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돋보기] 작품 속 뱀의 이미지
뱀은 부정적인 동물? 다산과 치유, 협상 상징하기도 하죠
작품 속 뱀의 이미지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입력 2025.01.13. 00:52 조선일보
올해는 을사년으로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에서 뱀의 해입니다. 십이지는 둥근 시계 위에 매겨진 열두 눈금처럼, 시간과 방위(方位)를 열둘로 나눈 것이에요. 각각의 눈금마다 대표하는 동물이 있답니다. 뱀은 여섯 번째 순서로 등장하는 동물이에요. 십이지 동물 외에도 뱀은 여러 나라의 신화나 전설 속에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것과 연결되어 신으로 받들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반대로 사탄이나 악마 같은 사악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나 토끼 같은 동물은 귀여워해요. 하지만 앞발과 뒷발도 없이 배로 기어다니고, 큰 아가리를 벌려 먹이를 통째로 삼키면 몸통이 불룩해지는 뱀은 징그럽다고 여기곤 해요. 차갑고 축축한 파충류인 뱀은 만지거나 안아보고 싶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외양이나 습성을 인간의 입장에서 보고 해석해 의미를 만들어 왔답니다. 오늘은 뱀이 어떤 의미들을 갖고 있는지, 다양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용맹한 수호신 중 하나
십이지에 대한 개념은 동북아시아 국가인 한국·일본·중국뿐 아니라, 중앙아시아나 이집트 등에도 오래전부터 퍼져 있었어요. 십이지를 대표하는 동물들이 지역의 민속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도교·불교·힌두교 혹은 민간신앙 풍습과 혼합되어 다르게 나타나는 정도였죠.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십이지상을 무인의 옷을 입고 무기를 든 용맹스러운 수호신으로 여기고 왕의 묘 주위에 둘러 세웠습니다. 불교 석탑의 밑단에 새겨넣어 사람들이 탑을 돌 때마다 삶이란 순환하는 것임을 되새기게 하기도 했어요. 조선 시대에는 십이지 동물들이 민화의 소재가 되었답니다. 집안에 불길한 기운이 스며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두 폭의 병풍을 만들기도 했지요.
작품1 - 경북 경주시에 있는 김유신 묘의 십이지신상 중 뱀(1-1·왼쪽)과 그 탁본(1-2·오른쪽)이에요.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뱀을 비롯한 십이지신을 '수호신'으로 여겼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인천시립미술관
<작품 1-1>, <작품 1-2>는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김유신(595~673) 장군의 묘에 돌로 새겨져 있는 십이지신상 중 하나인 뱀이에요. 뱀의 머리에 사람의 몸체를 가지고 있어요. <작품 1-1>은 사진이고, <작품 1-2>는 탁본(조각 표면에 종이를 대고 두드려 이미지를 복사하는 방식)입니다. 머리 부분은 뱀이 위협적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반면, 몸 부분은 사람이 평상복을 입고 편안한 자세를 하고 있어요. 옷의 천 자락이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어, 신라 시대가 아니라 이후 통일신라 시대 석공의 세련된 솜씨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산·치유·협상 뜻하기도
<작품 2>는 크노소스의 미노아 궁전에 있던 뱀의 여신상입니다. 크노소스는 미노아 문명의 중심지로, 그리스 크레타섬에 있지요. 이 유물은 기원전 1600년쯤에 만들어졌어요. 상대를 압도할 정도로 눈을 부릅뜬 채 꿈틀거리는 뱀을 양손에 움켜쥐고 있어요. 유방을 자랑스레 드러낸 여신은 강한 생명력과 양육 능력을 암시합니다. 뱀은 땅속에 생명을 잉태하는 ‘대지 어머니(地母·Mother Earth)’의 탯줄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미노아 부족은 뱀 여신이 땅속에서 생명의 씨앗들을 품고 싹틔워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다산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을 겁니다.
작품2 - 그리스 크레타섬 미노아 문명의 유물 '뱀의 여신'(기원전 1600년쯤 추정). 뱀은 다산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Heraklion Archaeological Museum
뱀은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생명의 재생을 뜻하기도 합니다. 재생은 죽은 것이 살아난다는 차원에서 치유와 연관되어 있어요. 그리스 신화 속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도 뱀이 둘둘 감겨 있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뱀 지팡이를 내리치면,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듯 앓아누운 자가 눈을 떴지요. 오늘날 많은 병원과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의료기관 상징에 뱀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도 여기서 유래했어요.
작품3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 조각상이 뱀 두 마리가 얽힌 지팡이(검은색)를 들고 있어요. 고대 그리스 시대 제작된 원본을 로마 시대 때 복제한 사본이에요(작자 미상). /바티칸 박물관
이것과 유사한 이미지가 하나 더 있어요. 바로 그리스 신화 속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인 카두세우스랍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는 뱀이 한 마리이지만, 헤르메스의 것에는 두 마리가 얽혀 있죠. <작품 3>은 여행 모자를 쓴 헤르메스가 한 손에는 돈주머니, 다른 한 손에는 뱀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에요. 헤르메스는 하늘과 땅을 오가며 소식을 전하고 신과 인간 사이 불화가 생길 때 중재하는 역할을 해요. 뱀의 혓바닥은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나쁘게 보면 혀 하나로 두 쪽의 말을 하는 ‘이중간첩’이겠지만, 좋게 보면 두 쪽의 입장을 하나로 모을 줄 아는 뛰어난 협상가겠죠. 그래서 헤르메스의 뱀 지팡이는 수사학(말과 글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기술과 이론)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답니다.
뱀의 혀는 ‘현혹’ 의미
말 한마디는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독이 된 예는 그리스도교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뱀에서 찾을 수 있어요. 뱀은 신의 정원인 에덴동산에서 평화롭게 살던 아담과 이브를 달콤한 말로 현혹해 신이 금지한 과일을 먹게 만들지요. 그로 인해 남녀는 낙원에서 내쫓기고 맙니다.
작품4 -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화에는 뱀의 유혹을 받는 이브와 아담(사진 왼쪽)에 이어 에덴동산에서 추방돼 늙은 모습(오른쪽)이 담겨 있어요(1508~1512년쯤 추정).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작품 4>는 바로 그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미켈란젤로(1475~1564)가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화예요. 가운데엔 나무를 칭칭 감은 뱀이 보이는데, 몸의 윗부분은 여자네요. 뱀이 여자의 모습을 하고, 이브에게 자매처럼 다가가 신의 말을 의심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림 오른쪽으로는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가 보여요. 왼쪽과는 달리 둘 다 얼굴에 주름이 생겼네요. 신의 둥지를 떠난 인간이 겪게 될 생로병사(生老病死·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음)의 과정을 암시하지요.
윤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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