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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가외(後生可畏)
젊은 후학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진들이 선배들보다 젊고 기력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따라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가히 두렵다는 말이다.
後 : 뒤 후(彳/6)
生 : 날 생(生/0)
可 : 옳을 가(口/2)
畏 : 두려워할 외(田/4)
출전 :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
뒤에 태어나거나 뒤에 배운 사람이 후생(後生)이다. 이미 배운 사람들보다 후진들을 두려워할 만하다(可畏)는 말은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젊은 사람들이 학문을 닦음에 따라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무서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에서 나온 후생각고(後生角高)나, 뒤따라 오던 사람이 윗자리를 차지한다는 후래거상(後來居上)도 같은 의미를 지녔다.
가장 많이 쓰는 청출어람(靑出於藍)도 있다.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가르친 제자가 학문이 우뚝하면 스승이 더 흐뭇해하기도 한다.
후진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한 말이 처음 나온 곳은 논어(論語)에서다. 공자(孔子)는 자신의 학문을 정책으로 펼치기 위해 각국을 주유(周遊)했으나 실패하고 낙향해 후진 양성에 힘썼다.
후생들은 비록 지금은 미숙하지만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두려운 존재로 여겨야 한다고 공자는 생각했다. 자한(子罕)편에 실린 내용을 보자.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젊은이들을 두려워 할 만하다. 어찌 뒤에 오는 사람이 지금의 우리들보다 못하리란 것을 알겠는가.
젊은이들에겐 미래가 있고 가능성이 있어 노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발전한다는 뜻으로 썼다. 그러면서 공자는 뒤에 배우는 사람은 항상 배움에 정진해야 하고, 앞서 배운 사람은 학문에 겸손해야 한다고 일깨운다.
공자의 여러 제자 중에서 특히 재주와 덕을 지니고, 요절했지만 학문이 뛰어났던 안회(顔回)의 훌륭함을 가리켰다고 한다.
하지만 후생이라도 모두 다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인다. '나이 40, 50세가 되어도 좋은 명성이 들리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두려워할 것 없다.'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부족외야이.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40이 불혹(不惑)이고, 하늘의 뜻을 아는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했으니 이 시기가 평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 본 셈이다.
후진을 존중해야 한다는 무작정 두려워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가능성을 두고 발전을 기대해서이다.
처음부터 싹수가 노랗다고 기를 죽이지 않고 장점을 찾아 복돋우는 일이 먼저다. 또한 후배들도 무조건 나이 많은 선배를 배척만 해서는 그들의 지혜를 배울 수가 없다. 어디까지나 배움에 겸손이 앞서야 한다.
⏹ 후생가외(後生可畏)
젊은 후학(後學)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진(後進)들이 선배(先輩)들보다 젊고 기력(氣力)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따라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가히 두렵다는 말이다.
🔘 뒤에 오는 사람이 두렵다
앞서 가는 사람보다 뒤에 오는 사람이 두렵다. 앞서 가는 사람은 깃발이다.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고, 희망도 된다. 뒤에 오는 사람은 그림자다. 발뒤꿈치에 붙어 다니다 어느 순간 치고 나온다.
앞선 자와의 거리는 쉽게 가늠된다. 가늠되면 좁힐 묘안도 생긴다. 뒤에 오는 자와의 거리는 가늠이 어렵다. 그러니 인간은 수시로 뒤를 돌아본다. 가늠되지 않으면 불안한 게 인간이다. 그 불안이 때로는 걸음을 재촉한다.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뒤에 난 사람이 두렵다(後生可畏). 나중에 올 사람이 어찌 지금 사람만 못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이 40이나 50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리 두려워할 게 못된다.”
후생(後生)은 뒤에 태어난 사람이다. 외(畏)는 단순히 두려운 게 아니라 존경의 뜻을 내포한다. 경외(敬畏)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러니 후생가외는 뒤에 오는 자의 뛰어남을 두려워하고 시기만 하는 게 아니다. 두렵지만 존중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뒤에 난 사람을 경계해 스스로 더 정진하는 것이다. 후생가외는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는 우리 속담과 함의가 같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35년을 뛰어넘은 망년지우(忘年之友)다. 서원으로 찾아온 이이가 돌아간 뒤 이황은 제자 조목에게 편지를 보냈다. “율곡이 찾아왔다네. 사람됨이 명랑하고 시원스러울 뿐 아니라 견문도 넓고 우리 쪽 학문에 뜻이 있으니 ‘후배가 두렵다(後生可畏)’고 한 공자의 말씀이 참으로 옳지 않은가.”
율곡의 학문보다 퇴계의 그릇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릇이 큰 데는 다 까닭이 있다.
후생가외보다 귀에 더 익은 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맹자의 성선설에 맞서 순자는 성악설을 주창했다. 둘은 유가이면서 생각의 색깔은 다소 달랐다.
