의 규칙성 아닐까
이 곳에서 처음만나는 차꽃과 차 열매.
이제껏 차나무에 꽃이 핀다는 것과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오직 찻잎으로 만드는 향기로운 차만 떠올릴 줄 알았으니
차 나무 꽃이 이렇게 흰색이다
꽃송이도 제법 크다
열매도 어찌나 단단하게 생겼는지
보성다원에 가서 여린 찻잎을 보고 좋아라하며 곡선 밭이랑을 이리저리 걸어다닐 줄만 알았지
이렇게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 전 담양 죽녹원에 갔을 때 대나무 숲 아래에 자라는 죽로차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대숲아래 무성한 키작은 나무들에 관심을 보이니 지나던 숲해설자가 설명 해 주었다
대나무에 맺힌 아침이슬을 받으며 자라기 때문에 죽로차라 이름지었는데
9월 초 쯤에 꽃이 피면 마치 황금을 뿌려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죽로차 꽃은 노란빛이라는 얘기다
9월 초에 꼭 다시 오라는 해설사의 말이 생각난다
이 녹차밭은 꽃이 피면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녹차밭에서 어김없이 꽃씨가 날아와 외롭게 피어있다
그렇지만 고고한 모습이 꽃무더기에 묻혀있는 것보다 더 빛난다
선운사에 갔으면 점심은 당연코스로 장어집이다
검색하면 선운사 입구의 모든 집들이 맛집이다
내가 선택하는 기준은 음식점 깔끔하면 다 맛집이다
소금구이로 선택해 맛나게 먹었으니 이 곳이 바로 나의 맛집이다
잘 보고 잘 먹고 잘 놀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