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에 나는 청주 성당에서 일 하고 다음해
1956년에 청주 야간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나는 처음보는 교재인 국어, 수학,지리, 역사, 음악, 미술, 체육 ,화학, 생물,등 많은 교재를 공부합니다.
나는 낮에는 성당에서 일 하고 오후 4시 30분에는 하숙집으로 갔다가 5시에 학교에 가면 밤 10시 넘어 돌아옵니다.
그러면 나는 축 늘어집니다.
12시가 넘도록 공부하다가 잠이 들면 5시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5시30분에 성당에 가서 문을 열고 미사준비를 하고 종을 칩니다.
그무렵 각 가정에는 아침마다 거지들이 10명이상이 옵니다.
성당에는 40명 이상이 오는데 그중에는 상이군인들도 많습니다.
먹을 것이 없고 , 일 할 곳이 없으니 얻어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당에 오는 가지들과 상이군인들에게 신부님은 한 사람당 10환씩 주라고 합니다.
신부님은 나에게 매일 400환을 줍니다.
어느 상이 군인들은 돈을 더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목발로 나를 때리려고도 하는데
이것을 보다못한 나 신부님은 화가나서
거지나 상이군인들의 영당이와 뒷덞이를 잡고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려 밖으로나가 길 거리에 세워 둡니다.
그러면 모두 겁이나서 다시는 떼를 쓰지 못합니다.
2년 후 나 신부님은 다른 곳으로 가시고 반신부님이 오셨는데
그분은 미 하바드 대학을 나온 수재라고 합니다.
그는 한국말을 한국인보다 더 잘 하고 목소리가 한국인과 같습니다.
나는 한 달에 한번씩 신부님 차를 타고 공소에 미사드리러 가는데 공소란 성당이 없는 시골의 천주교 동네를 말 합니다.
신부님이 오시는 날에는 동네사람들이 마을 어귀까지 나와 신부님을 환영하며
"우리 신부님 우리신부님"
이라고 외칩니다.
반신부님은 `우리` 란 말에 반해 버립니다.
그때부터 신부님은 한국인들을 무척 사랑하시고 성당을 그만둔 후에는 사회활동으로 한국인들을 돕습니다.
(계속)
첫댓글 형광등등 님 감사합니다 ^*^
로즈님 제가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샬롬
주말과 휴일 맛과 멋 향기로 고은 삶
아름다운 가을 행복 하시고 편안 하시며
항상 건강 조심 하시고 코로나19 주의 하세요~
예 늘 염려해 주시는 덕룡님의 마음 잘 알아요 감사