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호텔을 무대로 사기를 치는 남자
통영의 입장에서도 사기꾼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른 재소자들의 죄명은, 횡령이나 배임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폭력범죄, 성범죄 등이어서 별로 의심하거나 경계를 하지 않았지만, 홍사기 사장의 죄명이 ‘사기죄’인 것을 알고, 처음부터 경계를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홍 사장의 이름이 사기(思基)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통영은 아무리 자신이 사기죄로 구속되어 감방에 들어왔지만, 사기꾼이 자신의 이름을 아예 <詐欺>라고 지어서 돌아다니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통영은 생각했다. ‘처음부터 부모가 자기가 낳은 귀한 자식을 사기꾼으로 대성하라고 이름을 <사기>라고 지어서 호적에 올리지는 않았을 거야. 분명히 저 사람이 자꾸 사기를 치고 징역도 살고 하니까 저 사람 살고 있는 시의 시장이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저 사람 이름을 강제로 호적공무원에게 지시해서 개명(改名)하도록 했을 거야. 그렇게 이름을 바꿔주려면 아예 성(姓)까지 바꾸어서 지금 불리우는 홍(洪)씨가 아닌 왕(王)씨로 바꾸지 그랬을까? 그렇게 하면 <홍사기>가 아닌 <왕사기>가 되어 사람들이 확실하게 사기꾼인 것을 알고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을텐데...’라고 깊이 생각했다.
통영은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를 했다. 통영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사기죄로 구속되면서 집안이 엉망이 되었다. 체격이 크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불량서클의 타겟이 되었다. 그러나 통영은 나름대로 성깔이 있었기 때문에, 싸움은 못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량서클 멤버들에 의해서 집단폭행을 당했다.
그때 아버지는 구치소에 있었고, 통영은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까 봐 학교에서 당한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통영은 불량서클에 들어갔다. 열심히 서클활동을 하고, 싸움판에도 여러 차례 끌려 다녔다.
아버지 옥바라지를 하는 어머니가 너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정을 알고 있는 통영은 학교 서클의 선배들로부터 돈을 빌려다가 어머니에게 주었고, 나중에 그 돈을 못갚게 되자, 사기꾼으로 몰렸다. 그 때문에 통영은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학교를 못 다니고 말았다.
그 후 이곳저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였고, 그러면서 타고난 머리와 기질을 최대한 활용해서 아주 전문적인 프로 사기꾼이 되었다.
통영이 구속된 사연은 이랬다. 그는 늘 신라호텔과 하얏트호텔에 가서 살았다. 하루는 신라, 하루는 하얏트로 갔다. 매일 호텔에 가서 시간을 보내니까 큰 돈이 드는 것으로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드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혼자 살고 있는 달동네에 있는 지하 단칸방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간다. 두 호텔 모두 지하철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두 호텔 모두 경치가 너무 좋다. 매일 호텔로 출근하니까 서울에서 가장 공기 좋고, 경치 좋고, 고급스러운 직장으로 출근해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통영은 다른 직장인들이 너무 불쌍하게 보였다. 다른 직장인들은 건물도 낡고, 화장실도 더럽고, 코로나사태 때도 제대로 소독이나 방역도 하지 않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고생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버스나 지하철도 출근시간이나 퇴근시간에 짐짝처럼 밀려서 타고 다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영은 자유로운 개인사업자였기 때문에 출퇴근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매일 고급호텔에 가는 것이므로 환경도 너무 좋았다.
드는 비용은 로비라운지에서 마시는 커피 값이다. 식사는 호텔 밖으로 나가서 싸구려 점심을 먹었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김밥을 먹거나 라면을 먹었다.
그는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세련된 매너를 보여주었다. 나이에 비해 매우 젊어보였다. 남자가 젊어보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꿈을 꾼다. 하지만 젊어보여서 열심히 사회생활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좋지만, 여자를 꼬시거나 사기를 치려고 젊게 보이는 것은 독이 되어 돌아온다.
