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의 아들 유리왕-왕망의 간계 임동주 | 2007.02.19 04:16 목록 크게 댓글쓰기
신(新)나라의 간계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몇 년이 흘렀다. 유리명왕이 국력을 기르는데 온 힘을 쏟고 있을 때 고구려 주변에서는 한(漢)나라의 왕위를 빼앗은 왕망이 신이란 나라를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왕망은 고구려로 사신을 보내왔다. 사신은 유리명왕을 뵙고 아뢰었다. “지금 흉노가 우리의 변방을 위협하여 그들을 물리치려고 합니다. 저희 임금님께서는 고구려도 함께 흉노를 물리쳐 주기를 바라십니다.” 유리명왕은 사신에게 물러가 쉬도록하고 신하들을 불러 의논했다. 설지가 나서서 말했다. “이제 한나라가 무너지고 신나라가 새롭게 일어섰으니 의좋게 지낼 필요가 있습니다. 하오니 군사를 보내어 신나라를 돕는다면 앞으로 우리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그러자 우보 부분노가 반대하며 나섰다. 그는 설지와 같은 무조건적인 화평론자들을 내심 못마땅해했다. “다른 나라의 일에 우리 군사들을 희생시키느니, 차라리 흉노와 함께 그들을 친다면, 천하에 우리의 힘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대사자 위사물이 나섰다. “두 분의 말씀이 다 옳긴 하지만, 신나라는 머지않아 다시 어지러워질 테니, 일단 지켜보아야 합니다. 먼저 형식적으로 약간의 군사를 뽑아 전선으로 보내시되, 절대로 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지켜보다, 기회를 엿보아 달아나라고 하시옵소서.” 유리명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예리하게 짚어낸 위사물의 지혜가 놀랍기만 했다. “흉노에도 몰래 사신을 보내어 우리가 적대하는 마음이 없음을 알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고구려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을 것입니다.” 유리명왕도 위사물의 생각과 같았다. 위사물의 생각 자체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도 했지만 험난한 세월이 그를 제왕답게 만들어주었다. 유리명왕은 사자 연비에게 군사를 이끌고 국경으로 가도록 명했다. 또한 흉노 족장 오주류에게도 비밀리에 사신을 보내 일의 급함을 알려주었다. 한편 고구려 군사를 청한 왕망은 신하들로 하여금 30만 대군을 이끌고 흉노를 치게 했다.
흉노는 한 초기까지만 해도 세력이 강하여 중원을 위협했다. 하지만 왕위를 잇는 문제로 동과 서로 나뉘어 세력이 약해졌다. 이후로 서흉노는 서방으로 옮겨 갔고, 동흉노는 한나라의 신하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평화를 지켜 왔다. 이로써 두 나라의 국경은 60여 년 간 조용했다. 그동안 힘을 쌓으며 야심을 키워 온 흉노의 임금 오주류는 오랜 평화 관계를 깨고 신나라의 국경을 침범했다. 사실 흉노의 왕 오주류가 왕망을 친 까닭은 왕망이 자기 외에는 그 누구도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상한 중화주의의 허세 때문이었다. “뻔뻔한 자! 감히 대국을 건드려?” 왕망은 매우 화가 나서 군사를 일으켰다. 그는 요서 태수 전담에게 명령하여 고구려 군사를 끌어 모아 흉노의 거점인 수강성으로 진군하라고 명했다. 요서 태수 전담은 고구려 군사들을 기다려 함께 움직였다. 혼자서는 도저히 흉노군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고구려 임금님의 명령을 받고 군사를 몰아왔소.” 고구려 장군 연비는 전담을 만나 예를 갖추었다. 장수는 나라의 얼굴이니 마땅히 예의를 지켜야만 했다. “고구려후*의 군사들이군.” 전담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연비는 전담의 행동에 속이 다 뒤틀릴 지경이었다. 서토(西土;중국)사람 특유의 오만방자함이 역력했다. “이번 싸움은 내가 지휘할 것이니, 그대들은 내 명령에 따르라.” 연비는 전담이 고구려의 왕을 함부로 깎아 불러서 화가 났다. 그것은 고구려를 한낱 신하 나라 정도로 대하는 말이었다. 연비는 당장에라도 칼을 뽑아 전담의 목을 베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자, 이제부터 약수를 건너 수강성으로 진군할 것이다.” 연비의 속도 모르는 채, 아니 알려고도 아니한 채 전담은 연비에게 명을 내렸다. 마치 자기 집 종 부리듯 하는 태도였다. “대열을 벗어나거나 한 치라도 군기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연비는 어쩔 수 없이 전담의 명을 따르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수강성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누구를 위해 싸우라는 말인가?’ 연비는 이대로 계속 따라가다가는 이로울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전담이 하는 짓을 보아도 저들이 고구려군을 전쟁터에서 화살 받이로 쓰려는 생각쯤 눈치 채고 있었다. 