순자 권학편은 선(善)의 회복에 배움이 왜 중요한지를 상세히 적고 있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청출어람의 출처가 된 구절이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으로 해야 ‘쪽빛보다 더 푸르다(靑於藍)’는 뜻이 되지만 흔히 청출어람으로 줄여 쓴다.
인생은 미지수(未知數)다. 크고 작은 미지수가 삶을 설레게도, 두렵게도 한다. 내일이라는 미지수, 10년 뒤라는 미지수, 희망이라는 미지수, 절망이라는 미지수가 어지러이 뒤엉켜 있다.
삶은 움직이고, 죽음은 한 곳에 머문다. 움직이는 건 수시로 자리가 바뀐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다. 오늘 왼쪽이 내일은 오른쪽이 되고, 오늘 앞자리가 내일은 뒷자리가 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 앞서 가고 누군가에 뒤져 걷는다. 세상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당신이 당신 걸음으로 걸어도 따라오던 누군가의 걸음이 잽싸면 순식간에 당신을 앞지른다. 당신도 독하게 마음먹으면 앞사람을 제칠 수 있다.
어찌보면 세상은 크고 작은 위치 다툼이다. 진짜 뛰어난 자는 나대지 않는다. 진짜 높은 자는 고개를 치켜들지 않는다. 스스로에 취하면 걸음이 느려진다.
겸손한 자는 한발 두발 앞으로 내딛는다. 쉬지 않고 걸으면 하루 백 리도 간다. 아무리 걸음이 빨라도 걷지 않으면 느릿느릿 걷는 자에게마저 뒤지는 게 세상 이치다.
▶️ 後(뒤 후/임금 후)는 ❶회의문자로 后(후)는 간자(簡字)이다. 발걸음(彳; 걷다, 자축거리다)을 조금씩(문자의 오른쪽 윗부분) 내딛으며 뒤처져(夂; 머뭇거림, 뒤져 옴) 오니 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後자는 ‘뒤’나 ‘뒤떨어지다’, ‘뒤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後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幺(작을 요)자, 夂(뒤져서 올 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後자는 족쇄를 찬 노예가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後자를 보면 족쇄에 묶인 발과 彳자가 그려져 있었다.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으니 걸음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後자는 ‘뒤떨어지다’나 ‘뒤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後(후)는 (1)무슨 뒤, 또는 그 다음. 나중 (2)추후(追後) 등의 뜻으로 ①뒤 ②곁 ③딸림 ④아랫사람 ⑤뒤떨어지다 ⑥능력 따위가 뒤떨어지다 ⑦뒤지다 ⑧뒤서다 ⑨늦다 ⑩뒤로 미루다 ⑪뒤로 돌리다 ⑫뒤로 하다 ⑬임금 ⑭왕후(王后), 후비(后妃) ⑮신령(神靈)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먼저 선(先), 앞 전(前), 맏 곤(昆)이다. 용례로는 뒤를 이어 계속 됨을 후속(後續), 이후에 태어나는 자손들을 후손(後孫), 뒤로 물러남을 후퇴(後退), 일이 지난 뒤에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을 후회(後悔), 같은 학교를 나중에 나온 사람을 후배(後輩), 반반씩 둘로 나눈 것의 뒷부분을 후반(後半), 핏줄을 이은 먼 후손을 후예(後裔), 뒷 세상이나 뒤의 자손을 후세(後世), 뒤에서 도와줌을 후원(後援), 뒤의 시기 또는 뒤의 기간을 후기(後期), 중심의 뒤쪽 또는 전선에서 뒤로 떨어져 있는 곳을 후방(後方), 뒤지거나 뒤떨어짐 또는 그런 사람을 후진(後進), 맨 마지막을 최후(最後), 일이 끝난 뒤를 사후(事後),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오후(午後), 바로 뒤나 그 후 곧 즉후를 직후(直後), 그 뒤에 곧 잇따라 오는 때나 자리를 향후(向後), 앞과 뒤나 먼저와 나중을 전후(前後), 젊은 후학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후생가외(後生可畏), 때 늦은 한탄이라는 후시지탄(後時之嘆),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뛰어날 때 이르는 말을 후생각고(後生角高), 내세에서의 안락을 가장 소중히 여겨 믿는 마음으로 선행을 쌓음을 이르는 말을 후생대사(後生大事),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을 후회막급(後悔莫及) 등에 쓰인다.
