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처다부 / 박일만
제1의 남편이 노숙할 차례
양털을 덮고 별빛을 베고 잔다
오늘밤은 제2의 남편이 침실에 든다
남편을 들이는 건 아내의 몫
제1의 남편은 형이고
제2의 남편은 아우다
히말라야 고산족들
산소부족으로 계집아이 사망이 잦아
귀한 몸의 아내는 우애 좋은 형제를 모두
남편으로 들이고 산다
신의 율법을 받드는 거다
아이들의 근본은 아내만의 비밀
사내들은 눈대중으로 핏줄을 당겨 볼 뿐,
여자로 태어나 남자를 들이는 건
태고의 슬픔을 지닌 여자의 바탕이다
남자로 태어나 여자에게 들어가는 건
태고의 슬픔을 녹이는 남자의 빛깔이다
슬픔도 약이 되는 땅에 빙하는 흐르고
내일 밤에는 제2의 남편 아우가
양털 덮고 별빛 베고 잠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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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 박일만
흔드는 깃발
기차가 멈춘다
철로가 소리소리 지른다
패전의 무기 같은 기차가
숨을 고르는 사이
옆구리를 뚫고
아우성이 쏟아져 나온다
흔드는 깃발
기차가 떠난다
철로가 다시 길게 눕는다
허리 펴고 심장을 박동시키는 사이
작별이 한숨을 쏟아 놓는다
삐-익, 폭-폭!
멈추는 소리와 떠나는 소리 사이
기차가 흰 머리칼을 풀어 놓는 사이
고개를 내밀어
멀어지는 기차의 후생을 보는 사이
그의 생애도
무게와 아우성을 싣고
짧게 머물다 길게 사라진다
<작가의 눈, 2022. 제29호>
[박일만]
2005년 《현대시》신인상.
제5회 <송수권 시문학상>, 제6회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살어리랏다(육십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