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의 명문 댈러스 카우보이스에서 29년 동안
지휘봉을 잡았던 톰 랜드리(1924~2000)코치는 엔에프엘의 '전설'이다.
그의 20시즌(1996~1985) 리그 연속 우승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를 명장의 반열에 올려 놓은 건 지도 철학이다.
댈러스가 슈퍼볼에 진출했을 때 한 선수가 극적으로 터치다운을 성공시켰다.
그는 역전의 기쁨에 취해 엔드존에서 엉덩이춤을 마구 추어댔고,
벤치로 달려가 동료들과 요란하게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슈퍼볼 우승을 코앞에 두게 됐으니 흥분하는 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랜드리 코치는 그에게 다가가 뒷목이 서늘해질 정도로 차갑게 발했다.
"이봐, (터치다운하기)전에 하던 대로 행동하라구( Act like you've been there before)"
역전 당해 '멘붕'이 된 상대 선수들 앞에서 오버하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랜드리 코치의 말은 엔에프엘 감독들이 스포츠맨십을 강조할 때 자주 쓰는 명언이 됐다.
스포츠맨십에서 가장 강조되는 덕목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상대를 이기면 기고만장해지고, 지면 분한 마음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극적인 순간에 승패를 결정짓는 활약을 하게 되면,
비록 행운에 따른 것일지라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희열을 느끼기 마련이다.
스포츠맨십은 이런 자연스런 감정들을 자제하라고 가르친다.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성대에게 예의를 갖추라는 것이다.
상대도 그날의 경기를 위해 혹독한 훈련을 견뎌냈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가 최근 한국 프로야구 홈런 타자들이 '빠던' 세리머니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빠던은 '빠따(배트)던지기'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신문은 롯데 자이언츠의 황재균이 동점 홈런을 친 뒤 방망이를 하늘 높이 던지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한국에서는 그냥 방망이 던지기일 뿐이지만,
미국에서는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된다"고 꼬집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저렇게하면 다음 타석에서(투수의 보복 행위로) 목으로 공이 날아올 게 확실하다"는
한 메이저리거의 촌평도 소개했다.
메이저리그들이 방망이 세러머니를 자체하는 건 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유에스에이 투데이)가 지난해 7월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337명 참가)에서 야구팬 60%가
'방망이 던지기 세리머니를 지지하지 않는다고'고 답했다.
당시밀워키 브루어스의 카를로스 고메스가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에이스 게릿 콜한테서 홈런을 뽑아낸 뒤
방망이 세리머니를 한 게 큰 이슈가 됐다.
고메스의 세리머니는 황재균에 비하면 애교로 봐줄 만했지만, 두 팀은 벤치 클리어링까지 갈 정도로 격렬하게 충돌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메이저리거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윽한 멋이 미국프로야구에 있다고 자부한다.
그 멋은 상대를 존중하는 신사의 게임이라는 것이다"라고 썼다.
홈런은 온전히 타자의 기량만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상대 투수가 홈런을 치기 좋은 속도와 코스로 공을 던지지 않는다면 담장을 넘기기 어렵다.
투수의 '실투'라는 행운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프로선수쯤 되면 이를 모를 리 없는데도 리틀야구장에서나 볼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건 볼썽사납다.
방망이를 던지기 전에 자신이 그 순간 마운드에 서 있다고 가정해 보라.
가뜩이나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점점 희박해지는 것 같은 세상이다.
팬들은 그런 세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야구장을 찾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춘재 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