통영은 기본적인 생활영어를 원어민 발음으로 하고, 일부러 한국말은 서툰 것처럼 더듬더듬했다. 중학교 다닐 때 가장 자신 있었던 과목은 국어였고, 수학이나 영어는 거의 빵점 수준이었지만, 사회에 나와서 사기를 치려고 마음 먹으니 고의로 한국어는 서툴게 해서 재미교포인 것처럼 가장하고, 영어는 아주 간단한 인사말은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처럼 발음할 수 있도록 피나는 노력을 반복했다.
‘Good Morning’을 발음할 때 보통 사람은, ‘굳 모닝’이라고 짧고 강하게 발음한다. 그런데 통영은 일부러 모닝의 ‘r’발음을 길게 함으로써 표를 낸다. ‘구우우웃 모오오오닝’ 이렇게 명확하게 ‘r’이 들어있음을 강조해서 알린다. ‘morning’과 ‘moning’이 구별되도록 하는 것이다.
통영은 호텔 로비에서 밖을 유심히 살펴본다. 외제차를 손수 운전하고 발렛 파킹을 맡기는 여자만 관찰한다. 그런 다음 그 여자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저는 재미교폰데, 잠깐 여쭤봐도 될까요?”
“예.”
“제가 양수리를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면 좋을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미안합니다.”
물론 이것은 수작에 불과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양수리 가는 길을 안내를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군대에서 독도법을 열심히 배워서 향도 역할을 3년간 했던 사병 출신도 불가능하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길을 묻는 사람은 있다.
아주 옛날 이야기다. 어떤 나이 지긋한 노인이 종로3가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명품옷을 걸치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쓰는 차양 큰 고급 모자를 쓰고, 해도 나지 않고 구름이 잔뜩 낀 시간에 길을 물어왔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여기 사세요?”
그 노인은 기분이 상했다. 자신은 회장이 아니고 은퇴해서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누라가 너무 잔소리가 심해서 매일 아침 일어나면 곧 바로 옷을 주워입고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서 내려서 파고다공원에서 온종일 장기를 두고 있는데, 옷도 그날 따라 초라하게 한달 동안 세탁을 하지 못한 것을 입고 나온 것을 눈으로 보고 알면서도 자신을 예우한답시고 <회장님>이라고 부르니까 마치 자신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젊은 여자는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상대를 무시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 깎듯이 예우를 해서 사용한 것이었다. 그래야 자신이 묻는 길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알려줄 것으로 기대했다.
사실 서울에는 <사장님>이나 <회장님>들이 너무 많다. 명동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보고 뒤에서 큰 소리로 <사장님>하고 부르면, 적어도 100명은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회장님>하고 부르면, 양심이 있어서 그런지 50명만 뒤를 돌아본다.
젊은 여자는 미국에서 태어났는지, 한국말도 서툴러 보였다. 매일 주식으로 버터를 먹고 사는지 말에서 상당히 미국 냄새가 났다. 혀가 아주 부드럽게 꼬부라졌다.
“회장님, 너무 멋있는 분이세요. 저는 멀리서 보고 꼭 한국의 최고 태런트 <최불암> 선생님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 미국에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가려고 해요. 여기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세요?”
노인은 이 말에 그 여자에 대한 오해가 다 풀렸다. 자신도 한때는 <최불암>을 우습게 봤다. 젊었을 때 여자들에게 인기가 하늘을 치솟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있는 쎈쁘랑스 가려고 그래요? 쎈쁘랑스는 멀텐데, 어떻게 걸어가려고 그래요? 다리 아파서 오늘 하루에는 못갈텐데요.”
“회장님, 여기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거예요? 저는 빨리 가야 해요.”
“글쎄요. 지하철은 거기까지 가지 않을 거고, 아마 버스보다는 택시를 타고 가는 데 좋지 않을까요?”
“예, 잘 알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자는 아주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노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총총걸음으로 동대문쪽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