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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읽을말씀: 막8:1-38; 마16:4,12
주제말씀: 막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첫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막8:15)
예수님은 큰 무리를 며칠이나 데리고 가르치셨습니까? 사흘입니다.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1,2절)
사흘간의 신앙수련회를 마치시고 돌려보내실 때, 그들을 위해 무슨 이적을 베푸셨습니까? 소위 칠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즉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4천여 명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또 작은 생선 두어 머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6-9절) 그들 모두를 배불리 먹이신 후에도, 남은 조각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일곱 광주리입니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8절)
왜 이 같은 이적을 베푸신 것입니까?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요,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2절 상) 그들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2,3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 개개인의 처지와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고 또 불쌍히 여기신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어떤 형편에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말씀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잘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후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그분께 무엇을 구하였으나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늘로부터 온 표적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11절)
왜 허락지 않으신 것입니까? 그들은 한 결 같이 악하고 음란하였기 때문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마16:4) 참고로, 요나의 표적이란 예수님께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사실 것을 예언하신 것으로써, 이것보다도 강력하고 큰 표적이 이 세상에 다시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가시면서 그들에게 무엇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까?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입니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15절) 하지만 제자들은 이 말씀을 무엇에 관한 말씀으로 착각했습니까? 떡에 관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16절)
그러나 이는 무엇에 관한 말씀이었습니까? 다른 교훈들입니다. 즉 바리새인들의 교훈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제 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마16:12)
이것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이것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참 계시와는 반대되는 인본주의 교훈들로써, 자기 힘으로 얻는 의를 강조하는 ‘형식적인 율법주의’(바리새인들의 교훈)와 영생을 거부하는 현세주의, 자유주의, 기복주의(사두개인들의 교훈) 등을 각각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왜 처음부터 이를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까? 그들의 마음이 염려 때문에 둔하여졌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14,16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다른 교훈, 곧 인본주의 교훈들을 삼가 조심하되, 이를 위해서는 항상 말씀으로 깨어 있어 우리의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중심과 성경 중심으로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형식적인 율법주의나 현세주의, 기복주의 등이 절대로 틈 못 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바른 신앙고백으로 고난도 각오해야 합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막8:29-31)
뱃새다에 이르셨을 때, 사람들이 누구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습니까? 앞 보는 한 사람입니다. “뱃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22절) 이에 예수님은 그를 어디로 데리고 나가셨습니까? 마을 밖입니다.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23절 상)
왜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 것입니까? 그와의 친밀한 교제부터 회복하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 사람의 손을 친히 붙잡고 마을 밖으로 나가시면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나누셨겠습니까?
마을 밖에 도착해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의 눈에 침을 뱉으시며 친히 안수하셨습니다.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23절 중) 그에게 안수하시되 몇 번에 걸쳐서 고쳐주셨습니까? 두 번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23-25절)
어째서입니까? 주님의 응답은 단번에 즉각적으로 되기도 하나, 대부분 몇 차례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되는 것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한편, 빌립보 가이사랴의 여러 마을로 나가실 때 길에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물으셨습니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야 여러 마을로 나가실 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27,28절)
또 무엇이라고 물으셨습니까? 제자들은 주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입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29절 상) 이 때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주는 그리스도’, 즉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29절 하)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무엇에 대해서 비로소 제자들에게 말씀해주셨습니까? 곧 있게 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31절)
어째서입니까? 주님을 따르는 길은 ‘바른 신앙고백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요 사명의 길 역시 ‘분명한 신앙고백이 없이는’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이 누구신지도 모르는데 어찌 그분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으며, 고난이나 역경도 기꺼이 각오할 수 있겠습니까?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34,35절)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로 나아오기를 힘쓰되 바른 신앙고백을 가지고 그리하며, 또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면서 고난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32,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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