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1)
작년 8월초.
어머니 은행일 거들어 드리려 춘천 다녀오는 길.
4호선 환승하려고 이촌역에 내리는 나의 머리는 온통 ‘그 신문을 어디 가서 구입해야 하나...?’하는 궁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날 아침 춘천 가는 경춘선 전철안.
평일인데도 빈자리 없는 경춘선을 탓하며 서있으려니, 바로 옆에 선 아저씨가 마치 수험생 시험공부 하듯, 열심히 신문을 읽고 계셨다.
( 뭘 저렇게 열심히 보고 계시나? )
슬며시 훔쳐본 나는 무척 기뻤다.
건강특집기사였는데, 소제목들을 얼른 훑어보니, 건강강의 할 때 인용하기 딱 좋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문이었다.
흔한 일간지가 아니었다.
경제신문이었다.
경험상 대도시의 번화가 가판점에 어쩌다 한, 두부 ?
경제신문이 가판대에 꽃혀 있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언젠가는 물어본 적이 있었다.
“팔려야 갖다 놓지요.”
( 저걸 어디 가서 구하지? )
다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안산은, 아직 신도시의 지리도 익숙하지를 않다.
( 114에 문의해서 보급소에 알아봐 ? 없다면 ?? 여기저기 헤매고 다닐려니 너무 힘들겠고... 꼭 구한다는 기약도 없고... )
마치 한 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 정독하던 아저씨는, 내 숱한 고민 아랑곳 없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역에서 내려버렸다.
미처 말 붙이고 얻으려 해 볼 틈도 없었다.
어쨌든 춘천에서의 은행일은 순조롭게 금새 마치고, 서둘러 다시 상경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그 때부터 머릿속은 다시 온통 오전에 본 경제 신문이었다.
무턱대고 서울에서 도중하차해서 해매고 다니기도 그렇고...
경춘선 종착역인 상봉역에 내려서 보니 신문 가판대 자체가 눈에 띄질 않고...
일단 사는 곳 안산까지 가기로 했다.
(정 못 구하면 신문사에 전화하지 뭐 ?)
안산행 4호선 환승하려 이촌역에 내렸다.
계단으로 막 내려서려는데 할머니 한 분이 계단난간을 잡고 머뭇거리고 계셨다. 양옆에 내려놓은 큰 짐 두 개를 보니 노인네가 양손에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기에는 무리였다.
“할머니 제가 들어 드릴까요?”
“아니 뭐 그냥...”
미처 제대로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서둘러 양손에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가끔 간발의 차로 전철 놓치고 지루한 기다림을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곧 바로 양 갈래길.
출찰구로 나가거나, 나처럼 환승선 찾아서 계단으로 더 깊이 내려가거나...
“할머니 어느쪽으로 가세요? 저는 안산이라 오른쪽으로 가야되는데...”
“아 그럼 됐네요. 난 나가야 되요.”
노인분이 계단 많이 밟을 일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출찰구는 바로 옆 왼편이었다.
“예. 그럼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전 이만.”
할머니 인사말 말 마저 다 들을 틈도 없이 또 급히 발길을 돌렸다.
불과 2~3분도 안 되는 짧은 도움.
그리고 4호선 승강장으로 내려서는 마지막 계단.
( 아뿔싸 ! )
유리문이 막 닫히고 있었다.
“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승무원의 안타까운 멘트가 흡사 나 들으라고 하는 듯하였다.
불과 할머니한테 말만 붙이지 않았으면 넉넉할 시간차였다.
( 뭐야 이거 ? 착하게 살면 복을 주신다며 ?)
( 하나님인지 부처님인지 있기는 있는 거야 ?)
‘위에 계신다’는 분들을 향해 연달아 불평을 늘어놓았다.
( 거 10초만 좀 늦게 발차하게 하면 안 되나 ? 더도 말고 10초만. )
( 시간표 확인하나마나 어차피 최소 10분 이상은 기다려야 될 텐데..)
( 앗 !)
그런데 바로 그곳에 매점이 있었다.
여지껏 3년 넘게 지나다니면서도, 계단 바로 앞에 있는 매점 눈에 띄질 않았었다. 조바심 가득한 급한 발길 때문이었다.
한국경제신문을 물어보았다.
아저씨는 ‘있다, 없다’ 말도 없이 뒤돌아서서는 구석을 뒤졌다.
( 아니 이 아저씬 또 뭐야 ? 왜 대답이 없어 ? 대답이 ? 말을 먼저 해야지 말을... )
이래 저래 짜증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내 곧 돌아서 씩 웃는 아저씨의 손에는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경제신문이 들려있었다.
안산 가서 헤매야할 나의 긴 노고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신문값 물어보니 손가락 펼쳐 대답한다.
마지막 감사인사만 힘겹게 말로 하셨다.
언어장애인이셨다.
( 이런 !! 난 몰랐지요.)
마음속으로 급히 사과하고, 얼른 펼쳐보았다.
( 역시 !!)
그 기사 곱게 기다리고 있었다.
( 이렇게 짧은 선행도 보상해주시는걸 모르고 제가 그만...)
(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성질이 좀 급해서...)
위에 계신 분들께 마음 속 깊이 정중히 사과 드렸다.
씨~익 웃는 가판점 아저씨의 미소가 마치
(나는 다 알지)하는 듯해서 얼굴 뜨거웠었다.
첫댓글 ㅎㅎㅎ,,,그라이까네 기다리면 복 주신다 캤어요,,,ㅎㅎ,,기분 좋은 날이네요,
승질 급하면 항상 실수하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