▶️ 生(날 생)은 ❶상형문자로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생기다, 태어나다의 뜻으로 만들었다. ❷상형문자로 生자는 ‘나다’나 ‘낳다’, ‘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生자의 갑골문을 보면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生자는 본래 ‘나서 자라다’나 ‘돋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生자는 후에 ‘태어나다’나 ‘살다’, ‘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生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본래의 의미인 ‘나다’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姓(성 성)자는 태어남은(生)은 여자(女)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生(생)은 (1)생명(生命) (2)삶 (3)어른에게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흔히 편지에 씀 등의 뜻으로 ①나다 ②낳다 ③살다 ④기르다 ⑤서투르다 ⑥싱싱하다 ⑦만들다 ⑧백성(百姓) ⑨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⑩자기의 겸칭 ⑪사람 ⑫날(익지 않음) ⑬삶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살 활(活), 낳을 산(産)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을 사(死), 죽일 살(殺)이 있다. 용례로 살아 움직임을 생동(生動), 목숨을 생명(生命),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생존(生存),말리거나 얼리지 않은 잡은 그대로의 명태를 생태(生太), 자기가 난 집을 생가(生家),생물의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생활 상태를 생태(生態),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사로 잡음을 생포(生捕), 태어남과 죽음을 생사(生死),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을 생업(生業),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을 생기(生氣),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생모(生母), 끓이거나 소독하지 않은 맑은 물을 생수(生水), 어떤 사건이나 사물 현상이 어느 곳 또는 세상에 생겨나거나 나타나는 것을 발생(發生),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先生), 사람이 태어남을 탄생(誕生),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일단 못 쓰게 된 것을 손질하여 다시 쓰게 됨 또는 죄를 뉘우치고 마음이 새로워짐을 갱생(更生), 다시 살아나는 것을 회생(回生), 아우나 손아래 누이를 동생(同生), 사람이 삶을 사는 내내의 동안을 평생(平生), 어렵고 괴로운 가난한 생활을 고생(苦生), 살림을 안정시키거나 넉넉하도록 하는 일을 후생(厚生),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음을 생매장(生埋葬), 생명이 있는 물체를 생명체(生命體), 이유도 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을 생고집(生固執), 날것과 찬 것을 생랭지물(生冷之物),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생구불망(生口不網),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생기사귀(生寄死歸), 삶과 죽음, 괴로움과 즐거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생사고락(生死苦樂),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생살여탈(生殺與奪), 학문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 부터 안다는 생이지지(生而知之) 등에 쓰인다.
▶️ 可(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는 ❶회의문자로 막혔던 말이(口) 튀어 나온다는 데서 옳다, 허락하다를 뜻한다. 나중에 呵(訶; 꾸짖다), 哥(歌; 노래) 따위의 글자가 되는 근본(根本)이 되었다. 또 나아가 힘드는 것이 나갈 수 있다, 되다, 그래도 좋다, 옳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可자는 ‘옳다’나 ‘허락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可자는 곡괭이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可자는 본래 농사일을 하며 흥얼거린다는 뜻으로 쓰였던 글자였다. 전적으로 노동력에 의존해야 했던 농사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런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겨내고자 흥얼거리던 노래가 바로 농요(農謠)이다. 그래서 可자는 곡괭이질을 하며 흥얼거린다는 의미에서 ‘노래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可자가 ‘옳다’나 ‘허락하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입을 벌린 모습의 欠(하품 흠)자를 결합한 歌(노래 가)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可(가, 극)는 (1)옳음 (2)좋음 (3)성적이나 등급 따위를 평점하는 기준의 한 가지. 