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선산에 가는 걸 내켜하게 된 건 순전히 야생화 때문이었다. 친정 부모님의 고향이 이북이라 성묘를 가본 적이 없는 나였다. 제사나 차례는 집에서 시어머니의 시중을 들면 되는 일이라 그래도 괜찮았다. 제사를 지낸 뒤의 휴일엔 어김없이 산소에 다녀와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추석과 설에는 이른 아침에 차례를 올리고 다녀오자면 추모의 정보다는 피곤이 먼저 몰려오기 일쑤였다.
그러던 것이, 몇 대 조 어른부터 시조부모의 산소까지 있는 그 야트막한 산에서 야생화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달라졌다. 쉽게 접하지 못했던 할미꽃과 산부추꽃이며 며느리밥풀꽃에 개미취와 용담까지, 꽃 수필을 쓰는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소재의 보고였다. 차츰 이번 성묫길에는 또 어떤 꽃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가지게 됐다. 문중의 산이 주는 편안함도 한몫을 더했다.
아래쪽에 시어머님이 묻히고 난 뒤엔 남편과 나와 아들에게 그곳은 하나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가슴 벅찬 일이 있거나 부대끼는 일이 있을 때면 찾아가 원껏 토로하고 힘을 얻어오는 장소가 된 거였다. 장손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물려받아 제사와 차례는 물론 시제까지 준비하는 입장이 된 내게는 더했다.
지난해 추석에는 벌초를 했는데도 또 자라난 풀을 남편과 아들이 뽑는 동안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잠깐이지만 얼마나 깊이 잤는지 머리가 날아갈 듯이 맑았다. 생전에도 학교 나가는 며느리라고 마음 써 주시던 어머님의 손길이 와닿지 않았나 싶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주변 풀섶을 둘러보다가 전에는 없던 노란 꽃 한 무더기를 발견했다. 키가 오십 센티는 됨직한테 작은 국화 모양의 꽃이 줄기 꼭대기에 이삭처럼 뭉쳐서 피어 있었다. 식물도감에서만 보았던, 황금 같은 그 꽃 빛깔로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긴다는 미역취였다.
한두 줄기 꺾어 어머님 산소의 돌화병에 꽂으니 '나대신 조상 모시기를 해낼 수 있으려나 싶어 걱정이었는데 이젠 맘 놔도 되겠다, 에미야.' 하는 목소리로 화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물론 스스로 대견해하는 내 소리였지만 미역취를 통해 이루어진 어머님과의 교감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아들이 꼬마였을 때 성묘 가기를 좋아하게 된 건 강아지 때문이었다. 산소로 올라가는 길목에 선산의 한 모퉁이를 쓰고 있는 교회가 있었다. 교회 건물 옆의 목사 사택 앞에 개집이 있었다. 삽사리로 보이는 개가 한 마리 들락거리며 우리가 갈 때마다 짖곤 했다. 한 번은 유난히 앙칼지게 굴기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끼 서너 마리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그 새끼들이 자라 강종강종 뛰어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집에 개가 없어서인지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려했었는데 단박에 달라졌다. 졸졸 따라오는 강아지를 번갈아 만지느라 돌아오는 길엔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해야 했다. 강아지들과의 교감이 산소에 가는 걸 기꺼워하게 만든 거였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며 생각난 게 있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 바닷속에서 본 군소라는 연체동물이었다. 패각이 없는 민달팽이와 비슷하나 몸통이 매우 불룩하고 물컹거렸다. 짙은 흑갈색 바탕에 회백색 무늬가 몸 전체에 있어 강아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한 번은 느릿느릿 떠다니는 걸 붙잡아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고 해보았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방어의 수단으로 갑자기 보랏빛 액체를 내뿜는 바람에 죽은 줄 알고 질겁을 했을 뿐이었다. 괜히 만져 놀라게 했나 싶으면서도 물속 존재라 역시 교감이 안 되는구나 여겼다.
그에 비하면 달갑지 않았던 성묫길에 내키는 마음으로 가게 만든 미역취와 강아지는 얼마나 정감 가는 뭍의 존재들인지. 교감이 이루어진다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그를 통해 알게 된 셈이었다.
조경을 전공한 남편은 요즘 들어 풍수지리에 심취해 있다. 건물을 지을 땅의 위치를 잡아 주기도 하지만 산소 자리를 보는 일에 더 열을 올린다. 남편의 그런 모습을 따라가서 본 적이 있는데, 저런 지관의 역할이야말로 땅과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이와의 교감도 병행되어야 하리라는 생각과 더불어.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산 사람과의 교감만큼 따뜻하고 힘이 되는 건 없을 게다. 미역취나 강아지나 죽은 이와의 교감이 어찌 거기에 미칠 수 있겠나 싶으면서도 몸이 사려지는 건, 선뜻 손을 내밀었다가 입을 상처가 두려워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정원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