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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돌목의 잔잔한 물결 위로 진도대교와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비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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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잔잔하던 울돌목이 밀물이 밀려오자 금새 요동치고 회오리가 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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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해안에 설치한 거북머리(용머리) 뱃전에 떠오르는 태양을 여의주로 물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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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물결에 전투를 독려하는 듯한 이순신장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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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작은 어선은 너무도 한가롭게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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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돌목 가운데 물길이 무척 거세게 흐르고 있어 진도대교의 반영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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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기관선인 저 배가 최대한의 동력으로 나가는데도 울돌목을 지나가는데는 30분도 더 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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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타워 앞에 세워진 전투장면들 활과 창으로 적과 싸우는 장면 |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지난 밤 늦게 까지 진도대교와 진도타워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고,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가, 또다시 새벽같이 일어나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있는 진도 울돌목해안공원으로 달려갔다.
피곤한 몸이었지만 언제 또 다시 찾는다는 기약을 할 수 없는 하루 하루이고 보니,
피곤을 핑게로 방바닥에 누워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4시 30분.
부지런히 눈부비고 물 한컵 마시고 새벽공기를 가르며 차를 몰았다.
여름철 태양은 무척 일찍 떠오른다.
그러나 8월을 넘고보니 하지에서 많은 날들이 흘러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일출을 제대로 보려면 태양이 솟아오르기 전 적어도 30분 전에 위치 물색을 해야 한다.
태양은 내가 찍는 위치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떠오르는 위치를 내가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위치를 못잡으면 괜히 시간만 보낼 뿐 사진다운 사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에.
태양이 떠오르는 각도를 보아가며 이리 저리 오르락 내리락 분주하게 시간을 보낸 후
여기쯤이다 싶은 곳에 카메라 삼각대를 설치하고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새벽같이 눈을 부비고 차를 몰아 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쯤이었다.
텅빈 공원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해가 떠오를 곳과 사진이 어울릴 만한 장소를 찾아 해안가를 서성였다.
해안가에는 임진, 정유 왜란시 주력군의 함대로 쓰이던 판옥선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견학거리가 되게 하고 있었지만,
그런 배들은 새벽에는 문이 잠긴상태라 올라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순신장군의 동상과 진도대교 그리고 태양을 벗삼아 어떻게 사진으로 담을까 고민하고
머리를 짜다가 각자 생각한 구도대로 흩어져 사진을 담았다.
해안가에는 보행에 편리하고 안전에 대비한 난간이 설치된 보행통로가 잘 정비되어있었다.
공원 주변에는 관광호텔과 식당들이 있어. 옛날 전쟁당시의 급박함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실정이지만,
이곳이 그 유명한 명량해전의 현장임에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를 증명하듯 바닷물은 시시각각 쉬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사진을 담는 새벽시간에도 간조로 빠졌던 썰물이 잠시 멈추는 동안에는
거울처럼 투명하던 바다가 잠시 만에 또다시 밀물이 되어 들어오기 시작하자
물이 회우리가 치고 물살의 흐름이 금새 급류가 되어벼리는 것이었다.
이순신장군의 모습은 격전의 현장에서 전투를 지휘하고 독려하는 모습으로 무척이나 역동적이다.
무어라 소리치르는 모습이 1597년 9월 16일 그 순간을 가장 잘 표현한 모습으로 보인다.
진도대교의 서쪽면에 서서 동쪽하늘로 떠오르는 태양을 본 후 우리는 또다시 진도타워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보는 진도대교의 아침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침 안개를 머금은 울돌목은 얕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동안 물살은 무척이나 거세어져 있었다.
물살이 거세지지 전에는 작은 기관선이 커다란 바지선을 끌고도
10여분만에 울돌목을 빠져나갔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 물살의 세기를 위에서 보기에는 잘 느낄 수가 없으나,
마침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한척이 있었는데,
잔잔한 때 같으면 10분이면 통과할 거리를
30분이 넘도록 거슬러 올라 가는데도 엔진소리만 요란할 뿐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바로 그런 울돌목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 때를 맞추어 왜군을 유인하였고,
그 유인책으로 적선 330척을 단 13척의 배로 완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실의 적고 빈약한 장비를 탓하지 않고, 자연의 힘까지 빌려서 싸울수 있었던
이순신장군의 용기와 지략에 다시 한번 머리가 숙여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단순히 400여년전의 한 장수였을 뿐으로 기억하기에는 너무도 큰 영웅이었고,
모든 한국인의 영웅일수밖에 없사는 것을 새삼스럽게 또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울돌목을 돌아보면서 임진왜란을 격으면서 이순신장군이 남긴 명언들을 되뇌어 본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
지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今臣戰船 尙有十二)
한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頸 足懼千夫)
죽고자 하면 살것이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卽生 必生卽死)
이른 새벽 5시부터 진도해안으로 나와서 일출장면을 모두 찍고나니
어느덧 7시 3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다시 진도의 역사를 찾아서 나서기 위해
숙소로 돌아가 아침식사를 간단히 챙겨먹고 또다시 길을 나섰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고 하지만,
이곳 진도와 해남사이 울돌목이 없었더라면 호남도 나라도 없었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