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복음묵상
(요한14,23ㄴ-29)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평상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불교에서 일컫는 개념으로서 특별한 동요가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심리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평상심을 곧 도(道)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흐렸다 개었다 하지만 실상 그것은 구름이 왔다 갔다 하면서 생기는 것일 뿐 정작 하늘은 늘 맑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평상심은 구름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늘 맑은 하늘의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자면 중국의 대서예가이자, 시인이고 언론인이며 34년간 감찰원장을 역임하면서 중국 역사상 가장 청렴한 공직자로 추앙받는 위유런(於右任)에 관한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유런의 필체가 당대에 너무나도 유명해서 때로는 그의 글씨를 내걸고 장사를 하는 곳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위유런의 제자 한 사람이 한 식당에 갔다가 스승의 모조품을 보고 놀라서 분개하면서 스승에게 달려와 이 사실을 일렀습니다. “스승님, 지금 저잣거리에는 스승님이 쓰지도 않은 모조품 가짜 글씨를 스승님의 글씨라고 하면서 간판으로 걸어놓은 식당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는, 스승님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당장 가셔서 그 자들을 잡아들여야 합니다.”
그러자 위유런은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네. 자네가 갔던 그 식당 이름이 무엇이더냐?” 그러자 제자가 대답했다. “베이징 자장면”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위유런은 바로 서재로 들어가서 화선지를 꺼내고 붓을 들어 ‘베이징 자장면’이라는 글씨를 정성스럽게 쓴 후 제자에게 전해주면서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글씨 모조품을 간판에 쓸 정도로 내 필체가 세상 속에서 인정받는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데 모조품 수준이 떨어지면 내 필체가 진짜로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이걸 그 식당주인에게 전해주게.”
보통 사람이라면 크게 분노하면서 당장 쫓아가 멱살을 잡을 상황이었지만 위유런은 그에 동요하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스승의 평상심에 제자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제자로부터 스승 위유런이 써 준 간판글씨와 그의 뜻을 전해 받은 식당 주인은 그의 큰 그릇에 탄복하며 진심으로 사죄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많은 이들이 위유런의 인품에 감탄하면서, 그의 글씨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그러한 흔들림이 없고 고요한 평상심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마치 바람과 구름이 왔다 갔다 하면서 때로는 폭풍과 비바람을 일으키듯이 온갖 시련의 시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폭풍과 비바람 위의 하늘은 늘 맑은 것처럼 우리에게는 하늘과도 같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지켜주심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힘이 되어주시는 것을 믿으며 어떤 시련 속에서도 주님 안에 머물며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통해 더욱더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