더구나 눈치껏 빠져나오라는 유리명왕의 명령도 있었다. 아니, 명령이 아니더라도 남의 나라 싸움에 귀한 생명들을 바칠 바보는 없었다. “모두 질서를 지켜 후퇴하라.” 그렇게 차례대로 물러나기를 얼마였을까. 연비는 군사들을 이끌고 대열에서 벗어나 남쪽을 향해 달렸다. “무엇이! 고구려군이 달아나?” 한편 고구려군이 달아났다는 보고를 받은 전담은 황급히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군의 뒤를 쫓았다. 연비의 군사들이 요동과의 경계에 들어섰을 때였다. 전담의 군사들이 턱밑까지 쫓아와서는 연비의 군사들을 공격했다. “신나라 군사들이 호되게 당하고 싶은 모양이다. 쳐라!” 연비는 말을 돌려 전담의 군사들을 향하여 달려 나갔다. 고구려 군사들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연비의 뒤를 따랐다. “저, 저런 자들을 보았나.” 달아나던 고구려군이 갑자기 되돌아서서 공격해 오니 전담의 군사들은 당황하여 뒷걸음질 쳤다. 연비는 전담을 보자 분한 마음이 되살아났다. 어디 함부로 대 고구려의 군사들을 이리도 모욕한다는 말이던가. ‘내 지난번의 모욕을 갚아 주겠다.’ 연비는 긴 창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거침없이 나아갔다. 연비의 긴 창이 번쩍 빛을 뿜어내는가 싶더니, 전담은 비명 한 마디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전담이 죽자, 신나라의 군사들은 모두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연비는 군사를 몰아쳐 달아나는 신군을 모조리 무찔러 죽였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돌아온 군사들에게 전담이 죽고 싸움에 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왕망은 펄쩍 뛰며 소리쳤다. “당장 군사를 모이게 하라. 내 그대로 갚아 주겠다.” 그때, 장군 엄우가 간곡히 말렸다. “임금님, 고구려가 비록 우리를 치기는 했지만 엄벌을 내리기보다는 요동 태수를 보내어 타이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왕망은 엄우의 말이 불만스러운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엄우는 민망했지만 하던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나라를 위해 할 말은 해야 했다. “지금 군사를 일으켜 친다면 고구려는 흉노와 손잡고 우리와 맞서 싸우려고 할 것입니다. 흉노와 싸우기도 힘든 이때에 고구려마저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왕망은 엄우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어찌 고구려를 두려워할까 보냐. 엄 장군은 듣거라. 즉시 5천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전담의 원수를 갚도록 하여라.” 엄우는 매우 걱정이 되었지만, 왕망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엄우는 군사를 이끌고 현도군에 이르렀다. 그때 연비의 군사들은 강 유역에 진을 치고 있었다. 연비가 용맹한 장수임을 알기에, 엄우는 맞부딪쳐 싸우기보다는 계략을 쓰는 쪽을 택했다. 연비의 진은 한눈에 보아도 견고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연비의 진영으로부터 강 건너편에 진을 친 엄우는 연비에게 사신을 보냈다. “평소에 장군의 지략과 용맹을 흠모하여 왔습니다. 비록 저희 임금님의 명을 받아 오기는 했지만, 장군과 싸울 뜻이 조금도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임금님께서 저를 불러들이시리니 그때까지 서로 싸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엄우는 연비에게 싸울 뜻이 없다고 밝혔다. 엄명을 내렸는지 사신의 자세가 매우 공손했다. 연비는 처음에 엄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는 분명 엄우의 간사한 계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을 기다려도 엄우의 군사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 나라 군대가 대치한 지 열흘이 지났을 때 엄우가 다시 사람을 보내왔다. 그는 깍듯이 연비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장군에 대한 흠모의 정으로 귀한 술과 음식을 바칩니다. 싫다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연비는 행여 저들이 음식에 독이나 타지 않았을까 염려스러워 이를 진중에서 키우는 개에게 먹여 보았다. -부모와 함께하는 인물전(주몽의 아들 유리앙) 11월 3주 이 블로그 인기글 고구려 철기병 우리나라 삼국지 9권 등주 상륙작전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