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전례 탐구 생활 36. 예물을 바치며 드리는 기도’에서 이미 다루었듯이, 성경에서 빵은 가장 기본적인 식량이자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품으로 나옵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청하는 “일용할 양식(빵)”은 우리의 일상을 맨 밑바닥에서 떠받쳐 주는 은총의 열매이며,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을 지탱해주었던 만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탈출 16,14-21).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하루치 분량만큼 하늘의 빵을 내려주셨던 것처럼, 그분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하루치 필요에 맞는 빵을 제공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조금 있으면 받아 모시게 될 생명의 빵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성체를 받아 모시기 전에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가 깨끗해져서 곧 우리 안에 사시게 될 예수님을 모실 거룩한 감실이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우리에게 상처 준 이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영혼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푼 만큼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6,14-15; 18,23-35).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은 심지어 누가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러 제단에 나아가고자 할 때에는 먼저 자기 형제와 화해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마태 5,23-24).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시러 제단에 나아갈 때에도 우리는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우리 형제들과 화해를 이루어야 한다는 숙제 앞에 서게 됩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이 청원은 삶의 모든 시련과 유혹을 피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성경의 눈으로 볼 때 이 청원은 우리가 유혹에 굴복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지켜 달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우리의 힘을 키워주셔서 우리가 직면한 유혹을 이겨나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나자렛 예수」에서 이 청원을 다음과 같이 풀어 말씀하십니다. “저는 제 본성이 정화되도록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제게 여러 가지 시련을 보내시기로 하셨다면, 부디 제 힘이 겨우 이 정도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제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시험받게 될 영역을 너무 넓게 잡지 마시고, 시련이 제게 너무 크게 다가올 때 당신 손으로 저를 보호하시며 늘 가까이 계셔 주십시오.” 사도 바오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1코린 10,13).
악에서 구하소서: 성경의 눈으로 보면 이 청원도 우리가 모든 해악이나 불행에서 면제되길 바라는 기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악’은 도덕 질서에 반하는 추상적인 개념 또는 세상에서 무작위로 흔히 일어나는 나쁜 일들이 아닙니다. 악은 한 인격, 사탄,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타락한 천사, 다른 이들을 부추겨 하느님을 거스르도록 이끄는 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청원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탄의 손에서 구해주시기를, 사탄의 모든 거짓말과 활동, 그가 꾸미는 모든 함정에서 구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