수,우,미,양,가의 다섯 계단으로 평점하는 경우에, 그 가장 낮은 성적이나 등급을 나타내는 말 (4)회의(會議)에서 무엇을 결정하거나 어떤 의안을 표결할 경우에 결의권을 가진 사람들의 의사(意思) 표시로서의 찬성(동의) (5)…이(가)됨, 가능(可能)함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서 동작을 나타내는 한자어 앞에 붙음 등의 뜻으로 ①옳다 ②허락하다 ③듣다, 들어주다 ④쯤, 정도 ⑤가히 ⑥군주(君主)의 칭호(稱號) ⑦신의 칭호(稱號) 그리고 ⓐ오랑캐 임금의 이름(극)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시(是), 옳을 의(義),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不), 아닐 부(否)이다. 용례로는 할 수 있음을 가능(可能), 여러 사람의 의사를 따라 의안을 좋다고 인정하여 결정함을 가결(可決), 변화하거나 변경할 수 있음을 가변(可變), 움직이거나 이동할 수 있음을 가동(可動), 대체로 합당함을 가당(可當), 가능성 있는 희망을 가망(可望), 두려워할 만함을 가공(可恐), 하고자 생각하는 일의 옳은가 그른가의 여부를 가부(可否), 얄미움이나 밉살스러움을 가증(可憎), 불쌍함이나 가엾음을 가련(可憐), 눈으로 볼 수 있음을 가시(可視), 나눌 수 있음이나 분할할 수 있음을 가분(可分), 어처구니 없음이나 같잖아서 우스움을 가소(可笑), 참고할 만함이나 생각해 볼 만함을 가고(可考), 꽤 볼 만함이나 꼴이 볼 만하다는 뜻으로 어떤 행동이나 상태를 비웃을 때에 이르는 말을 가관(可觀),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다는 뜻으로 흔히 편지에 쓰이는 말을 가가(可呵), 법령으로 제한 금지하는 일을 특정한 경우에 허락해 주는 행정 행위를 허가(許可), 옳지 않은 것을 불가(不可), 인정하여 허락함을 인가(認可), 아주 옳음이나 매우 좋음을 극가(極可), 안건을 결재하여 허가함을 재가(裁可), 피할 수 없음을 불가피(不可避),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될 수 있는 대로나 되도록을 가급적(可及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을 가시적(可視的), 현상이나 상태 등이 실제로 드러나게 됨 또는 드러나게 함을 가시화(可視化), 침범해서는 안됨을 불가침(不可侵), 의안을 옳다고 결정함을 가결안(可決案), 옳거나 그르거나를 가부간(可否間), 불에 타기 쉬운 성질을 가연성(可燃性), 높아도 가하고 낮아도 가하다는 가고가하(可高可下), 동쪽이라도 좋고 서쪽이라도 좋다는 뜻으로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다는 말을 가동가서(可東可西), 머물러 살 만한 곳이나 살기 좋은 곳을 가거지지(可居之地), 어떤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을 가감지인(可堪之人), 그럴듯한 말로써 남을 속일 수 있음을 가기이방(可欺以方) 등에 쓰인다.
▶️ 畏(두려워할 외)는 ❶회의문자로 田(전)+삐침별(丿; 삐침)部(불; 귀신머리, 죽은 사람의 머리)과 化(화; 죽음)의 합자(合字)이다. 음산(陰散)하고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에서 전(轉)하여, 무서워하며 조심하다, 황공(惶恐)스럽게 여기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畏자는 ‘두려워하다’나 ‘경외하다’, ‘꺼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畏자는 田(밭 전)자와 疋(필 소)자,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畏자의 갑골문을 보면 가면을 쓴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고대에는 제사장이 가면을 쓰고 제를 지냈다. 그러니 畏자는 가면을 쓴 제사장이 주술 도구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신과 소통을 대변하던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畏자는 ‘두려워하다’나 ‘경외하다’, ‘꺼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畏(외)는 ①두려워하다 ②경외(敬畏)하다 ③꺼리다 ④심복(心服)하다(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하다) ⑤조심하다 ⑥으르다(무서운 말이나 행동으로 위협하다), 위협(威脅)하다 ⑦죽다 ⑧두려움,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공경하고 두려워함을 외경(畏敬), 매우 두려워함을 외포(畏怖), 무서워하고 두려워함을 외구(畏懼), 두려워하여 복종함을 외회(畏懷), 말을 무서워함을 외마(畏馬), 두려워 엎드림을 외복(畏伏), 남이 두려워 복종함을 외복(畏服), 두려워하고 존경하여 섬김을 외사(畏事), 존경하여 사랑함을 외애(畏愛), 가장 아껴 존경하는 벗을 외우(畏友), 추위를 두려워함을 외한(畏寒), 친구끼리 상대편을 극히 대접하여 부르는 말을 외형(畏兄), 두려워하고 꺼림을 외기(畏忌), 몹시 두려워하고 언행을 삼감을 외신(畏愼), 두려워서 몸을 움츠림을 외축(畏縮), 두려워하고 겁냄을 외겁(畏怯), 송장을 무서워함을 외시(畏屍), 침 맞기를 두려워함을 외침(畏鍼), 여름철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외경(畏景), 여름 해를 외일(畏日), 두려워할 만함을 가외(可畏), 공경하고 두려워함을 경외(敬畏), 두려워함을 담외(憺畏), 두려워함을 기외(忌畏), 두려워함을 늠외(懍畏), 두려움이 없음을 무외(無畏), 징계하여서 두려워하게 함을 징외(懲畏), 근심하고 두려워함을 우외(憂畏), 공경하고 두려워함을 인외(寅畏), 높이러 공손히 함을 존외(尊畏), 미워하고 두려워함을 시외(猜畏), 두렵고 무서움을 포외(怖畏), 남이 알게 되는 것을 꺼리고 두려워함을 외수외미(畏首畏尾),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경외지심(敬畏之心), 매사를 소홀히 하고 경솔함은 군자가 진실로 두려워하는 바임을 이유유외(易輶攸畏), 젊은 후학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진들이 선배들보다 젊고 기력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따라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가히 두렵다는 말을 후생가외(後生可畏)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