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교에 1억원 기부, “저 혼자 잘나서 버는 돈이 아니잖아요”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24호(2021.12.15)
박희은 알토스벤처스 파트너
미루면 끝없이 밀리는 게 기부
저소득층 후배 해외탐방지원도
“재학시절 과외 등으로 돈을 모아 여름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전혀 다른 생각, 전혀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정관념 같은 것을 깨는 계기가 됐죠. 그런 경험들이 제게 큰 자양분이 됐고요. 심리적 경제적 측면에서 저소득층 후배들이 아무래도 해외 다녀오기가 어렵잖아요. 공부보단 ‘잘 노는 것’을 돕고 싶었습니다.”
박희은(언론정보06-10) 알토스벤처스 파트너가 최근 모교에 1억원을 기부했다. 30대 여성 동문이 거액을 내놓은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책상 앞에만 있지 말고 해외로 나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라는 조언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사회대와 언론정보학과에 각각 5000만원씩 전달한 이 돈은 AI·빅데이터 융합교육과 함께 저소득층 학생의 해외 탐방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젊기는 마찬가지인 자신의 가능성을 위해 써도 요긴할 터인데, 기부를 결심한 이유는 뭘까. 박희은 동문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기부는, 때를 기다리다 보면, 결국 한없이 뒤로 밀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부터 제가 얻은 기회나 버는 수입이 저 혼자 잘나서 누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왔어요. 언제고 사회에 진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죠. 제게는 큰돈이지만 학교 입장에선 약소할 텐데, 그래도 어느 정도 유의미한 액수를 기부할 수 있게 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노년에 더 크게 성공해서 한꺼번에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중간 정산하는 기분으로 첫걸음을 뗐어요.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계속할 겁니다.”
모교 졸업 후 엔씨소프트에 입사했다가 6개월 만에 퇴사한 박 동문은 2010년 국내 첫 소셜데이팅 앱 ‘이음’을 출시했다. 설립 첫해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 이듬해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았으며 2012년 코트라 주최 ‘나는 글로벌 벤처다’ 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엔 벤처캐피털(VC) 알토스벤처스로 자리를 옮겨, 5명의 다른 파트너들과 함께 펀드자금을 모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투자한 회사를 관리하는, 펀드운영의 대표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알토스벤처스는 김용현(경제97-03) 동문의 ‘당근마켓’, 안성우(통계98-07) 동문의 ‘직방’, 이승건(치의학01-07) 동문의 ‘토스’, 박재욱(전기공학04-11) 동문의 ‘타다’ 등 모교 출신이 창업한 다수의 스타트업을 포함해 쿠팡, 크래프톤, 배달의민족에 초기부터 투자를 단행, 혁혁한 성과를 올린 투자사로 이름을 날렸다.
박 동문은 패션 쇼핑 앱 ‘지그재그’, 가사도우미 서비스 플랫폼 ‘청소연구소’, 모바일 세탁 연구소 ‘런드리고’ 등에 투자를 이끌었다.
“다른 투자사보다 훨씬 적은 인원이지만 무거운 책임감과 엄격한 기준을 갖고 서로 의지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크게 성장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깨는 데, 나아가 토종 스타트업이 해외에서 주목 받게 하는 데 저희가 나름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하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스타트업 업계에 모교 출신이 워낙 많다 보니 모교 동문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친하거나 하진 않습니다(웃음). 물론 특혜도 없고요. 다만 자하연, 학생회관 등 같은 공간에 얽힌 추억을 나눌 수 있어 일과 별개로 소소한 즐거움이 따라오긴 해요.”
투자 유치를 희망하는 동문 기업인에겐 “꼭 투자를 받아야만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건 아니”라며 “투자가 정말 필요한지, 투자를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먼저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영위하는 시장이 충분히 크고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투자로 이어질 것이라고. 앞으로 들이닥칠 사업 상황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점에서 창업을 겪어본 ‘연쇄창업자’에게 점수가 더 후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요즘 스타트업 창업이 활발해진 이유에 대해선 “여러 ‘스타 창업자’의 등장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그런 성공사례가 앞으로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정보학과 정보문화학을 복수 전공한 박 동문은 재학시절부터 온라인미디어, 온라인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았다. 네이버·카카오·유튜브 등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들이 각자의 규칙에 따라 가상공간을 제공하고, 유저들 또한 그 안에서 서로 다른 활동과 경험을 하는 것이 흥미로워 IT업계에 종사하게 됐다고 한다.
“첫 직장을 선택할 때부터 이후 모든 결정의 순간 때마다 모교에서 배운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채널, 플랫폼, 아젠다 세팅, 프레임 효과, SMCRE(Sender Message Channel Receiver Effect) 모델 같은 이론들이 지금도 투자 건을 검토하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어요. 서로 다른 배경의 팀원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협업의 과정을 밀도 있게 경험했고요. 지금은 익히 듣고 있지만, 당시엔 무척 생소했던 메타버스를 활용해 게임을 만들어보기도 했죠. 교수님들 선견지명 덕분에 미래를 먼저 체험해봤던 것 같아요.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접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주셔서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가능성을 알아봤고 도전하는데 망설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 외에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많아진 오늘날, 서울대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하고 스스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